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발언대

대학구성원 모두를 위한 강의, 그 출발점은 대학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성찰에서

바야흐로 대학가는 중간고사 시즌을 보내고 있다. 강사생활을 시작한 이후 시험기간은 학생들에게는 공부하느라 힘든 시간이겠지만 나에게는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강의를 처음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항상 강의에 대한 여러 고민을 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대학에서의 강의는 어떠해야 할까? 매우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질문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질문이 사라진 대학사회가 대학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현실에 대한 인식과 공동체가 더 나아지기 위한 방안들을 고민하는 것, 배우는 내용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고 고민을 심화시켜 나가는 것.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나누면서 자신의 사고를 확장시켜나가는 것이 대학교육이 지향해야 할 바라고 한다면, 내 강의가 이런 지향에 얼마나 부합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시험문제를 만들고 채점하면서, 지식의 전달과 습득의 정도를 확인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곤 한다. 강의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단편적인 지식의 나열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학자들의 이론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의 논리를 습득하고 자신의 관점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능력, 그리고 그런 생각이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출석을 부르는 것조차 강의평가의 대상이 되고, 상대평가가 강제되는 현실에서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토론을 통한 평가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특히 모든 수업에서 줄을 세우고, 비율로 잘라서 일괄적으로 등급을 매기는 평가 방식에 강의를 맞춰야 하기에 이런 지향은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고등학교의 상황과 별 다르지 않은 이런 조건 속에서, 학생들에게 배우는 지식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라는 말은 공허한 외침에 가까운 것이다.

대학이 요구하는 교육도 이러한 지향과는 거리가 있고, 대학을 소위 스팩을 쌓는 과정으로, 강의를 학점 따는 도구로 인식하는 몇몇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이러한 강의를 꿈꾸는 것이 쉽지 않다. 상대평가라는 제도의 틀 내에서 다양한 강의 방식을 시도해보고 학생들과의 소통을 통해 문제를 개선해 보고자 하지만 어느 순간 제도의 벽을 절감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상대평가제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이 대학답기 위해서 재고해 봐야 할 수많은 제도들이 그 공고함을 더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제도가 일단 만들어지고 구성원들이 그에 익숙해져 버리면 그 제도를 다시 바꾸어내는 데에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더구나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상황을 고려하고 현실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통해 나와 더불어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것이 어색해져 버린 대학에서 구성원들의 노력을 통한 제도 변화를 꿈꿀 수 있을까?

제도 변화는 단기간에, 소수의 누군가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변화 자체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다만 제도의 변화는 인식의 변화와 함께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학 구성원들이 사회라는 틀 속에서 수행해야 할 대학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기업만이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는 것은 아니다. 대학 또한 사회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에 그 역할과 책임을 고민해야 한다. 대학의 사회적 책임은 사회의 요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그에 맞게 교육 시스템을 재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보다 능동적인 자세로 현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사회가 그 구성원에게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