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선 광화문역에서 내려 출구로 나가는 길에는 낡은 텐트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이 텐트를 처음 보게 된 건 유난히 추웠던 지난 1월 겨울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텐트는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 텐트에는 “장애인 차별을 철폐하라”는 플랜카드가 붙어있다. 왜 텐트는 오랜 시간동안 광화문 출구를 지키고 있는 것일까. 지난 해 8월부터 이 텐트를 지켜온 <장애인차별철폐 공동 투쟁단> 박경석 공동대표를 대학로 노들야학에서 만났다.

차별철폐 투쟁을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이 곳 노들야학에서 장애인들의 학업을 돕는 교장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장애인을 위한 야학은 1993년부터 시작해서 올해로 20년째다. 장애인들 중 약 절반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초등학교 교육을 겨우 받았다. 장애인들은 기본적인 교육을 받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수준부터 고등학교 수준의 교육까지, 학습기회를 놓친 성인 장애인들을 중심으로 검정고시 준비 등을 돕고 있다.

교육자였던 자신이 광화문역으로 나온 이유가 뭔가? 무엇 때문에 오래 기간 텐트까지 쳐가면서 농성하는 것인지?

‘공동대표’라는 직함에서 알 수 있듯이 나 이외에도 많은 이들이 돌아가면서 24시간 텐트를 지킨다. 장애등급제 폐지를 중심으로 시작한 투쟁인데, 부양의무제 폐지를 그 다음 조건으로 내걸으면서 보다 확대됐고 그 밖의 세 가지 조건(장애인 24시간 무상활동보조, 수화언어 권리보장,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추가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됐다.

투쟁의 중심 요구사항인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달라

우리나라는 장애인에게 등급을 매긴다. 여성, 노인, 인종적인 등급은 없는데 오직 장애인에게만 등급을 매긴다. 과연 이것이 인간적인 복지 시스템일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현 체계는 장애인에게 주는 복지 수혜 기준이 의학적인 신체, 정신적 손상에만 집중돼있다.

장애인에게 주는 복지서비스에서 다른 부분이 고려돼야한다는 것인가?

물론이다. 장애뿐만 아니라 그 주변 환경도 당연히 고려돼야한다. 교육수준, 소득, 가정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해당하는 사람에게 맞는 서비스가 제공될 것 아닌가. 그래서 공동 투쟁단이 말하는 대안은 개인별지원체계이다. 개인의 신체기능 만이 아니라 개인의 복합적 상황을 고려한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개인별복지체계는 고려하는 공무원에 따라 주관적일 가능성도 있고 형평성의 문제도 생기지 않겠나

공무원도 사람인데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공무원 한 명이 해당 장애인을 고려해선 안 되고 그 밖에 사회복지사, 보조인 등 다양한 주변인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복합적인 체계도 함께 구축해야한다.

그 다음으로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라는 주장은 무엇인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는 부양의무자 기준이라는 것이 있다. 1촌내 직계혈족이나 그 배우자의 재산, 소득이 있으면 부양을 가족이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 기준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바로 많은 장애인들과 그 가족이 빈곤층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도움을 주기보다 가족에게 떠넘기는 반작용이 강한 것이다.

이 밖에 세 가지 요구안도 추가적으로 설명해주면 좋겠다.

현재 거동이 불편한 중증장애인에게 유급보조인을 파견해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가 있다. 하지만 이는 1급 장애인만 받을 수 있으며 기준도 복잡하고 높다. 그리고 이 기준을 통과해 지원을 받더라도 서비스가 하루에 3~4시간 정도로 제한돼있다. 서비스를 받기 위해선 부담스러운 본인부담금도 요구하는 실정이다.

서비스 대상이 1급 장애인인데 본인부담금이라니?

이명박 정부 때 약 50퍼센트, 그리고 얼마 전에 15퍼센트의 인상을 통해 본인부담금이 약 10만원까지 올랐다. 얼핏 듣기에 10만원이 많은 돈이 아니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대상이 1급 장애인임을 고려한다면 분명 부담스러운 액수다. 기본적인 활동이 어려운 1급 장애인이 현실적으로 소득을 벌기 쉽겠는가.

수화언어권리를 보장하라는 요구안은 영화 <도가니>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학교에서는 제 2외국어로 수많은 외국 언어를 가르치는데, 엄연한 언어인 수화를 가르치는 곳은 없다. 농아를 돌보는 교사 중에서도 수화를 모르는 이들이 많은 실정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규교육 교과과정에 수화언어를 제 2외국어로 지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한 교육, 생활환경도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발달 장애인법 제정이라는 요구안도 있는데?

발달 장애인은 지적 장애인, 자폐성장애 등을 포함한다. 사회에서 이들은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을 타인에 의해 검증받고 제한받는다. 발달 장애인법은 안전과 보호라는 이유로 정해진 시설에서만 살 것을 강요당하지 않고 사회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돈 때문에 발달장애인을 집단으로 수용시키고, 온 몸에 문신을 새기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악행은 다시금 일어나지 않도록 하루빨리 방지해야지 않겠나.

정부 측에서는 이에 대한 답을 내놓은 적이 있나

대선이 이루어지던 작년에 박근혜 캠프에서 관련 체계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것이 인수위를 거치면서 ‘단계적 개선’이란 언어로 바뀌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전면적 재검토’로 바뀌었다. 결국 표심을 얻기 위해 말뿐인 공약이었던 것 아닌가.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인데 기획한 행사나 농성이 있나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지만, 우린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정해 각종 문화제, 시위를 광화문에서 하기로 기획하고 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웃음을 머금던 박경석 대표지만 그의 눈에는 피곤기가 가득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각종 회의, 교육, 텐트 농성장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오고갔으니 그가 피곤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텐트 농성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될 때까지 한다”고 힘주어 말하던 그의 목소리에 신념이 묻어나왔다.

최시영 기자(dpthtm0909@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