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과학 연구의 특별함

이상욱 (한양대, 과학기술철학)



갈릴레오는 메디치가의 공식 ‘자연철학자 겸 수학자’의 지위에 기대어, 자신의 과학적 주장이 보다 높은 권위와 설득력을 갖기를 기대했다.

역사적으로 과학의 발전은 항상 그것이 연구되던 사회적 조건을 현명하게 활용함으로써 얻어졌다.




  21세기 과학연구는 어떤 특징을 가질까? 일단 과학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숫자와 그들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다른 역사적 시기에 비해 엄청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강 이야기해서 19세기 중반까지 과학연구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아주 드물게 대학의 자연철학 교수직을 얻거나 영국 왕립연구소처럼 대중에게 과학적 성과를 보급하려는 단체에서 강연자로 일하는 것이 그나마 가능한 방법이었다. 뉴턴은 전자에 해당했고, 전자기학의 기초를 놓은 패러데이는 후자를 활용했다.

  더 이전 세대 과학자들은 재력가나 권력자의 후원에 의존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유럽의 군주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놀라운 신무기를 많이 만들 수 있다고 자랑한 일이나, 갈릴레오가 이탈리아의 유력한 가문인 메디치가의 후원을 얻기 위해 자신이 발견한 목성의 위성에 ‘메디치의 별’이라는 명칭을 붙인 후 마치 위성이 목성 주위를 맴돌 듯 군소 영주들이 메디치가의 지배하에 있게 될 것이라는 그럴듯한 해석까지 덧붙인 것이 그 예다. 갈릴레오가 노렸던 것은 단순히 자신의 과학연구를 위한 재정 확보만이 아니었다. 바티칸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 위세를 떨치던 메디치가의 공식 ‘자연철학자 겸 수학자’의 지위에 기대어, 그는 자신의 과학적 주장이 보다 높은 권위와 설득력을 갖기를 기대했다.

  그렇다면 과학연구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해졌을까? 물론 과학연구, 특히 뚜렷한 목적을 갖고 체계적으로 과학자를 ‘동원’하여 수행되는 과학 및 기술연구가 유용하다는 점을 사회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19세기 화학공업과 전기공업에서 시작하여 점차 다른 산업 분야로 확산되었다. 기술혁신을 통해 산업이 성장하고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과학지식의 응용이 곧 기술혁신은 아니지만 기술혁신이 관련 과학지식 없이 성취되기는 어렵다는 점이 사회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과학과 기술이 거의 구별없이 사용되며 빠른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가 과학기술 연구를 적극적으로 진흥하여 눈부신 성과를 거둔 우리나라에서 이 점은 매우 익숙하다. 일반인들은 과학이란 말을 들으면 대개 대학을 떠올리지만 실은 21세기 과학자의 절대 다수는 산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다.

  직업으로서의 과학자의 증가는 전쟁 및 무기 관련 연구와도 관련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각국 정부는 과학자와 기술자를 군사작전식으로 일사불란하게 조직하여 협동 연구를 수행하도록 하면 핵폭탄처럼 아주 복잡한 무기도 개발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 연구의 인상적 성과는 전후 미국의 과학연구 예산이 냉전 시기 내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시기동안 과학자들은 직접적인 무기 연구가 아니더라도 잠재적으로 군사적 유용성이 있는 주제, 예를 들어 열대 풍토병이나 심리적 통제에 대한 연구에 풍부한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20세기 후반기가 되면 공학연구로부터 얻어진 기술혁신이 많아지고 군사기술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줄어들면서 과학연구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타격을 받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과학자들은 당혹감을 느꼈다. 갑자기 자신 연구의 사회적 가치를 해명해야 하는 낯선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런 해명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과학이 인류복지에 기여한 바를 부인해서도 아니고 진리탐구의 가치를 무시해서도 아니다. 그보다는 제한된 사회적 자원을 필요로 하는 가치있는 활동이 과학연구 이외에도 여럿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과학자들은 이런 상황에 차분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과학의 발전은 항상 그것이 연구되던 사회적 조건을 현명하게 활용함으로써 얻어졌기 때문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22:4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