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책 한 권(행정학과 최흥석 교수님)

21세기 새로운 민주주의의 모습을 찾아서

알렉시스 드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인터뷰를 위해 연구실을 찾아간 기자들을 넉넉한 웃음으로 맞아준 최흥석 교수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사회과학에서 몇 안 되는 명저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이 책은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토크빌이 미국의 행정제도를 연구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자신의 경험을 담은 결과물이다.

토크빌은 미국에서 역사상 유래가 없는 사회적 평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내가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 가장 강렬하게 나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사람들 사이의 조건의 일반적 평등이다.”[책에서 인용] 그는 이러한 사회적 평등이 미국의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설명하며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최흥석 교수는 토크빌이 미국‘만’의 민주주의를 그린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미국에서의 경험에 자신이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던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모습을 덧붙여 이 책을 써냈다는 것이다. 실제로 토크빌 역시 ‘내가 미국 이상의 미국을 써놓은 것 같다’는 자평을 남겼다고 한다.

최 교수는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을 분권화에 있다고 본다. 미국 사회의 평등성에서 기원한 분권화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가진 독특한 특징이다. 현재 미국 정부는 연방제를 택하고 있다. 즉 상층부에는 연방 정부가 자리 잡고 이 밑에는 각 급의 지방 정부가 형성되어 있다.

평등한 시민들의 자발적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이들 지방 정부들은 연방 정부의 지나친 권력 행사를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이들은 마치 ‘덤불처럼’ 시민 생활 곳곳에 퍼져 연방 정부에서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더라도 이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마치 “위에서는 폭풍이 쳐도 밑에서는 민주적인 삶의 모습이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의 정치 체제는 굉장히 안정되고 스스로 치유하는 속성을 갖게 되었다. 최 교수는 이것이야 말로 미국의 민주주의가 가진 최대의 강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흥석 교수는 이러한 미국의 민주주의가 오늘날 큰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한다. 우선 심각해지는 양극화가 그 첫 번째 원인이다. 초기의 미국은 시민들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 매우 동등한 나라였다. 앞서 토크빌도 관찰했듯이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평등한 나라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뉴욕 월가 점령 시위대가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 사회는 극심한 양극화를 겪고 있다. 최 교수는 이러한 양극화가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인 평등성을 점차 붕괴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요인으로는 연방정부에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교통과 통신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연방정부의 모든 정책들이 일순간에 전 국가로 전달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의 민주주의의 최대 강점인 ‘풀뿌리 민주주의’, 즉 지방 정부가 연방 정부를 견제하고 권력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흥석 교수는 인터뷰 내내 민주주의에 있어 분권화의 역할을 계속 강조했다. ‘풀뿌리 민주주의’야말로 미국 사회를 이끌어 온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한국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이 바로 인터넷이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자랄 수 있는 바탕은 시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꾸려지는 공동체이다. 인터넷은 이러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새로운 토양이 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구현될 21세기의 공동체와 이를 통한 새로운 민주주의는 100여년이 지난 지금 토크빌의 이상적 민주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마지막으로 최흥석 교수는 학생들에게 고전 읽기의 중요성을 당부했다. 최 교수는 고전을 ‘줄기세포’에 비유했다. (참고로 그는 학부 때 이공계 전공이었다.) 줄기세포는 생물을 구성하는 세포들의 기원이 되는 세포이다. 이들은 필요할 경우 신경, 혈액, 연골 등 몸을 구성하는 모든 종류의 세포로 분화하게 된다.

최 교수는 고전 속의 지식들도 마치 이러한 줄기세포처럼 새로운 지식들을 창출할 가능성을 안고 있는 텍스트라고 본다. 요즘 책들은 대부분 분석적인 시각에서 써져 있다. 지식의 원천이라기보다는 저자가 소화한 지식을 “다 씹고 풀어서” 독자가 수용하기 쉽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줄기세포들이 분화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에 중요한 것은 ‘창조’이다. 어떻게 새로운 것을 창조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얼마 전 사망한 스티브 잡스는 "만일 소크라테스와 점심식사를 할 수 있다면 우리 회사가 가진 모든 기술을 그와 바꾸겠다"라고 말할 정도로 인문학 고전을 중시했다. 분석적으로 쓰인 조각조각들에서는 결코 새로운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창의성과 상상력의 원천, 고전에 주목해야 한다.

최정호·이소민 기자
chjho90@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