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시작된 재개발 논의
찬반 갈등 13년째 이어져
직권해제 여부가 관건

정문 앞부터 정릉천 직전까지를 포함하는 제기5구역에는 민주화운동 당시 시위가 끊일 날이 없었다. 1980년대에는 시위의 여파로 도로변 건물의 유리창이 깨지고 최루탄 가스가 골목을 채우는 일이 빈번했다. 막걸리집과 하숙촌이 밀집돼 있던 제기5구역은 과거 상권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안암역이 생기면서 안암오거리와 참살이길로 상권의 중심이 이동했고 2003년 시작된 재개발 논의로 건물 신축이 제한돼 슬럼화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고시원과 원룸 등에 약 900여 명의 본교생이 거주하는 주거밀집지역이다.


재개발안 13년째 보류 중
제기5구역의 재개발 논의가 13년째 지속되고 있다. 제기5구역은 2003년에 서울시에 의해 재개발예정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대규모 아파트단지로의 재개발이 논의됐다.

재개발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주택재개발조합설립추진위원회(추진위)을 구성해 담당 구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추진위가 작성한 재개발안이 서울시 산하의 도시건축공동위원회(도시건축공동위)의 심의를 통과하고 재개발지역으로 확정돼야 재개발에 필요한 조합 설립, 시공사 선정 등을 할 수 있다.

2004년 제기5구역에 토지를 가지고 있는 411명 중 208명이 재개발에 찬성하면서 주민 동의율 절반을 넘겨 추진위가 들어섰다. 이후 동대문구청의 심의를 통과한 재개발안은 논의가 시작된 지 5년 만인 2008년에 서울시의 도시건축공동위로 넘어갔다. 재개발반대주민위원회(반대위)와 학교 본부를 비롯한 교수진, 학생들의 반대에 부딪혀서다. 본교 교수 623명이 반대 건의문을 서울시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에 서울시는 2011년 4월 기숙사와 아파트가 복합된 캠퍼스타운 안을 제안했지만 반대위와 학생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결국 2011년 12월 도시건축공동위는 제기5구역에 재개발지역 지정 보류 결정을 내렸다. 주민들의 찬반 주장이 첨예한 상황에서 대학이라는 문화적·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개발을 진행하라는 것이다. 도시건축공동위는 ‘전 지역을 철거하여 아파트로 개발하기보다는 소규모 정비사업이나 점진적 보수를 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제기5구역은 재개발구역으로 확정되지 못하고 정비예정구역으로 남게 됐다.


정문앞 재개발, 찬반 갈등 여전
하지만 정문 앞 재개발에 대한 찬반 갈등은 여전히 팽팽하다. 2013년 반대위는 재개발 반대 동의 서명을 받아 추진위를 해산하려 했지만 결국 50%를 채우지 못한 채 무산됐다. 지난 2014년 4월에는 추진위가 제기5구역을 정비구역으로 지정하는 내용의 신청서를 기존에 제기5구역 재개발 심의를 담당하던 도시건축공동위가 아닌 도시계획위원회(도시계획위)에 제출했다. 이는 추진위가 소규모 정비 사업이 아닌 대규모 아파트 재개발 사업을 하기 위해 진행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반대위는 ‘제기5구역 재개발 반대 구역지정의 의견’을 서울시에 제출했다. 결국 도시계획위에 접수된 추진위의 재개발안은 보류됐고 제기5구역은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지 못했다.

추진위와 반대위는 여전히 사무실을 열고 활동하고 있는 상태다. 추진위는 최근 새 설계사를 선임해 도시건축공동위의 권고사안을 보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추진위는 발전을, 반대위는 생존권을 주장하며 이해관계가 상충되고 있다.
제기5구역이 재개발될 경우 가장 큰 문제는 학생주거권과 원주민의 생존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기5구역에는 2014년 기준으로 900여 명의 본교생이 거주하고 있다. 이 구역이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될 경우 학생들의 거취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반대위의 한 주민은 “재개발이 되면 임대를 통해 먹고 사는 원주민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주민들이 하숙과 원룸 임대를 통해 수입을 얻기 때문에 제기5구역이 재개발되면 생활 터전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2008년 서울시가 조사한 서울시 뉴타운의 원주민 재정착률은 44%로 채 절반이 안 된다. 또한, 제기5구역에서 82m(25평) 이상의 집을 소유한 원주민이 재개발되는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추가분담금을 1억 원(2014년 기준) 가량 내야해 그 비용을 부담하기 어려운 경우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본교 정문 앞인 제기5구역은 다른 대학가에 비해 낙후돼 있어 개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추진위 측의 한 실무자는 “대학가 인근이 이렇게 슬럼화된 경우는 없다”며 “제기5구역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재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기5구역의 노후도는 2014년을 기준으로 60%에 이른다. 전체 건축물 중 불량이거나 노후된 건축물의 수가 절반을 넘는다는 것이다. 김세용(공과대 건축학과) 교수는 “제기5구역은 각종 사회기반시설이 미비해 재개발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고층재개발, 철거재개발이 아닌 마을 만들기나 소단위 재개발 추진 등의 방식이 적절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학교의 개입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제기5구역의 재개발을 담당하는 동대문구청의 최갑석 주무관은 “학교가 주가 돼서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한 상생 방안을 모색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건축행위제한 풀려
동대문구청은 2010년 재개발계획 수립을 원활히 하게 위해 건물신축과 토지분할을 제한하는 행위제한을 고시했다. 하지만, 2014년 행위제한이 해제되면서 제기5구역에도 건물을 신축할 수 있게 됐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해당 고시의 효력은 최대 4년이기 때문이다. 2016년 3월 현재 총 5채의 건물이 신축됐거나 신축 계획 상태에 있다. 본교도 정문 앞에 창업보육센터인 ‘개척마을’을 건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제기5구역 인근의 한 부동산업자는 “건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재개발은 더 힘들어졌다”며 “건물 신축에 돈을 투자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반대가 강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김세용 교수는 “건축행위제한이 풀린 것은 사실상 예정구역 해제에 준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조례를 개정해 재개발구역과 재개발예정구역을 직권으로 해제해 일반지역화하고 있다. 지지부진한 재개발 사업들을 정리해 슬럼화된 곳을 재생하기 위해서다. 서울시는 지역 선정의 기준으로 △행위제한 해제 또는 기간만료 등으로 사실상 정비구역 지정이 어려운 경우 △주민갈등 등 정비사업 추진이 어렵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을 들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제기5구역도 검토대상이다. 제기5구역이 정비예정구역의 해제 대상이 되면 재개발 논쟁은 마무리되지만, 해제 대상이 되지 않으면 찬반 논쟁은 계속된다. 서울시는 다가오는 4월에 직권해제 대상 지역을 발표할 예정이다.


글 | 최윤정 기자  aix@kukey.com
사진 | 김주성 기자 peter@
그래픽 | 허윤 기자 shine@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7 21: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