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까지 정문 앞 제기 5구역은 막걸리 촌으로서 독재정권에 항거하던 학생들을 격려해주고 휴식을 제공하는 쉼터가 되어 주었던 곳이었다. 본교를 상징하는 막걸리와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정신문화가 합쳐져 고려대 특유의 분위기와 문화가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 내에서도 가장 개발이 더딘 동북부에 위치하였다는 점으로 인해 이곳 제기동은 서울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이에 정문 앞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학생들은 고려대 특유의 대학가 문화가 살아있는 재개발을 끊임없이 요구해왔지만 돌아온 대답은 지역의 정체성을 무시한 획일적인 아파트 재개발 계획이었다.

지역의 정체성 간과한 캠퍼스타운 안

지난 4월 서울시는 이러한 일방적인 아파트 개발에 반발하는 주민들과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캠퍼스타운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아파트 개발 위주 정책을 탈피해 주거와 대학문화가 상생하는 공간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계획안에는 주민들과 학생들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들만 추가됐을 뿐 획일적인 아파트 개발만을 추구하는 기본 방향은 수정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는 대학의 건전한 문화 발전이나 고대 고유의 문화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 계획일 뿐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무분별한 아파트촌 위주의 개발을 대체할 대안은 많다. 홍익대학교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로 인해 많은 뮤지션들과 예술가들이 홍대 앞으로 몰려들면서 이곳은 젊은이들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밤마다 거리 곳곳에서 다양한 공연들이 넘쳐나는 등 홍대 앞은 새로운 문화적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많은 전문가들 역시 이처럼 문화적 콘텐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에 맞추어 개발을 추구하는 것이 향후 지역 발전에도 더욱 도움이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정문 앞 재개발의 경우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즉 서울시 역시 이렇게 정문 앞이라는 공간이 갖는 문화적 콘텐츠로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민의 경제적 이익을 보존하는 동시에 정문 앞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대학문화를 유지하는 접점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서울시는 정문 앞을 ‘문화 거리’로 지정하는 방안 역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 거리로 ‘마포 음식 문화의 거리’(이하 ‘마포 거리’)가 있다. 이 거리는 지하철 마포역을 시작으로 펼쳐져 있는 백 개가 넘는 맛집들을 마포 번영회라는 이름으로 묶어 하나의 문화 거리로 만든 경우이다. 한식, 중식, 양식, 그리고 술집까지 정말 다양한 종류의 음식점이 늘어서 있다. 마포 거리의 한 가지 특징은 ‘마포 음식문화 거리축제’,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등 매년 다양한 행사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시민들에게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색다른 즐거움을 만끽하도록 하고 있다.

마포 거리는 고대 정문 앞 재개발 방식의 좋은 선례가 된다. 현 고대 정문 앞에는 맛집으로 꼽히는 식당들이 상당수 있다. 수십 년 전부터 형성된 이 식당촌은 가격이 쌀 뿐만 아니라 양도 푸짐해서 고대인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왔다. 이 식당들이 사라지는 것이 고대인들이 아쉬워하는 점 중 하나다. 그러나 재개발의 방향을 음식 문화 거리로 삼는다면 위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다. 다만 포괄적인 음식보다는 고대만의 문화가 배어날 수 있도록 막걸리 집과 밥집이 중심이 되는 것을 고려해볼만 하다. 현대적인 차원에서 보강을 한다면 최근 막걸리를 이용한 다양한 종류의 술이 인기인만큼 이런 막걸리집이 들어오는 방안도 있다.

주변 여건이 마포 거리에 비해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 바로 옆에 제기시장과 경동시장이 있어 재래시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연극으로 대표되는 대학로 역시 근처에 있기 때문에 마포 거리의 홍대에 버금가도록 문화 영역을 키울 여지도 있다. 이처럼 고려대만의 색깔이 배어 있으면서도 주변과 조화되는 새로운 지역 개발 모델은 현재의 고층 아파트만 즐비한 획일적 재개발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정호 기자 chjho90@korea.ac.kr
이가영 기자 dlrkdud73@
박승빈 수습기자 ryanpsb@
한재윤 수습기자 romanticiro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