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하지만 반갑게도,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봄은 개강을 의미하고, 동굴에서 나와 겨울잠을 개어두고 학교로 달려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방학 동안 나태해져 있던 삶을 조이고 열심히 뛰어야 하는 코스의 출발선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러나 잠자는 곰에서 질주하는 야생마로의 변신이 쉬울 리 없다. 잠에서 깨고 바로 달릴 수 없듯이, 처음 몇 주는 멍한 상태로 ‘이만큼은 놀아도 되겠지’, ‘첫 주니까’, ‘중간고사 기간에 열심히 하면 되지’ 등 갖은 핑계를 대며 이부자리에서 늘어지게 된다. 그러다 나중에 페이스를 찾고 열심히 살기 시작하면 학기 초에 탕진한 시간들을 후회하게 된다. 심지어는 영영 열차에 올라타지 못해 뒤꽁무니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다. 소위 ‘발동’이 학기가 끝날 때까지 걸리지 않는 경우다. 한 학기 내내 미루고 미루다 치열하게 공부해 본 적 한 번 없이 학기가 끝나버린다. ‘아까운 청춘’을 밀도 낮게 흘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처참한 학점은 덤이다.  

이를 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시작한다’는 설렘이다. 출발선에 서게 될 때 우리는 적당한 긴장과 마주서게 마련이다. 긴장은 육신을 짓누르는 게으름에 대항할 수 있게 하는 매우 좋은 무기다. 그 설렘과 긴장에 기대 내 삶의 나사를 보다 빠르고 견고하게 조일 수 있다. 그러니 새로운 출발이라는 설레는 감정을, 유치하다거나 식상하다는 꼬리표로 덮어 버리지 말자. 오히려 설렘을 다짐으로 승화시켜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것이 현명하다.

문제는 시작할 때의 설렘은 빠르게 휘발된다는 것이다. 하루 이틀 열심히 뛰다가 나태한 일상으로 회귀하기 십상이다. 새로 산 다이어리를 몇 장 쓰고 버리듯, 새 학기도 첫 며칠만 알차다가 다시 몽롱한 상태로 돌아가기 쉽다. 따라서 뭉툭해진 연필 끝을 다듬어줄 연필깎이가 필요하다. 설렘을 다시 살려줄 기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기제는 개강과 같은 외부 상황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도 있지만, 개인의 의지로 만들 수도 있다. 그 계기를 찾는 것이 새 학기를 ‘잘 출발하는 것’의 관건이 될지도 모르겠다. 사실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다. 작은 행동을 통해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를 반복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새로 펜을 사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느낌을 되살린다. 새로 산 펜 뚜껑을 열고 종이에 처음으로 선을 긋는 행위로 시작하는 느낌을 되살리는 의식을 치른다. 새 펜촉이 종이에 새겨 넣는 날카로운 선처럼 내 이성이 뾰족하게 벼려진다고 느끼는 것이다. 기제의 내용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체육관에 가서 샌드백을 두들기면서 자신을 조이고, 혹자는 나무를 깎아 바늘을 만드는 상상을 하면서 자신을 조인다. 그러한 기제를 옆에 두고 살 수 있다면 시간이 지난 후 과거를 돌아볼 때 느껴지는 후회도 적을 것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새 학기에 임하는 모두가 이번에는 보다 알차게 살 거라고 다짐하지만 그 다짐을 실제로 이루는 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새 학기에 들어서며 준비한 자신의 날카로움을 어떻게 하면 길게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단아(미디어 14)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9 18:3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