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교회가 회교도에게 빼앗긴 성지 예루살렘을 찾기 위해 약 200년간 치른 십자군 전쟁의 사망자는 최대 100만명으로 예상된다. 두 종교의 교리와 신자들의 깊은 신앙심을 생각해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는 사건이다. 전쟁의 원인이 성지 때문이었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지만, 성지순례가 목숨보다도 더 중요했던 그들에게는 성지를 탈환하는 것이 진리였을 것이다. 최근에도 일부 종교 추종자의 잔인함은 종교의 본질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대단하다.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던 사람들이 현대인보다 머리가 나빠서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까? 매우 느린 뇌진화의 속도를 감안하면, 지능의 차이보다는 집단을 ‘우매한 군중’으로 몰아가는 무서운 힘이 십자군 전쟁의 동력이었다고 추정된다.

한동안 커피에 들어있는 카제인 나트륨이 독극물처럼 취급된 적이 있었다. 이 한심한 상황은 한 커피회사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상대회사를 넘어뜨리기 위해 꾸며낸 선전 문구에서 시작되었다. 우유에는 지방, 유당, 유단백질이 들어 있다. 이 중에서 지방을 빼면 무지방 우유가 되고, 유당까지 빼면 유단백질인 카제인이 남는다. 카제인이 물에 잘 녹도록 나트륨을 붙인 것이 그 유명한 카제인 나트륨이다. 왜 이런 카제인 나트륨을 해롭다고 한 것일까? 이 논리대로라면 카제인이 들어있는 우유도 유해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선전의 효과로 매출의 순위가 잠시 뒤바뀌어 양쪽 회사의 사활을 건 싸움이 벌어졌지만, 한국식품안전연구원이 카제인 나트륨의 무해성을 발표하면서 싸움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유명 여배우가 자기가 들고 있던 커피잔을 가루로 뿌리면서 걸어갔던 장면이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 남아, 대한민국 전체를 우매하게 몰아가고 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독극물처럼 취급되는 MSG(monosodium glutamate)도 유사하다. 오래 전 국내 어느 한 조미료 회사가 난공불락의 상대회사를 모함하기 위해 꾸며낸 ‘우리는 화학조미료인 MSG를 사용하지 않습니다.’라는 선전 문구로부터 엄청난 오해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누명을 씌웠던 회사의 제품에도 MSG가 일정량 들어있었다는 사실은 쓴 웃음을 짓게 한다. MSG의 성분인 글루탐산(glutamate)은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이다. ‘감칠맛’은 기존에 4대 미각으로 알려진 단맛, 짠맛, 쓴맛, 신맛에 이어 새롭게 밝혀진 5번째 미각으로,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의 표지 역할을 하며 우리에게 쾌감을 선물한다. 실제로 MSG가 미각이 둔해진 어르신들의 입맛을 돋게 하고, 입맛을 잃은 환자의 치료제로 이용된다는 사실은 의학계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MSG가 해롭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한때 일부 연구자들이 중국음식을 먹은 후 나타나는 졸림, 두통, 천식, 매스꺼움 등을 MSG와 연관된 ‘Chinese restaurant syndrome’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최근 들어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이 증상 모두가 MSG와 무관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MSG에 의해 맛있어진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이 된다는 것을 배제한다면,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증명된 MSG의 유해성은 없다. 혹시 아직도 MSG가 건강을 해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면, 지구상에서 국민 1인당 MSG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가 최장수국인 일본이라는 것을 참고하기 바란다.

현대인은 발달된 문명을 갖춘 최첨단 사회에 살고 있다. 신과 같은 과학기술에 둘러 쌓여있어서, 복잡한 상황에 처할 경우 대응은커녕 제대로 내용도 파악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뇌의 판단능력이 자기의 작품인 문명이나 과학기술에 한참 뒤처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따라서 자기의 판단력을 넘어서는 일에 직면하면, 그것을 악착같이 따져서 진위를 밝히기 보다는 제시된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우매한 군중’에 숨어버리려 한다. 이것이 안락함을 추구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친구를 왕따시키고 안락함을 찾으려는 학생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무수히 많은 것들에 의해 ‘우매한 군중’으로 전락하고 있는지 모른다. MSG 나 카제인 나트륨에 당했듯이.

나홍식

의과대 교수, 의학과 생리학교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0 03:5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