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사회의 논쟁들(2)


진보정치의 미래는 무엇인가?
정당정치인가, 운동정치인가 최장집-조희연 논쟁


최장집 : 참여정부는 정당을 우회하는 ‘탈정치’로 인해 실패. 민주주의의 핵심인 정당이 발전해야 민주정부가 성공해.
조희연 : 참여정부는 비제도정치적 힘을 형성하지 못해 실패. 진보적 민중주의를 위한 운동정치의 강화가 필요해.


박라인 (본교 사회학과 박사수료)



  MB 정부를 탄생시킨 2007년 대선은 한국의 진보세력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외환위기 이후 2번의 대선에서 연거푸 승리하며 10년간 집권했던 민주화 세력이 아이러니하게도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은 한국의 진보세력이 자신들을 뒤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진행된 최장집 교수와 조희연 교수 사이의 논쟁 역시 이런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 논쟁은 참여정부의 실패를 진단, 반성하고 동시에 진보정치의 미래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최장집 교수의 참여정부 비판: 탈정치의 함정과 정당정치의 복원

  최장집 교수는 경향신문(2006년 9월 28일), 한겨례 신문(2007년 1월 21일)과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의 실정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최교수는 참여정부가 민주적 선거를 통해 당선된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책임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탈정치’를 통해 그것을 회피하려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참여정부는 사회와 정치를 매개하는 정당을 우회함으로써 지지를 상실했고 대통령의 리더쉽마저도 훼손하고 말았다. 올바르게 기능하는 정당들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갈등들 특히, 자신들의 지지자인 개혁적인 중산층과 서민들의 이익이 대표될 수 있는 정치적 과정과 매커니즘을 확립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는 정당정치를 우회하는 ‘탈정치’를 꾀함으로써 정책 결정 과정에서 기술관료와 전문가 집단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보수성과 비민주성을 강화하고 말았다. 참여정부에는 개혁에 대한 ‘레토릭’만 난무했을 뿐 실제 결과는 그들이 내세웠던 개혁과는 정반대의 것들이었다. 이는 곧 선거에서 정권을 지지했던 진보적인 지지자들과 참여정부의 사이의 분열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결국 대통령의 리더쉽 약화로 이어졌던 것이다.

참여정부에 대한 최교수의 비판적인 진단은 대안으로 이어진다. ‘탈정치’를 참여정부 실패의 핵심원인으로 본 만큼 정치의 복원, 그중에서도 정당정치의 복원을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핵심적인 대안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정치참여의 폭이 평등하게 보장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당체제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당체제의 발전은 지지자들의 요구를 대표하고 선거를 통해 결과를 심판받는 책임성의 원리를 확립시킴으로써 사회적 요구로부터 권력이 유리되는 것을 방지하며 보수정당들 역시 유권자들의 요구에 반응하고 진보정당과 경쟁, 갈등, 타협하는 정치경쟁이 이루어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참여정부와 일부 민주화 세력의 인식은 과거 민주화 운동 시기처럼 민주주의와 도덕을 등치시키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최교수는 지적한다. 정치에 대한 현실적 인식이 부재하기 때문에 권위주의와 민주주의를 대립시키는 도덕주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지자들을 결집시킬 새로운 비전과 전망을 내놓기 보다는 보수의 집권에 대한 공포를 동원함으로써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내부의 비판을 무력화하려한다는 것이다.      
                

조희연 교수의 비판: 운동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

  조희연 교수는 진보매체인 레디앙(2007년 1월 25일)에 기고한 글을 통해 최장집 교수의 주장을 비판하였다. 그는 참여정부의 실패 ‘현상’에 대한 최교수의 지적에는 동의하면서도 현상의 원인과 대안에 대해서는 입장을 달리하였다.

조교수는 참여정부 실패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 번째는 정체성 정치에만 골몰해 보수와 진보의 경계에만 주목할 뿐 이를 진보적으로 해체해 지지층의 외연을 확장하는 헤게모니 정치에 대한 고민이 부재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제도정치를 우회하는 보수세력의 비(非)제도정치적 공격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며 마지막으로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결과인 양극화와 불평등에 대한 급진적인 대안이 부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관통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진보세력이 보수 세력의 저항과 전 지구적 수준의 저항들을 극복할 비(非)제도정치적 힘을 형성하지 못한 것이다. 조교수에 따르면 참여정부의 실패와 진보세력의 위기 원인에 대한 최교수의 지적은 거꾸로 된 것이다. 참여정부는 비정상적인 제도정치 때문이 아니라 비(非)제도정치의 가능성을 간과하고 그 힘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참여정부가 실패한 것은 보수세력들이 제도정치에서의 타협과 공존을 거부했기 때문이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민중주의(populism) 전략에 따라 대중과 직접 결합, 소통함으로써 시민사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해 진보적인 대안들을 실현하는 전략을 채택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교수가 제시하는 대안은 제도정치의 정상화를 넘어서는 ‘진보적 민중주의(progressive populism)’의 실현이다. 그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개혁의 유산이 민중들을 시장에 순치시키고 제도정치의 가능성을 침식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국가의 대안과 비전을 바탕으로 시민사회를 급진화하는 운동정치의 강화가 필요하다. 진보가 제시해야할 신자유주의에 대한 급진적 대안은 사회적 권력관계를 재편하는 헤게모니 전략을 필요로 하며 이는 ‘사회운동에 의한 민주화’를 지속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조교수는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집권한다면 과연 참여정부와 달랐을 지를 생각해보라고 반문한다. 시장과 자본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상 제도정치의 정상화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는 자신의 관점을 ‘사회중심주의’라고 규정하면서 보수 세력이 진보세력과의 사회적 공존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의 급진화를 통해 보수 세력의 비타협성이 견제될 수 있을 때만 제도정치의 정상화도 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진보정치의 대안은?

  최장집 교수는 참여정부의 실패를 제도정치를 우회하는 ‘탈정치’ ‘운동정치의 과잉’에서 찾고 있으며 책임성의 원리를 확립하여 사회와 정치를 매개하는 정당의 기능을 회복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정당정치를 통해 계급타협과 복지국가를 이룩한 서구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최교수의 주장은 충분히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당정치의 회복이 진보세력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삼성공화국’처럼 신자유주의 개혁이후 강력해진 시장, 자본이 제도정치를 우회하고 정당체제를 무력화하는가하면 후기근대의 도래와 함께 점점 더 복잡해지는 사회적 갈등과 요구들로 인해 이를 수용, 매개, 대표할 수 있는 정당체제의 능력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시민사회의 급진화에 주목하고 있는 조희연 교수의 비판은 적절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조희연 교수가 제시하고 있는 전략인 진보적 민중주의 또한 비판받을 점이 있다. 조교수는 지속적인 사회운동을 통해 민중들의 급진화를 이끌어야 된다고 주장하지만 정당정치의 매개가 없는 운동정치와 민중주의가 민주주의를 오히려 후퇴시킬 위험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진보적인 대안을 내세운다 해도 책임성의 원리가 확립되지 않는다면 운동이 엘리트들의 독주로 귀결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운동이란 간헐적이고 일시적인 열정의 분출에 불과한데 그것이 과연 내용이나 지속성의 측면에서 의미 있는 민주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9 03:0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