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정의당 국회의원)

실패와 좌절, 그리고 진보의 새로운 전략




작년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야권연대의 한 축으로서 시민들로부터 일정한 지지를 받았고 진보정당 최초로 서울과 수도권에서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 곧이어 분당사태가 벌어지면서 볼쌍사나운 모습을 시민들에게 보여주며 이들에 대한 지지는 급속히 잦아들었다. 그리고 대선 때도 진보정당들은 이렇다할 역할을 하지 못했다. 작년 일련의 일들을 지켜본 여러 사람들은 이제 ‘진보정당은 끝났고 진보정당 지도자들도 이제는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들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보정치의 한 켠에서는 여전히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려는 지도자들이 있다. 이들 중 가장 대표적인 지도자이자 국회의원 중 한 명인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과 이야기를 해보았다. 심 의원은 얼마 전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책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

먼저 책을 출간한 동기와 책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물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사실 정치인으로서 책을 낸다는 것은 늘 망설여지는 일입니다. 하지만 국민들 앞에 자신이 가진 생각을 보다 상세히 내어놓을 책임이 정치인에게 있다는 점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요. 제가 정치를 시작한 지, 그것도 진보정치라는 가시밭길을 걷기 시작한 지 이제 10년이 되었는데, 한 번쯤 정리하고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책은 제 개인적으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봐요.” 그러면서 심 의원은 진보정당이 국회에 진출한 10년 동안 많은 성과도 있었지만, 많은 실패와 좌절도 있었다며, 그 과정 속에서 본인이 배운 것들, 그들이 무엇에 걸려 넘어졌는지, 그들의 실패가 진정 실패였는지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책에 담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단지 성찰에만 머물지는 않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진보정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견해도 담았다고 한다. 심상정 의원은 사실 진보정치가 세력화의 측면에서는 비록 실패를 겪었을지언정, 경제민주화, 복지국가와 같이 진보정치가 추구했던 의제들은 이제 시대정신이 될 정도로 국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며, 이제는 이것을 실현해낼 만한 명확한 가치와 노선, 그리고 정치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의당의 출범

지난 7월 말에 정의당이 출범했다. 당명에서 진보와 노동이 빠졌다. 혹자들은 이를 두고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심 의원에게 이러한 지적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당명에서 ‘진보’와 ‘노동’이 빠졌다고 해서 저희 정의당이 진보적인 가치를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다거나 노동의 중요성을 외면할 거라는 우려는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행동으로 보여드려야 할 일이라고 보는데요, 저희 정의당은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후퇴 조짐을 앞장서서 저지하고, 이번 세제개편안 논란을 통해 다시 한 번 제기된 복지국가 실현방안에 대한 합리적이고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한편, 노동과 환경, 생태 등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의정활동과 입법활동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번에 당명을 바꾼 것은 저희 당이 지난해 창당할 때부터 계획해두었던, 당이 자리를 잡아가는 일련의 과정이고요. 정의당이라는 당명의 의미는 저희 당이 경제의 정의, 노동의 정의, 환경의 정의, 헌법의 정의를 앞장서서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국민들 앞에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진보의 새로운 전략, 사민주의

심상정 의원은 책에서 진보의 새로운 전략으로 사민주의를 제시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사민주의가 무엇인지, 왜 한국사회에서 진보의 전략이 사민주의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청했다. “사민주의가 여전히 많은 국민들에게 생소한 개념일 수 있기 때문에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민주의가 무엇인지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사민주의는 한마디로 자본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가치들, 평등과 연대, 자유와 정의의 나라를 정치적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통해서 건설해가겠다는 것이죠.” 심 의원은 우리 사회가 지난 시절 자본주의에 대해 과신해온 경향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한 미신을 깨트릴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시장도 국민들의 합의에 의한 정치의 통제에 따라 작동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 심각한 양극화와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에 걸맞지 않은 OECD 최저 수준의 복지 지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 제가 사민주의를 진보의 새로운 전략으로 제시한 이유는, 간단히 말해 남들이 베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진보정당이 공들여 만든 정책들 상당부분을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까지 베껴 갔어요. 지난 대선 때 경제민주화니, 복지국가니 모두들 서로 하겠다고 나섰잖아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긴 상황이 돼버렸는데, 그렇다면 저희 같은 진보정당은 스스로를 어떻게 차별화된 대안세력으로 만들어낼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민주의는 다른 정치세력이 함부로 베껴 갈 수 없을 겁니다. 이제는 개별 사안에서 기득권 세력과 밀고 당기기를 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저희가 생각하는 국가공동체의 비전을 큰 틀에서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추구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상이 있고 이를 위한 정책들이 있을 텐데, 다른 정치세력들이 저희 정책의 일부는 베껴 갈 수 있겠지만 저희가 제시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비전 자체를 훔쳐갈 수는 없을 거란 말이죠.” 심 의원은 이제 비전 대 비전의 대결로 한 단계 더 전진해서 국가 운영을 책임지는 수권정당으로서 진보정당이 발전하기 위한 길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신뢰받는 정치인이 될 것

과거 노동운동의 대표적인 지도자에서 진보정당의 대표적인 지도자가 된 그녀는 향후 어떤 정치인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을까? 심상정 의원은 무엇보다 어디 의지할 데 없어 막막하고 억울하고 답답한 서민들로부터 희망으로 인정받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심상정이 하는 말은 믿는다’는 튼튼한 신뢰를 받는 정치인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 우리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신이 너무나 크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상정 정치’로 인해서 국민들이 정치에 희망을 품고, 정치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다.”

심 의원에게 향후 계획을 물었다. “국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의정활동을 중점적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선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바람을 정치권에서 실현해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적 요구가 끊이지 않고 있는 정치 쇄신을 위해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사실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정치구조를 전면적으로 쇄신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선행과제로서 정치개혁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제로 인식하고 지혜를 모을 것입니다.”



인터뷰/정리: 박성태 기자 clsrnofu@korea.ac.kr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18:4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