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2008년에 중앙대를 인수하여 학과조정과 연봉제를 도입하면서 대학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다. 그중에서도 2009년 신입생들부터 전공에 관계없이 ‘회계와 사회’라는 수업을 의무적으로 듣게 하였다. 경영학 중에서도 세부분야인 회계학 과목을 비전공자를 포함한 전체 학생들에게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대부분의 졸업생이 회사 등에 취업하기 때문에 조직생활에 필수적인 회계 기초를 접하여 재무제표는 최소한 읽을 수 있게 해 회사에 들어가 경영학을 뒤늦게 공부하는 피해를 최소화 하자는 취지이다. 이에 따라 도입초기에는 학문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취업의 잣대를 들이댄다는 교수와 학생들의 반발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6년 후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혹자는 중앙대의 입학경쟁률이 높아졌고,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률이 상승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 가시적인 성과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회계적인 사고를 학생들에게 심어주었다는 무형의 효익이 아닌가 싶다.

회계적인 사고란 어느 조직의 활동과 성과 또는 정책의 효익과 비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보로 만들어 이에 기초하여 한정된 자원이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쓰게끔 하도록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계는 공인회계사와 같이 전문가 그룹만 알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엔지니어링, 마케팅, 철학, 생명과학 등은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지만 회계는 조직생활을 한다면 누구나 알아야 하는 지식이다. 전공분야에 관계없이 그 조직과 관련하여 산출된 정보를 이해해야 하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회계의 힘은 회계정보를 활용하여 의사결정을 내릴 때 조직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게 해준다는 데서 온다.

등록금을 인상하지 않고 대학의 투자와 경쟁력은 가능한가? 학문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교육수요에 의한 학과 통폐합은 바람직한가?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나? 과연 증세 없이 경제활성화를 통해 무상복지를 달성할 수 있나? 사회적 기업으로 창출된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가? 세수부족을 법인세 인상이나 재산보유세 강화 대신 소득세와 주민세 인상으로 메꿀 것인가? 우리가 속한 대학 더 나아가서 이 사회에는 무수한 선택과 갈등이 존재한다. 이러한 복잡한 사안들을 언론보도를 통해 접하면서 정부와 언론의 안목과 여론주도층의 혜안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 어느 누구도 객관적으로 따져보고 설득력 있는 분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Rawls는 정의로운 사회를 이성적이고 도리를 아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라고 하였다. Kant는 이성적이란 자신의 판단에 근거하여 감정의 개입 없이 자신의 목표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며, 도리를 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원칙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성은 합리적인 개인의 특성이며, 도리는 협조적 사회를 이루는 조건인 것이다. 서양철학자들이 내린 정의의 개념은 회계의 기본개념과 일맥상통한다.

회계는 단순히 지원 기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을 투명하고 공평하게 배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준다. 투명성은 정의로운 사회의 기본 인프라이며, 공평한 분배는 이성과 도리에 근거한 것이어야 수용이 가능하고 갈등을 치유할 수 있다. 따라서 회계가 바로 서면 기업, 대학, 정부기관 등의 조직 그리도 더 나아가서 사회가 정의롭게 변화할 것이다. 이해관계가 상충되어 이견과 갈등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전공불문하고 회계를 배워 미래에 조직을 관리할 때 정의로운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면 이 사회가 더 바람직해지지 않을까?


권수영 경영대 교수, 경영학과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9 13:1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