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꿈치 사회󰡕, 강수돌, 갈라파고스, 2013.

적대적 경쟁은 만들어진 것이다

공교육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줄 세워진다. 성적으로 줄 세워지고, 스펙으로 줄 세워지며, 경쟁에서 밀려난 삶에는 대안이 없다고 자조하기도 한다.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경쟁은 더더욱 가속화되고 장려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보다는 그러한 경쟁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더욱 더 공고해지고 있다. <팔꿈치 사회>는 한국인들이 어떻게 경쟁을 내면화 하는지, 내면화된 경쟁이 어떻게 인간성을 파괴하고 있는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에 대해 고찰한다. <팔꿈치 사회>의 저자, 강수돌 교수를 만났다.

경쟁의 내면화, 그 동인들

팔꿈치 사회라는 말은 ‘옆 사람을 팔꿈치로 치며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하는 치열한 경쟁사회’를 일컫는다. 저자에게 한국사회에서 왜 이한 경쟁의 내면화가 보편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했다. 그는 경쟁의 내면화에 역사적‧사회적 뿌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저는 식민지 경험, 해방 전후와 6.25 전쟁이 한국인들에게 집단적 트라우마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힘이 세지 않으면 당할 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된 것이죠. 여기서 강자 동일시가 이루어지게 되는데요. 사회적 약자 계층의 부모가 자녀만큼은 사회의 최강자가 되기를 바라게 되는 거죠. 100점이나 1등 추구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IMF가 역사적 트라우마를 강화시켰다고 생각하구요. 한국 기업들이 중국이나 동남아에 가서 예전 우리가 당한 것들을 가해자의 입장에서 반복하는 경우가 있지요. 우리가 받은 상처를 되물림하고 있어요. 강대국이 되어서 예전의 서러움을 극복하겠다!라는 마음이 아니라 강자동일시를 탈피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경쟁의 내면화의 다른 동인들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경쟁의 내면화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학습’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내면적 경쟁을 어떻게 배우게 되는가.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 시스템이 있을 테구요,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가정 안에서 이런 경쟁을 배우게 되는 것이죠. 가정에서 아이가 조건 없는 사랑을 듬뿍 받으면 내면의 평화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부모의 사랑은 굉장히 조건적 사랑이죠. ‘내가 너에게 이만큼의 사랑을 줬는데 너는 왜 이정도의 성과 밖에 내지 못하지?’ 라고 애에게 묻는 겁니다. 아이가 100점을 받아오면 ‘너희 반에 100점 맞은 애가 몇 명이야?’라고 물으면서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경쟁을 교육시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경쟁은 무조건 비판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는 모든 경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부연했다. “진리를 위한 경쟁, 삶의 질을 위한 경쟁은 필요합니다. 경쟁(competition)의 어원은 ‘함께 추구한다’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늪으로 갈 것인가, 더 나아질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인 것이죠.”

정서적 프롤레타리아화

그는 자신의 진정한 느낌을 제쳐놓고 현실세계의 압박을 스스로에게 강제하는 현상을 ‘정서적 프롤레타리아화’라고 부른다.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생산수단을 박탈당한 채 자신의 노동력만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을 ‘경제적 프롤레타리아화’라고 불렀습니다. 이 개념을 확장한 것이 ‘정서적 프롤레타리아화’이구요. 저는 이러한 정서적 프롤레타리아화가 특히 군사 노동자와 섹스 노동자들의 노동 안에서 일어난다고 봅니다. 군사 노동자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전제로 돈을 벌고, 섹스 노동자는 돈을 목적으로 몸과 마음을 판매해야 하지요. 저는 이런 상황을 정서적 박탈 상태라고 봅니다. 문제는 일반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이런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인데요. 일을 할 때 내 자신의 진정한 느낌을 속여야 하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박탈하고 자기 소외를 시키고 자신의 정서가 아닌 것을 자신의 정서라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는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경쟁게임’의 승자 또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했다. “경쟁게임에 돌입하는 순간 모두가 자본의 희생물로 전락하게 됩니다. 교사가 아이들을 장악하는 방식으로 ‘철봉까지 달리기’가 있죠. 철봉까지 달려서 먼저 도착한 1등부터 3등까지 쉴 수 있게 해주고, 나머지 아이들은 계속해서 철봉까지 달리기를 하는 겁니다. 이 경쟁은 사실 무의미합니다. 단지 먼저 도착한 아이들이 더 많이 쉬는 것일 뿐이거든요. 저는 여기서 교사의 역할이 자본의 속성과 닮아 있다고 봅니다. 자본의 속성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경쟁과 분열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저는 적대적 경쟁을 승자와 패자가 모두 상처 입는 구조라고 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보면, 비단 피해자의 상처 뿐만 아니라 가해자조차도 자신의 인간성에 상처를 받거든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가해자도 복수의 두려움에 떨고, 구체적이거나 피상적인 모종의 두려움을 겪게 됩니다.”

