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정 분야 핫 이슈는 ‘증세 논란’이다. 한 편은 증세하자는 것으로 명분은 복지 확대이다. 다른 편은 증세는 안 된다는 것인데 이유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국민에게 부담이 되므로 경제 활성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세수가 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 복지수준은 낮지 않아서 더 이상 확대할 필요가 없어 증세는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증세 여부 자체는 어느 한쪽이 맞고 다른 쪽이 틀린 문제가 아니다. 많이 걷으면 많이 쓸 수 있고, 적게 걷으면 적게 써야 한다. 즉 선택의 문제이다(그 밖에 적게 걷으면서 빚내서 많이 쓸 수도 있다. 별로 권장할 것은 못되나 이 역시 가능한 선택지이다).

비록 정답은 없더라도 선택은 제대로 해야 할 텐데, 그러려면 선택지의 내용을 제대로 알아야한다. 그런데 최근의 논의를 보면 실상을 호도하는 것도 있고 왜곡하는 것도 있다. 어떤 것이 감춰지고, 무엇이 그릇되었는지를 알아야 실상을 온전히 볼 수 있다. 지금부터 하나하나 따져보자.    

우선 ’복지 확대를 위해 증세 필요’다. 이 말을 뒤집으면 복지 확대를 안 하면 증세도 필요 없다는 말이 된다. 증세는 걷는 것보다 쓰는 데가 많아서 하려는 것이다. 걷는 것보다 많이 쓰면 적자가 생기고 쌓이면 빚이 된다. 빚 많으면 살림 어려워지니 더 많이 걷어서 적자를 메꾸자는 것이 증세의 논리다. 우리 재정은 2008년부터 작년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적자였다. 2013년 적자는 20조원이 넘었고 작년 적자는 30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미래의 복지 확대는 둘째 치고 당장의 적자 보전을 위해서도 세수 확대가 필요하다. 게다가 2008년 이후 계속된 적자가 무분별한(?) 복지 확대의 결과도 아니다. 2008년 이후 눈에 띄는 복지 확대는 보육과 기초연금이다. 저소득계층에 한정되었던 보육료 지원이 전체계층으로 확대되었고, 10만원 수준이던 기초연금이 20만원으로 올랐다. 그런데 이로 인해 늘어난 지출액은 작년의 경우 넉넉잡아 7조원 정도다(그나마 기초연금 확대는 작년 7월에 이뤄진 것이라 2013년까지의  증가액은 훨씬 적다). 적자의 70% 이상은 복지 확대와는 상관없이 생긴 것이다. 그럼 왜 이렇게 되었나? 가장 큰 이유는 이명박 정부 때 이뤄진 감세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간당간당하게 균형을 맞췄는데 이명박 정부 때 큰 폭의 감세가 이뤄졌고 이후 줄곧 적자를 보게 되었다(그 즈음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가 적자 폭을 크게 하는데 일조하기는 했다).      

다음, 증세 없이도 ‘경제 성장→세수 증대→적자 보전’이 가능할까? 경제가 활성화되면 소득과  소비가 느니 세금이 더 많이 걷히기는 한다. 대략 경제가 1% 더 성장하면 세금은 1.1% 정도 더 걷힌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은 3.8%로, 국세수입은 220조원 정도로 전망한다. 3.8% 성장도 장밋빛이라고 말이 많지만, 더 높여서 5%라고 가정해보자. 성장률을 1.2% 높게 잡으면 국세수입 전망은 1.3%인 2.9조원이 더 많아진다. 하지만 매년의 적자를 보전하기에는 턱없이 작은 규모다(참고로 정부는 올해도 30조원이 넘는 재정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한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복지수준은 낮은 편이 아니므로 더 이상의 확대는 자제해야’라는 주장이다. 최근 기재부 장관이 외국에 나가서 한 말이다. 요지는 우리나라 복지지출 규모가 OECD 평균보다 낮지만 이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탓이며 시간만 지나면 곧 OECD 평균에 도달할 것으로 우리는 이미 고복지에 진입했다는 거다. 몇 가지 사실을 짜깁기해서 엉뚱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현실 왜곡의 전형이다. GDP 대비 복지지출 규모의 OECD 평균은 22%인데 우리는 10%다(①). 현 제도를 그대로 유지만 해도 2040년에는 22%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②). 이 두 가지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복지수준이 낮지 않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현재 10%인 복지지출 규모가 2040년 22%로 늘어나는 것은 고령화 때문이다. 복지지출의 대부분은 연금과 의료비가 차지하는데 이 둘은 고령화에 비례한다(아울러 이 둘은 세금이 아닌 사회보험료에서 지출된다). 우리의 현 고령화율은 12% 정도지만 2040년에는 32%가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그리고 현 OECD의 평균 고령화율은 16%가 채 안 된다. 즉 2040년 우리의 고령화율은 현 OECD 평균보다 두 배가 넘지만 복지지출 규모는 비슷할 것이라는 전망이니, 이는 우리의 복지수준이 얼마나 낮은가를 보여준다.  
        
정리하자. 사실은 이렇다. 1) 지금의 재정적자는 복지확대와는 큰 상관이 없다. 2) 증세 없이는, 앞으로의 복지 확대는 고사하고 현재의 재정적자도 메꾸지 못한다. 3) 우리의 복지수준은 여전히 OECD 최하위권이다. 이제 사실을 알았으니,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김태일

본교 교수 행정학과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9 12:5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