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첫 직장에서 나왔다. 작은 언론사였다. 편집국부터 경영전략실까지 다 돌며 인사할 때는 나지 않던 눈물이 이상하게 논설위원실 까마득한 선배 앞에서 터졌다. 이튿날 그 선배는 술을 아주 많이 마시고 전화를 걸어왔다. 여후배를 밤에 불러내면 안 되는데, 하면서 여의도의 카페에서 커피를 사 줬다.

내가 입사하던 2010년, 회사는 3개월 인턴제를 끄집어냈다. 세 달간 일을 시켜보고 잘 하면 붙여주겠다고 했다. 물론 그 기간에 다른 언론사 시험은 칠 수 없다. 이미 서너 관문을 거쳐 최종 단계까지 온 사람들이었는데 말이다. 10개 남짓한 종합일간지와 방송 3사가 한 해 뽑는 인원은 다 합쳐서 100명이 안 된다. 50명도 안 되는 해도 있다. 그래서 부릴 수 있는 횡포다. 나를 포함한 당시 지원자들은 경쟁 대신 집단행동을 택했다. 우리에게 관심을 좀 보이는 듯했던 선배를 불러놓고 돈을 모아 술을 샀다. 다 붙여주지 않으면 다 나가겠다고 했다. 최종 합격 발표가 나던 날 우리는 종로의 찜닭집에 모여 있었는데 휴대전화가 하나 둘씩 울렸다. 9명 중 3명은 불합격 문자를 받았다.

그 때의 그 선배였다. 선배는 5년 전의 나와 논설실에서 울던 내가 겹쳐 보여서 계속 마음이 안 좋았다고 했다. 불합격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셋은 결국 다른 길을 갔다. 회사에선 "세 달간 일해 본 경험이 다른 회사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반박했다. 세 달이나 일했는데도 떨어졌으면 '업무부적격' 낙인이 찍힌 거나 다름없지 않느냐고 맞섰다. 그러면서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욕을 하며 입사했다. 업계에서도 논란이 일었던 이 제도는 여전히 여러 언론사가 애용하고 있다. 얼마 전 진보 성향의 한 언론사도 비슷한 시도를 했다가 '배신감'을 토로하는 지원자들의 집중포화를 받아야 했다. 어릴 적 사회 시간에 배운 자본주의는 구직자의 노동력과 기업의 수요가 동등하게 거래되는 제도였는데, 현실의 벽은 너무 높다. 남의 갑질을 지적하는 게 일상인 언론 업계도 떳떳
할 처지가 못 된다.

<프로파운더>


* 냉전(冷箭)은 숨어서 쏘는 화살이란 뜻으로, 고대신문 동인이 쓰는 칼럼 코너입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7 19: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