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래를 위한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할 고민

이정우, 「경제민주화의 과제」

조기숙, 「한국정치에서 진보의 미래」

오종록, 「21세기 한국사학 무엇을 해야 하나」

2000년 봄에 창간된 이래, 역사 연구의 현재성과 대중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 온 역사 계간지 《내일을 여는 역사》가 통권 50호를 발간했다. 50호에는 “‘한국의 내일은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이름의 특집, 역사대중화를 주제로 하는 특별좌담, 오늘날의 역사학에 관한 진단 등이 실렸다. 본지에서는 이정우 교수의 「경제민주화의 과제」와 조기숙 교수의 「한국정치에서 진보의 미래」, 그리고 오종록 교수의 「21세기 한국사학 무엇을 해야 하나」를 소개한다. 이정우의 논의에서는 경제민주화가 재벌개혁에만 한정되는 현상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기숙의 글에서는 세대론적 관점을 통해서 진보세력의 선거전략 부재와 자기반성의 필요성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오종록의 논의를 통해서는 한국사학이 앞으로 어떻게 더 내실있는 연구적 성과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해 전망해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재벌개혁 그 이상

이정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경제민주화의 과제」에서 경제민주화의 개념을 제시하고, 한국 자본주의가 경제적 반민주주의 상태임을 분석한 다음, 경제민주화를 위한 세 가지 큰 과제를 제시했다. 민주주의는 공장의 문턱을 잘 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회사, 은행, 학교, 군대, 언론, 종교 등의 앞에서 민주주의는 멈춰서 있다. 이정우가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민주주의를 각 경제조직의 문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경제적 약자라 할 수 있는 소액주주, 중소기업, 노동자가 경제조직에서 참여가 증진되는 현상을 경제민주화라 할 수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 보다는 조직 민주주의에 그 핵심이 있고, 주주자본주의보다는 참여자본주의와 더 친화적이다. 소수의 강자만 잘 사는 경제가 아닌 다수의 약자도 더불어 잘 사는 상생의 경제체제를 만드는 것이 경제민주화라고 이정우는 정의한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박정희로 대표되는 관치경제 모델과, 외환위기 이후의 시장만능주의 모델의 불편한 동거로 작동하고 있다. 전자는 국가독재 모델이고, 후자는 시장독재 모델이므로 둘 다 민주주의와는 공존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고 이정우는 진단한다. 이정우는 경제민주화의 과제로 재벌개혁, 노사관계 개혁, 그리고 사회적 경제의 발전을 말한다.

재벌개혁의 과제는 내부적으로는 소유지배구조의 개혁, 외부적으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관계 개혁이 있다. 전자에서는 순환출자 금지·금산분리·출총제 등이 그 구체적 안건이며, 후자에서는 대형마트·프랜차이즈·기술탈취 등의 문제가 다뤄져야 한다. 두 번째로 노사관계 개혁이란 노동의 민주화를 말한다. 한국 기업은 비정규직 채용으로 임금비용을 절감하고 해고의 편의성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 이정우의 평가이다. 탈출구가 없는 교착상태에서 이정우는 사회적 대화를 통한 대타협이 최선의 해법이라는 다소 순진하지만 핵심적인 해법을 내놓는다. 세 번째로 사회적 경제는 경제적 약자들의 자생적·민주적·풀뿌리 생산조직을 말한다. 협동조합이 대표적이다.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금융 등도 모두 사회적 경제 영역에 속한다. 재벌개혁 뿐만 아니라 노동의 민주화와 사회적 경제의 활성화가 동반되어야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고 이정우는 강조한다.

진보세력은 신념에서 벗어나 경험을 통해 자기반성 해야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정치에서 진보의 미래」에서 지난 대선에서의 야권 패인의 요인을 대선 이후에 소급된 분석이 아닌 대선 이전의 온갖 예측들에서 찾아봄으로써, 한국 진보세력의 미래에 대해 진단한다. 대선에서 민주당이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 예측했던 사람들의 근거로서 조기숙은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 총선 득표율에서 야권은 비록 의석수에서는 패했지만 총 득표율은 야권이 우세했었다. 둘째, 하나의 지역구를 놓고 제로섬게임을 하는 총선에 비해 대선은 후보단일화가 비교적 쉬울 것이다. 셋째, 이미 후보가 정해져 있었던 새누리당에 비해 역동적으로 경선을 치룰 수 있는 민주당이 유리할 것이다. 넷째, 한명숙에서 이전된 이해찬 리더십이 보다 유능한 거버넌스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민주당보다는 새누리당에 더 유리한 대선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훨씬 우세했었다고 조기숙은 본다. 첫째, 새누리당의 견고한 정당지지도, 둘째,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회고적 선택보다 전망적 선택이 우세하므로 이명박 심판론은 크게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 셋째, 고령화, 넷째, 8~10년 주기설에 비춰볼 때 새누리당이 아직 5년밖에 집권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 그 이유였다.

