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 본교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

공부는 정직하게 말하기 위한 끊임없는 연습

2013년에 한국에서 대학원생으로서 학문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의 대답을 듣는다고 해서 이 질문이 완전히 해소될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학문에 대해 성실하게 임했던, 그리고 지금도 그러하고 있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고 싶을 때가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질문에 관심이 없겠지만, 원생들은 종종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가령 이번 본교 세종캠퍼스에서 비박사 강사들의 강의가 폐강되는 사태와 같은 일들을 경험할 때 그렇다. 그럴 때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은 무척 기쁜 일이다. 본교 불문과의 황현산 명예교수는 문학평론가이자 번역가이며 또한 불문학자로서 꾸준히 강단에 서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현장비평에도 활발하게 참가하고 있으며, 작년에 내놓은 비평집 『잘 표현된 불행』으로는 대산문학상과 팔봉비평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호에서는 황현산 교수를 만나 학문의 본령에 대해서, 그리고 학문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한국사회는 얼굴사회

먼저 실적 중심의 연구 풍토의 문제점에 대해 물었다. “한국의 연구 실적 평가는 아무래도 양적 평가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양적 평가의 실행에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한국에는 학적 권위나 신뢰할 수 있는 평가 시스템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한국의 모든 대학의 학적 수준이 다 동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를 공개적으로 터놓고 다루기도 어렵습니다. 한국사회는 또한 얼굴사회입니다. 안면을 튼 관계라고 하는 것이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게다가 학술사업 지원단체들은 관료주의의 문제에서 매여 있습니다. 책임을 기피하려 합니다. 학문의 가치에 대한 믿음이 적고, 학문을 통해서 신뢰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경험도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사회에서 평가의 공정성을 고려하다 보니 자연히 양적평가에 치중하게 된 경향이 발생했습니다.”

학적 성과의 양적 평가뿐만 아니라, 대학의 기업화 역시 연구자들이 학문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큰 요인 중에 하나이다. “대학은 기본적으로 낭비구조입니다. 학생들이 노는 행사도 많고, 방학도 깁니다. 도서관에는 잘 읽지도 않는 책들이 쌓여있죠. 학원보다 훨씬 더 비효율적입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에게는 일정기간 동안 효율성을 무시하고 이상을 추구하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행복의 경험을 한 사람들이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이 보다 행복할 수 있도록 대학은 풍요로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 같은 경우 대다수의 대학을 국가가 운영합니다만 한국은 그렇지 않고 등록금 부담이 학부모들에게 과중돼 있습니다. 대학은 돈에 목말라 있기에 기업의 후원을 찾고, 이익이 되는 쪽으로 학교 운용방향을 돌리는데, 이때 기업과 학교가 대학의 기본 설립목적과 거기에 담긴 정신을 잃어버리면 기초학문이 배제되는 등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대학이 돈이 되는 일을 찾다 보면 무엇보다 눈앞의 일을 속히 해결하기를 구성원들에게 권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학문은 눈앞의 일뿐만 아니라 당장 어디에 소용될지 모르는 일을 긴 시간을 두고 다루는 것이기도 합니다. 연구비에 눈이 멀어 눈앞의 요구에만 급급하다 보면, 연구의 독창성을 담지하기 어려워집니다.

대학은 어떤 곳이어야 하며 학원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늘 필요합니다. 대학원의 의미도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대학원은 학자 양성이 주목적이라고 합니다만, 몇몇 대학원들은 이미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학문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안면을 익히고, 학위를 취득해 이력서를 꾸미는 데 이용되고 있습니다. 출석만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지요. 진지하게 논문을 쓰지 않고 대필을 하게 되니 이런 상황에서는 표절도 발생하기 쉽습니다.”

논문 표절 문제는 물론 개인의 학문적 진지함의 결여와 양심적 파탄이 그 직접적인 원인이겠지만, 과도하게 논문을 많이 써야 하는 평가구조와도 무관하지 않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논문을 안 쓴다 하더라도 글을 계속 쓰고 있습니다. 한국처럼 분량과 형식이 짜인 글만을 실적으로 인정하는 사회도 드뭅니다. 서론, 본론, 결론이라는 형식에 맞춰 글을 써야만 하는 상황에서 교수들은 비록 표절이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의 글에 충분히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합니다. 표절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도 큰 문제입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어떤 책에서 읽어서 안 것인지, 누구에게 들어서 안 것인지, 자신이 생각한 것인지 구분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들의 생각이 구분돼 있지 않은 경우를 대학원생의 발표에서도 종종 발견합니다. 다른 이들의 저작을 존중해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학문을 계속 할 수 있는 용기

70~80년대와 2010년대의 대학원 분위기의 차이를 느끼는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70년대에는 외국책을 봐야 하는데 번역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책을 살 수가 없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의 기미가 느껴지는 문장을 단 하나도 마음 편히 쓸 수 없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지금은 공부할 환경이 더 좋아졌고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공부하는 사람들의 사명감과 진지함이 더 깊어졌는지는 의문입니다.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대학원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와보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지가 판단의 준거가 되어버린 최근의 한국사회입니다. 대학원에서 내내 공부를 붙들고 있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낙오될 것에 대한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자기 학문의 신념을 가지는 것이 예전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엘뤼아르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면서 그의 전집을 읽지 않고 논문을 쓴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5년 동안 부족한 불어 실력에 끙끙거리며 그의 글들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만, 최근에도 이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학문할 용기를 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내내 황현산 교수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 마지막으로 대학원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지 물었다. “공부는 정직하게 말하는 연습입니다. 수도승의 수련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도승들이 24시간을 수련하는 것처럼 공부도 오래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결국 모든 문제를 공부로 해결해 보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정직하게 말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속적인 성찰과 숱한 시행착오를 겪다보면 개인적 주장과 보편적 생각을 접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편할 날이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긍지를 가지고,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학문공동체를 만들어 가기를 바랍니다.”

■ 인터뷰 : 최은영, 박성태 기자

■ 정리 : 박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