경쟁의 프레임을 너머 협동의 프레임으로

저자에게 ‘내면적 경쟁’ ‘적대적 경쟁’의 메커니즘이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가 나아갈 길에 대해서 질문했다. 그는 경쟁의 프레임을 버리고 협동의 프레임을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 우리는 적대적 경쟁의 프레임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경쟁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폭력적, 경쟁적인 인간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프레임 전환의 시작은 자아 사랑입니다. 자신의 약점을 감추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경쟁구도를 버리라는 말은 곧 생존을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옳고 그름은 분명히 있지만 이런 사회 속에서 생존해야 하는 이들이 경쟁의 프레임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말했다. 그는 우리가 처한 현실은 실존하나, 적응해야 하는 현실과 바꿔야 하는 현실을 분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물론 우리가 처한 현실은 실존합니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이 맞다고 인정하고 동참하는 순간 전체 사회는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경쟁의 승자는 과연 행복한가, 물었을 때 확답할 수 없는 것이거든요.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진정한 현실 직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현실에 등을 돌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적응해야 할 부분에 있어서는 현실에 적응해야겠지요. 그렇지만 그 현실이 사회와 역사를 악화시키는 것이라면 바꿔야 합니다. 당장 오늘 이 모든 것들을 바꿀 수 없기에 적응해야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 풍토를 바꾸고자 매일 노력해야 합니다.”

그가 지향하는 사회는 어떤 것인지 물었다. “ 1등이나 100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자신의 꿈과 개성에 맞게 성장하고 비슷비슷하게 대접 받을 수 있는 사회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높은 수준에서의 평등화가 존재하는 사회 말입니다. 물론 완벽한 사회는 없죠. 하지만 불평등한 사회구조만이 우리의 유일한 전망도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대안에 대해서 질문했다. “공교육의 경우에는 혁신적인 교육감을 뽑는다든지, 혁신학교나 실험학교 무지개 학교 등 대안적인 교육을 추구할 수도 있구요. 틀 밖으로 나가는 것이지요. 생활협동조합 같은 공동체도 있구요. 이런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거든요. 경쟁에 실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탈하여 소통하고 연대하고 협동하면서 인간성에 부합하는 가치를 느끼게 됩니다. 제가 하는 이야기가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 경쟁의 본질과 뿌리를 파악한다면 현실 또한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협동과 연대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학원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저는 85년에 대학원에 입학했는데요. 지금 대학원은 경쟁의 관점에서 보자면 예전보다 치열하고 삭막해졌고 예전보다 힘들어졌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생들이 진정한 학문 공동체를 꾸렸으면 좋겠습니다. 학문을 독점적으로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개방적인 학술 토론을 통해서 서로 배우는 학문 공동체를 꾸리는 것이지요. 대안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나가고, 결과 때문에 과정이 소외되지 않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원래 대학의 의미는 ‘보편적인(universe)'라는 뜻이 있습니다. 대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곳이고, 그것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보편적인 진리를 무시하고 편협한 학문을 추구해서는 안 되지요. 또한 저는 학문과 삶이 일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론과 실천의 일관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나홀로가 아니라 더불어 가는 학문 공동체를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은영 기자 euni15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