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보고 있는 것일까?

어느 대학원생

한국의 급격한 압축성장의 독특성은 서로 다른 문화경험을 체화한 세대들이 중첩해서 현재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 사회의 제도는 한 번 정착되면 바꾸기 어려운 것이지만, 한국사회의 각종 정치제도들과 사회제도들은 10년~20년 단위로 급격히 전환된 바 있다. 그러나 변화된 제도, 이에 따라 변화된 게임의 규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치 않고 남아 있는 것은 인간의 신체다. 결과적으로 과거의 신체에 체화되고 구조화되었던 특정한 유형의 정신 내지 심성구조는 현재의 문제가 된다. 특정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들이 현재 어떠한 사회경제적 조건에 처해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데, 그들이 현재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해석하는 틀은 비단 현재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과거에도 터해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소위 진보를 열망하는 세력들이 (보수적인?) 과거 세대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우리사회가 민주주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에서야 그저 타인이고 무관심의 대상일지언정 투표에서는 모두가 동일한 1표를 가지고 행동하며, 이의 결과가 미래의 항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름 없고 권력 없는 목소리 없는 사람들이 주목받게 되고 오해받게 되는 순간이 바로 투표다. 투표에서는 어떤 의미에서건 투표권을 가진 타인에게 무관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표권을 가진 이들은 과연 어떤 심성구조와 해석의 틀을 갖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현재의 사건들에 대해 어떠한 해석을 공유하고 있으며 어떠한 판단을 내리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연애담을 회고하는 듯한 감성적인 제목의 이 글이 대학원 신문의 한 켠을 차지하는 것은 이상해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세대갈등이란 이상한 현상을 논하기 위한 제목으로는 오히려 적합한 것 같다. 여기서 이상하다는 것은 현상 자체가 아니라 현상에 대한 접근방식과 해석의 질과 관련된다. 세대갈등은 어떤 의미에서는 보편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세대갈등에 대한 접근과 해석의 방식은 기묘하다. 오로지 현재에만, 그것도 당위적이고 규범적인 방식으로 현재에만 초점을 맞춘 접근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살아가는 구체적인 인간에 대한 이해는 사라지며, 사람들의 태도와 선택은 단순화된 선악구도 아래서 판단된다. 우리와 너희는 동일한 사유양식과 가치구조, 해석적 틀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취급되며, 보수세력에 친화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의사결정은 보수적인 이데올로기 기구들이 허위의식을 주입해서인 것으로 간주된다. 마치 이데올로기 기구들의 영향력만 제거된다면 기대했던 옳은 결과가 당연히 나올 것처럼. 그러나 이러한 무시간적이며 규범적인 인간관 하에서 현실정치와 세대 문제에 접근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결과는 무엇일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현실과 미래를 개선해나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인간에 대한 접근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에 적합한 방식은 규범적으로 옳은 인간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 내지는 만들어낼 수 있는가, 즉 어떻게 계몽할 것인가/할 수 있는가의 문제틀은 아닐 것이다. 현재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인간들이 어떤 심성구조와 가치구조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러한 이성 이전의 감성적 구조들이 현실의 사건 해석에 어떤 식으로 절합되는지를 주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고 어떤 이유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모르는 상태로 대화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현실에서 한 개인이 타인의 말에는 무심한 채 자기 말만 되풀이한다면 경원시되는 게 보통이다. 좀 더 거시적인 층위에 존재하는 정치과정과 사회현실이라고 크게 다른 것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