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기]

Friedrich List. 『The National System of Political Economy』. New York: A. M. Kelly. 1885(1966).

경제발전에 이르는 다양한 길들

김민철(자유기고가)



“고전학파는 자유개방경제하에서는 저발전국이 공업력의 배양을 통해 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영국이 과연 자유방임 하에서 발전하였는가? 자유무역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게 만들기 위해서 저발전국은 먼저,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보호무역과 같은 효율적인, 인위적인 정책수단을 사용해서 일정정도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왜 고전학파는 영국이 일찍이 타국으로부터 입수한 생산력에 대해서는 침묵하는가?”(131-133p.)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대표적인 이론가 중의 한 명인 프리드리히 리스트(1789~1846)의 주장이다. 우리에게는 이른바 ‘유치산업 보호론’으로 유명한 바로 그 리스트다. 당대의 독일은 자본주의적 발전의 선두주자였던 영국은 물론이고 프랑스보다도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뒤처진 국가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리스트는 당대의 헤게모니적인 경제이론이었던 스미스나 리카도의 고전파 경제학에 의문을 제시하고, 독일의 역사와 시공간적 조건에 천착해서 독특한 경제이론을 제시했다. 당대의 가장 부유한 패권국가의 이론이라면 서로 먼저 배우고 적용해보려고 아둥바둥할 뿐 아니라 원조타령에 여념이 없는, 그래서 오히려 종주국보다 더 종주국스러운 것을 숭상하는 우리의 태도와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경제를 발전시키는 다양한 방법들

리스트는 고전파 경제학이 노동가치에만 주목한 나머지 생산력 개념이나 경제성장을 증대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고찰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또한 그는 고전파를 ‘보편경제학’(Cosmopolitan Economics)이라 야유하며, 이것은 영국을 준거로 하는 독트린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리스트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각각의 서로 다른 경제발전단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 국민에 적용 가능한 국민경제학이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고전파는 저발전 국가가 인류의 발전을 이끌어내는 가장 강력한 힘인 공업력을 자유개방경제하에서는 결코 발전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외면한다는 것이다(316p.).

리스트는 고전파의 방법론인 연역적인 공리중심의 접근이 아닌 역사에 준거를 두는 귀납적 접근을 통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리스트의 후계자인 장하준의 지적처럼 역사적 접근법은 기본적으로 기술, 제도, 정치적 환경의 변화들을 고려하는 가운데 지속적인 역사적 패턴을 찾고, 그것을 설명할 이론을 만들고, 그 이론들을 현재의 문제들에 적용하려 한다.


중요한 것은 공업력

역사학파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한 국가의 번영은 세이(J. B. Say)가 믿는바와 같이 국민이 부, 즉 교환가치를 증대시킬수록 커지는 것이 아니고 국가가 그 생산력을 발전시킬수록 커진다. 리스트는 국가의 대외무역은 개별상인의 그것처럼 철두철미 가치론에 따라 물질재화의 단기적 이익만을 고려해 수행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보호무역을 실시했을 경우 초기에는 희생이 야기될 수 있지만 이는 생산력의 발전에 의해서 보상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흔히 듣는 주장들 즉 보호무역은 다수의 소비자가 손해를 입고 소수의 산업가만 이득을 본다는 논리를 그는 공업은 다양한 전, 후방 연계효과를 지니며,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며 반박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보호무역만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연자원이 풍부하거나 발전단계의 초기에 있는 국가들 또는 고도로 경제가 발전한 국가들은 자유무역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보호무역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국가들은 자유무역을 통해 일정수준 정치, 경제적 발전은 이루어 졌으나, 해외의 경쟁자에 비해 산업능력이 떨어진 나머지 발전이 답보상태에 놓여있는 중진국들이며, 그나마도 영구적이 아니라 일시적인 하나의 방책으로서 유치산업보호를 주장한다.

너무나 노골적인 리스트의 국가주의나 부르주아 이익에의 투철함, 식민지의 가치를 역설하는 제국주의자의 면모는 책을 읽는 내내 불쾌감을 주지만, 패권국가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비판하며 제 나라에 맞는 부국강병책을 역설하는 부분에서는 까닭모를 숙연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리스트의 이론이 메이지 이후 일본의 경제모델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니 일본의 아류모델로 경제를 운영했던 한국 사람들도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19:5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