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로 보는 우리사회(2)

강산에,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1998)

이경준(대중음악평론가)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그 언제서부터인가 걸어 걸어 걸어오는 이 길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가야만 하는지
여러 갈래길 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돌아서 갈 수밖에 없는 꼬부라진 길 일지라도
딱딱해지는 발바닥 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
저 넓은 꽃밭에 누워서 난 쉴 수 있겠지
여러 갈래길 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막막한 어둠으로 별빛조차 없는 길일지라도
포기할 순 없는 거야 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
뜨겁게 날 위해 부서진 햇살을 보겠지
그래도 나에겐 너무나도 많은 축복이란 걸 알아
수없이 많은 걸어가야 할 내 앞길이 있지 않나
그래 다시 가다 보면 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
어느 날 그 모든 일들을 감사해 하겠지



1

1997년 12월 3일. 전과 달라진 세상이 도래한 그날이었다. 정부가 국제통화기금과 구제금융 양해각서를 체결하게 되면서, 국민들은 퇴원의 기약 없는 중환자실에 감금되고 말았다. 조짐을 미리 알아챈 사람들은 없었다. 타이발 금융위기도, 한보, 진로, 기아로 이어진 끝없는 국내기업들의 도산사태도 곧이어 찾아올 끔찍한 현실을 직시하게 하지는 못했다. ‘신한국 창조’라는 역대급 슬로건을 내걸었던 문민정부의 말년은 전대미문의 사건 앞에,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허나 누군가는 책임져야만 하는 엄청난 임팩트만을 남긴 채로 얼룩지고 말았다.

이어 벌어진 여러 가지 사태들을 빠짐없이 주워섬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 영문도 모른 채, 하루하루 쳇바퀴를 굴려오던 영혼들의 처절한 생존담만이 이어졌을 뿐. 멀쩡히 다니던 직장으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은 사람들은 그나마 운 좋은 케이스에 속했다. 집과 차, 세간을 압류당하고 가족과도 작별하게 된 사람들은 절벽으로 몰렸다. 절벽 아래엔 완충장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리얼’이었지, 에어쿠션이 있는 스턴트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떨어졌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었고, 어떤 수식과 설명으로도 충분하지 않은 ‘정글 스토리’였다.

누구나 그러했듯, 당시 내 가족의 삶도 드라마틱했다. 소실점을 향해 추락하던 롤러코스터는 아버지의 사업장을 잠식했고, 세간에 붉은 딱지를 붙였으며, 유학의 꿈을 가로막았다. 꿈은 거세되었고, 오늘 주어진 하루는 더 참혹할 것이 확실한 내일을 영원히 유예하기 위한 방어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비참했다. 그때, 텔레비전을 틀면 할머니의 금가락지가 나왔다. “훌륭한 일 하셨다”는 아나운서들의 기만적인 멘트가 속을 뒤집었다. 파국 앞에서 예술 따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서정시가 힘을 잃은 시대’가 아니라, ‘모든 예술이 일시정지된 시대’였다. 위안과 위로조차도 숨을 죽였다.


2

하지만 실은 모두가 위로를 필요로 했다. 위로란 놈의 효력은 타이밍이 좌우한다. 강산에의 이 노래가 지금 언급될 가치가 있다면, 절대적으로 적절한 시점에 나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 방송국으로부터 국민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노래를 부탁받은 강산에는 우연히 연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고, 영감을 얻어 이 길고 긴 제목의 곡을 쓰게 된다. 이 노래를 발표한 이후 강산에라는 이름 앞에는 ‘사회저항적’이라는 타이틀이 붙게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런 형용사가 중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진실은 보다 단순한 데 있었는데, 노래가 히트했던 이유는 철저하게 ‘고통의 교감’이라는 인간의 특성 때문이었다. 가수는 ‘우리는 모두 고통을 겪고 있으며, 자신의 고통을 느끼는 순간 타인의 고통도 직감하게 되고, 그와 동일시해 타인의 심정을 비슷하게라도 헤아릴 수 있음’에 대해 노래했다. 때로는 가장 즉물적이고 직접적인 가사가 가장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잘 알려진 것처럼 그런 것이 항상 유치하게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 “유한성의 운명을 타고난 채, 하루하루의 평균대를 걷는 인간에게 이 ‘별빛조차 없는 길’이 얼마나 큰 기쁨과 행복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우리의 앞길을 책임지는 것은 우리”라는 것.

사실 모두가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자’는 결기를 가질 수는 없었다. 당시 사회 분위기를 생각할 때, 이런 구절은 치기 내지는 호기에 더 가까웠다. 그렇다고 해서 이 노래를 마냥 평가절하하는 시각도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고전적인 의미의 ‘솔리다리떼(Solidarite)’가 사라진 시대에 인간이 타인과 관계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서 그 누구도 적절한 답변을 내놓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은 인간이 ‘정서’를 잃어버리지 않은 존재였음을 일깨운 서곡이었으며, 사회의 결핍을 개인의 결핍으로 환원하려는 거대한 제도권도 개체들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는 없다는 진리를 환기한 노래였다. 당연하게도 예술이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심지어 빵조차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예술은 목소리를 내고, 차디찬 경제의 압박에도 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인간과 함께 살아남았다. 그게 이 노래가 이 자리에 쓰이고 있는 이유다.


3

IMF를 형식적으로 졸업했다고 하는 2014년, 안타깝게도 사회의 진입장벽은 여전히 높다. “입사원서를 쓰다가 작가가 되겠다”는 후배의 한탄과, “눈높이를 낮추면 길이 보인다”는 속 편한 관료들의 충고가 기묘한 이중주를 형성하고, 한쪽에서는 꿈이 짓밟히는 소리가 들린다. 일찍이 공무원으로 진로를 굳힌 고등학교 2학년 아이가 노련한 40대 아저씨보다 세상물정을 더 잘 파악하고 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그저 노래를 들으며 몇 가지를 소망해볼 뿐이다. 좀 편하게 숨 쉬어 보는 것, ‘앞’이 있는 길을 가고 싶은 것. ‘부서졌을 지라도 날 위해 빛나는 조그만 햇살’이 있는 곳. 그런 사회를 물려줄 수 있는 것.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08:4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