조기숙은 민주당이 무엇보다 중산층의 속성에 주목하지 않았으며, 경험에 기반한 선거전략을 세우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중산층은 정치적 쟁점에는 개혁에 적극적이지만, 경제적 쟁점에서는 분열한다. 아직 한국에는 박정희 신화가 작동하기 때문에, 정치가 쟁점화되면 민주당이 유리하지만 경제가 쟁점화되면 새누리당이 유리하다고 조기숙은 본다. 당시에 대다수의 진보언론과 지식인들은 경제를 쟁점화하고 좌클릭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조기숙은 자신의 경험적 연구에 기초하여 그러한 전략으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분단과 그로 인한 레드컴플렉스와 보수적 국민을 탓하기만 해서는 해결책이 없으며, 진보는 이제 신념에 갇히기보다는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조기숙은 또한 진보 엘리트들은 경제적 좌파만이 진정한 진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세대론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미 실효를 다한 것이며, 젊은층 유권자에게는 이미 20세기의 낡은 유물임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기숙은 경제적 좌파는 이미 서구에서 구좌파라 불리며, 통합진보당의 집단주의적이고 위계적이며 불투명한 특징들은 구좌파의 속성들이라고 본다. 반면에 신좌파는 구좌파와 달리 덜 이념적이어서 경제적 균열보다 문화적 현상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박근혜가 대선 당시 내세웠던 여성주의와 개인주의가 오히려 민주당보다 더 젊어보였기 때문에 중산층과 50대의 이탈을 낳았다는 것, 진보세력은 자기반성을 통해 신좌파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 조기숙의 주장이다. 1987년 운동권 세대와 여전히 진보세력의 주류인 구좌파적 지식인들이 과연 2008년 촛불집회, SNS를 통한 정치참여, 안철수 현상 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조기숙은 의문을 던진다.

역사학자는 사관을 드러내놓고 논의해야

오종록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는 「21세기 한국사학 무엇을 해야 하나」에서 한국의 민주주의의 내실을 채우기 위해 한국사학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말했다.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은 우리에게 역사를 불러내는 큰 목소리들이다. 이와 달리 사회의 병리 현상이 깊어가는 가운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역사가 필요하지 않은 것만 같다. 그러나 역사가는 작은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몇 해 동안 한국이 OECD 나라 가운데 자살률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10대 자살률도, 노인 자살률도 모두 1등이다. 사회적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적 원인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오종록은 말한다.

사관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오종록은 강조한다. 특히 영웅사관을 비판하는데, 물론 근대 역사학이 성립된 이후로 영웅사관은 역사학 내부에서는 그 위상이 약화되었으나, 사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몇 명의 천재가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부유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처럼 언론이 호들갑을 떨고 대중이 이를 따를 때, 역사학계에서는 마땅히 그것이 영웅사관임을 지적하고 영웅이 권력과 부를 독차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논리로 귀결되면 안 된다는 것을 지적해야 했으나, 의외로 역사학계의 목소리가 적었다면서 이에 대해 오종록은 문제를 제기한다. 영웅사관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전근대적 속성이 해소되지 않은 우리의 문화와 결합한다는 데 있다는 것이 오종록의 진단이다. 사회 전반이 근대 자본제사회의 내용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전근대사회의 속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오종록은 2008년 이명박정권 출범 이후 기본권의 억압과 무시, 유력 기업과 개인의 특권 강화, 세습권의 강화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의 이면에는 특권적 지위를 쉽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전근대적 성격이 짙은 문화의 존재가 있었다고 오종록은 본다.

한국사학계에는 사관을 드러내놓고 논의를 전개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으나, 사관을 드러내는 일은 필요하며, 이를 통해 사관의 설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해서 경계해야 한다. 가끔 사관이라며 자학사관을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관이 역사의 변화와 발전의 양상을 보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자학사관은 학적으로 성립될 수도 없는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을 사관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볼 때, 사관을 밝혀놓고 연구를 진행하는 것의 필요성을 보게 된다고 오종록은 말한다. 역사와 관련된 분쟁의 결과로 배태된 문제도 있다. 먼 옛날에 존재했던 어느 국가의 역사가 현존하는 국가나 민족 중 어느 누구의 소유물인가 하는 방식의 역사적 상상력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어느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를 검토하는 일과, 그 역사는 현존하는 어느 국가에 귀속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학술부 박성태 기자 clsrnofu@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