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깊은 마음의 생태학: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 김영사, 2014.


더 높은 곳에 봉사하기 위한 배움



세속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마음의 고요함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일상의 산적한 과업들이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사방에서 전해오는 불편한 소식들이 우리의 기분을 해친다. 지금 우리가 하는 공부는 마음의 굴곡진 상태에서 벗어나 깊은 마음을 회복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일까. 지금 우리가 속한 세계는 우리 마음의 고요함과 존귀함을 온전히 간직하도록 허락하는가. 『깊은 마음의 생태학』의 저자 김우창 교수와의 만남은 ‘마음 놓인 자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공리적 관점을 넘어서는 마음의 생태학

김우창 교수와 만난 곳은 서울시 안국동에 위치한 한 빌딩이었다. 김우창 교수는 최근 네이버 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문화의 안과밖> 프로그램의 운영위원장으로 위촉되어 활동 중이다. 지난 26일 수요일, 프로그램을 돌보고 강연 준비를 하며 지낸다는 김우창 교수를 만나 『깊은 마음의 생태학』을 출간하게 된 경위를 물었다. 『깊은 마음의 생태학』은 2005년 한국학술협의회 주최 하에 진행된 연속 강좌 <마음의 생태학>의 강의록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깊은 생태적인 연관이 있어요. 최근 영국대학의 뇌과학 연구 결과가 영국 BBC 방송에 보도되었는데 가장 오랜 기간 사람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 것이 바로 자연이라고 해요. 흔히 에콜로지를 이야기할 때 공기가 나빠졌다거나 경제에 손실이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공리적, 경제적 관점을 취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공리적, 경제적 관점을 떠나더라도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연에 맞아들어가기를 원하는 깊은 욕구가 있어요. ‘마음의 생태학’은 그레고리 베잇슨의 논문과 에세이를 모아놓은 『마음의 생태학의 여러 단계(Steps to an Ecology of Mind)』에 나오는 말이기도 하죠. 미국에 ‘심부 생태학(Depth Ecology)’이라는 연구 분야가 있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요. 옛날부터 시인이나 철학자들은 자연의 소중함을 말해오기도 했죠. 옛날 시도 그렇고, 한시도 그렇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가 작성한 시의 90% 이상이 자연에 대한 시에요. 자연을 빼면 시가 없죠.”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자연 이해

우리가 자연에 대해 알면 알수록,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제가 헛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죠. 인간은 자연 속에서 진화하며 수십만년을 길들여져 왔잖아요. 자연에 대해 안다는 것은 자연을 사람이 더 많이 통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아요. 오히려 자연이 사람의 개입을 넘어선 차원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고 인간의 통제가 부질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죠.”

그는 자연의 비인간성은 인간을 넘어 자연을 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 무참함까지도 포함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영국 시인 키이츠가 쓴 편지에 내가 자주 인용하는 좋은 문구가 있어요. 성경의 ‘세계는 눈물의 골짜기’라는 말을 바꾸어서, 키이츠는 ‘세계는 영원을 다져내는 골짜기’라고 말해요.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게 되는 여러 고통은 정신을 다져내는 하나의 수단이고 우리는 여기에 승복할 수 있어야 해요. 요즘에는 행복, 행복을 외쳐대는 경우가 많지만 불행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죠. 불행 속에서 인간의 정신이 더 깊이 성장한다는 것, 눈물 속에서 영원이 다져진다는 걸 알아야 하죠. 자연은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인간의 깊은 마음을 깨닫게 하죠.”


세계에 대한 신뢰

『깊은 마음의 생태학』에서 그는 무변대의 우주, 깊은 자연의 신비는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삶을 넘어가는 세계를 생각하게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떠나고자 뒤로 한 인간의 삶 없이는 있을 수 없는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랑이 ‘세계에 대한 신뢰(confiance au monde)’를 이야기하는데, 세계에의 신뢰가 무너지면 자연과의 관계도 무너지기 쉬워요. 먼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되어야죠. 그리고 인간이 자연의 자비로움을 인식하면서도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시련을 승복할 수 있어야 해요. 인간은 살면서 고통을 겪기 마련인데, 그 고통이 사람에서 오는지 자연에서 오는지 생각해야 해요. 사회 제도가 나빠서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든가 학대의 대상이 되었다든가 경찰에 붙잡혀 고문의 대상이 되었다든가 하는 식의 잘못된 인간 관계에서 생기는 고통이 있어요. 이런 고통은 제거해야죠.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고통이더라도 자연과의 관계에서처럼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고통이 있어요. 예컨대 사랑하는 죽었다,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 내가 죽는다와 같은 것들은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지만 인간의 힘으로 돌이키기 힘든 필연적인 것이죠. 이런 것들까지 아울러 성찰하는 깊은 마음의 생태학이 필요해요.”


더 높은 곳에 봉사하기 위한 공부

그는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감이 세계와 자기를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에 대해 이해하고 자기 삶을 의미있게 사는 것이 인간의 욕구이자 사명이라는 것이다. 그는 과거의 공부는 대개 세상의 모습을 아는 공부였지만, 오늘날에는 전문가 혹은 기술자가 되어야 하는 공부를 하는 경향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전문지식을 습득하는 공부가 인생 전반에 대한 폭넚은 공부와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논어』에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문장, 사람은 도구가 아니라는 말이 있어요.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자신이 왜 사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넓은 생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것을 잃어버리면 정신이나 육체의 온전함을 상실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헤겔이 그런 얘기를 했는데, 물건과 객관세계를 상대로 일을 하면 자기자신을 억제하고 절제하는 것을 배울 수 있어요. 전기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전깃줄을 끊어버리면 안 되잖아요. 전문적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자기 기율을 배우고 사물의 객관성을 배울 수 있죠. 중요한 것은 전문적 지식과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일반적 지식을 조화시키는 것, 전문적 지식 속에 일반적 지식이 들어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전문 지식에 복무하는 사람들이 인간적 조건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하는 것이겠죠.”

마지막으로 김우창 교수에게 후학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온화한 목소리로 답했다. “전문지식을 쌓는 것, 전문적인 것을 보다 넓은 학문의 맥락에 자리매김하기 위해 교양을 습득하는 것, 그것이 자기를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곳에 봉사하기 위한 것이라 여기는 것, 이 세 가지가 대학원 다니면서 필요할 것 같아요. 서양인들은 공부한 사람이 높은 자리에 나가거나 사회에 나가는 것은 공공봉사라고 했죠. 공부하는 사람에게 이런 자세가 필요해요. 동양에서는 자기수련을 극기복례라고 하죠.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예는 여러 사람의 사회적 협약을 미적으로 판단한 것이죠. 같이 잘 지내는 것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 ‘예’예요. 자기만을 신경쓰면 자유가 없어져요. 자기를 이기고 여러 사람에게 돌아가야죠. 자기를 죽이는 게 아니라 자기를 죽이면서 살리는 것, 큰 사람이 된다는 게 아니라, 큰 것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것이 자기수련이고 배움이에요.” 나지막히 답하는 김우창 교수 뒤로 인왕산 자락이 펼쳐졌다. 더 높은 곳으로 돌아가기 위한 배움이 무엇인지 되새겨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선민서 기자 minseo@korea.ac.kr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04:2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