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앞에 가로막힌 민주주의
블로거 A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특정 정치인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표명한 글을 게시했다. 그런데 그는 어떠한 정치적 목적이나 이익을 꾀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개인 블로그라 하지만 방문하는 숫자나 스크랩 숫자가 많아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상당하다’는 이유로 공직선거법에 의거해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외에도 동일한 법에 의해 한겨레 신문사의 온라인 토론마당인 ‘한토마’의 모(某) 논객은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고 또 다른 논객 역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았다.
B씨는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이명박 대통령의 기사와 사진, 만평 등을 모아 '대통령 이명박 괜찮은가'라는 제목의 UCC 5편을 인터넷에 게재했다. 그는 전적으로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만을 바탕으로 한 '실언'들을 모아 게시했음에도 공직선거법 93조 1항 등을 위반한 혐의로 벌금 200만원 구형을 받아 최종적으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았다. 또한 C씨는 위의 UCC를 자신의 블로그에 게시했다는 이유로 경찰 조사를 받았으며 D씨 역시 동일한 이유로 검찰에서 징역 4년을 구형받았다.
공직선거법에 달리는 의문
공직선거법은 선거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공정하게 행해지도록 하고 선거에서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다. 이 법률은 선거 전반에 걸친 폭넓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대통령 선거를 비롯하여 국회의원 선거, 지방의회 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 등에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공직선거법 일부 조항의 실효성과 정당성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적이고 공정한 선거를 위해 발효된 법률이 오히려 이를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일 당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이 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도화 인쇄물이나 녹음·녹화테이프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첩부·살포·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는 현행 공직선거법 제 93조 1항은 공직선거법의 ‘독소 조항’이라고 불리며 논쟁의 중심에 서있다.
규제 기준이 모호한 공직선거법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논란이 공직선거법의 불명확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선거운동을 처벌하는 모습만 보더라도 선거운동에 사용된 표현이 해당 법에 위반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 93조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의 다수의 재판관이 명확성의 원칙과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는 조항이라고 위헌의견을 표한 바 있다. 학계에서도 이 조항의 위헌성에 대한 의견이 끊임없이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한 가운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지역선거관리위원회의 공직선거법 해석이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빈번하고 사법부마저 서로 다른 유권해석들 속에서 뚜렷한 해석 기준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 논란은 심화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공직선거법
공직선거법은 규제의 모호성과 더불어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우리 헌법이 국민의 기본권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는 사상이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서 헌법은 이를 최대한도로 보장할 것을 기술하고 있다. 더구나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는 정당이나 후보자들에 대한 의사표현이 정치참여의 의미를 갖기 때문에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더욱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93조는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고 교환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
유권자들을 정치에서 격리시키는 공직선거법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는 ‘투표’만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서 치열한 토론과 공정한 비판, 공론을 형성하는 과정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직선거법의 대표적 독소 조항인 제 93조 1항은 선거 180일 전부터 유권자의 정당·후보자에 대한 지지·반대 활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함으로써 유권자의 알권리를 침해하고 건전한 비판과 정책 형성 활동을 제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유권자가 후보와 정책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선거가 가까이 올수록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 표현은 더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마땅한 것인데 공직선거법은 오히려 유권자들을 정치의 영역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있는 것이다.
선거, 진정한 축제의 장이 되려면
한국의 공직선거법에 관한 논의는 유엔(UN) 보고서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지난 6월 3일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이사회는 17차 회의를 통해 인터넷상 의사와 표현의 자유, 선거 전 의사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 8개 분야의 우려 사항에 대한 ‘한국의 의사와 표현의 자유의 권리에 대한 보고서’를 공식 채택했다. 이 보고서는 특히 선거제도와 관련하여 한국의 현행 공직선거법이 선거 전 6개월 동안 정치적 논의를 광범위하게 제한하고 실명제 의무화로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라뤼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도 보고서에서 ‘선거 당일에 이르는 중요한 시기에 선거 및 후보자 관련 주요 사안에 관한 정보와 의견의 공개적이고 자유로운 교류를 포함하여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전면 보장할 것을 대한민국 정부에 권고한다’고 밝혔다.
이제 2012년 국회의원 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왔고 18대 대통령 선거 역시 1년 2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유권자의 각종 활동에 대해 현행 공직선거법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공직선거법 제 93조 1항에 따라 올해 10월 14일부터 내년 말까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국민들은 정치 표현의 자유를 제약받게 될 것이다.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확장하는 것은 참여민주주의의 필수적 요건이다. 선거가 진정한 축제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정책에 대한 활발한 논쟁과 후보와 정당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 표명이 가능해야 할 것이다. 공직선거법의 개정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주희․이소민․조아란 기자
dovejh24@
공직선거법 개정 입법청원, 개정 가능할까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일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 12일 ‘유권자 자유 네트워크 준비모임(이하 유자넷)’은 국회에 ‘유권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확대와 참정권의 보장’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하 ‘유권자자유법’)을 민주당 김부겸 의원 소개로 입법청원했다.
유자넷은 입법청원을 마치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다가오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작 참정권을 실현하고자 하는 국민의 참여 열기는 ‘규제 중심적인 선거법’의 거대한 벽 앞에 가로막혀 있다”며 유권자자유법을 입법청원한 계기를 설명했다. 실제로 공직선거법은 그 근본 취지와는 다르게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 대한 자유로운 논의를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다. 유자넷은 공직선거법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인 공직선거법 제93조 1항과 함께 후보자비방죄(251조) 등을 언급하며 “각종 규제 조항들은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알권리를 침해하고, 건전한 비판과 정책 형성 활동을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행 선거법은 유권자의 참여를 제약함으로써 전혀 공정하지 않은 선거, 정책 경쟁이 불가능한 선거를 만들고 있다”며 국회에서 공직선거법을 개정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특히 유자넷은 선거관리위원회와 검찰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집중단속하기로 계획한 사안을 두고 “2007년 인터넷 UCC 규제에 이은 트위터 규제는 선거 시기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근본적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은 유권자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과도한 단속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공직선거법 개정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고 ‘수호천사’ 발족식을 여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상황이다. 이처럼 유자넷을 필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 바람이 부는 가운데 과연 이 개정 운동이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치 참여 권리의 정당한 보장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 확대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주희․박승빈 기자
ryanpsb@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5 01:5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