황성신문은 1905년 2월 22일자 신문에 “이 나라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인 보성전문이 생기니 기대하시라”라며 보성전문학교(보전)의 설립을 알렸다. 고종황제는 ‘널리 인간성을 계발하고 실현시킨다’는 뜻으로 보성(普成)이라는 교명을 친히 내렸다. 그 후 보전이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면서 손병희 선생을 거쳐 김성수 선생이 인수하여 캠퍼스를 지금의 안암동으로 이전하였다. 해방 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면서 고구려의 기상을 계승하고, 영문표기가 국호와 같다는 점을 감안하여 교명을 고려대학교(高麗大學校)로 개명하였다. 해방 이후 고려대의 학생·교수·졸업생들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수호, 경제성장과 발전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고려대는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운동의 중심이었으며 해방 후에는 건국의 주체였다. 6~70년대 이후에는 조국 근대화의 기수이자 산업화의 역군인 동시에 반독재 투쟁의 선봉장이기도 하였다. 자유와 진리에 정의를 더한 투철한 시대정신으로 근현대사의 중심에 서 있었으며, 그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그렇다면 고려대의 과거 찬란한 역사와 선배들의 업적을 바탕으로 명문사학을 앞으로도 이어갈 수 있는가? 고려대는 국내외를 통틀어 세계적인 대학으로 우뚝 솟을 수 있는가? 안타깝게도 녹녹치만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21세기에 대학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연구와 시설에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며, 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지표로 연구성과와 학풍이 평가되고 있다. 인재상도 야성과 정의감, 공존심과 결속력, 성실함과 열정에서 창의력과 도전정신 그리고 판단력이 중요한 시대로 바뀌고 있다. 더 이상 과거의 찬란한 역사와 전통만을 강조하고 지탱하기에는 이 사회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예전에 어느 교수님이 ‘12 = 22 = 32’인 사회에서 12 < 22 < 32’인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고 하였다. 과거에 우리 사회는 10대에 좋은 대학에 못 들어가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 20대에 4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30대에 9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10대에 기울인 노력보다 4배의 노력을 기울이면 노력한 만큼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 합리적 사회로 바뀌고 있다. 대학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개혁하지 않으면 예전의 명문이 미래의 명문이란 보장이 없으며, 명문대 출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최근 고려대는 집단 안에서 경쟁을 통해 차근차근 올라가는 관료적 인재보다는 거친 광야에서 개인의 잠재력을 무한한 가능성으로 ‘개척해 나가는 지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해 나가겠다고 천명하였다. 이는 21세기의 불확실한 현실에서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올바른 방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 하나하나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들이 자유롭게 사고하도록 하여야하며 그들의 이상과 꿈을 펼칠 초석을 대학에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평가도 다양해져야 하고 서로간의 차이도 인정해야 한다. 밤하늘의 별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빛나듯이 각자의 위치에서의 존재이유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개교 110주년을 기념하여 박물관에서 ‘호시탐탐전 호랑이 예술을 즐기다’ 전시전을 개최하고 있다. 한국인의 지주역할을 하고 고대정신을 대변하는 호랑이의 역사적 시대적 가치를 재조명한다고 한다. 사실 호랑이는 그 용맹으로 알려져 있지만 민담에선 의리와 덕을 지닌 호랑이, 선량하고 순진한 호랑이, 재치있고 지혜로운 호랑이, 영험한 호랑이, 은혜를 알고 갚는 호랑이 등 그 유형도 다양하다. 고려대도 이제 개인의 다양성을 인식하고 각자의 이상과 꿈을 펼칠 그런 대학교육을 실행해야 하지 않을까.

‘높은 이상과 화려한 꿈을 갖고 크게 배우는 대학을 기대하시라’라며 고려대의 비상(飛上)을 알린다.

권수영 교수,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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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3 08:1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