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박람회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19일, 학생회관 주변은 일군의 언론사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성폭행 미수로 지목된 학생이 동아리에서 제명되었다는 내용이 자보를 통해 알려지면서 기성언론의 기자들이 몰려든 것이었다. 연달아 터지는 대학가 성범죄 소식에 본교가 그동안 이 문제로 구설에 오른 게 여러 차례인지라 기성언론이 민감하게 반응할 만은 했다. 하지만 사건의 실체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피해자와 관련자가 사건의 내용을 함구하고 알려지기를 거부하는 가운데 확인되지 않은 기사들이 인터넷을 타고 번져나갔다.
동아리연합회 회장은 이날에만 50여 통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한정된 정보에 기자들은 학생회관 여기저기서 펜과 카메라를 들이댔다. 동아리 방에서 나오는 학생을 붙잡고 수업까지 따라가 질문하는 한편, 피해자에게 직접적으로 피해여부를 찔러대기도 했다. 심지어는 해당 동아리방에 신입생으로 가장해서 들어와 카메라를 들이미는 기자도 있었다. 이들 기자들이 휩쓸고 간 후 한동안 학교 커뮤니티에는 이들 기자들의 행태를 증언하고, 비판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그날을 앞뒤로 본사 편집실로도 여러 명의 기자가 찾아왔다. 난데없이 명함을 들고 찾아온 기자들로 간만에 편집실이 북적였다. 그들은 동아리연합회 출입기자의 이름과 번호를 요구했다. 취재상황이 어떠하며 피해자는 파악했냐, 연락은 해봤냐는 질문도 함께였다. 알려줄 수 없다고 답하자 ‘다른 매체에 물먹었다’며 부탁하기도 하고, ‘같은 기자 아니냐’며 으르기도 했다.

국내 언론에는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이 있다. 2012년 12월에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제정한 것이다. 그 해 여름에 발생한 어린이 성폭행 사건에 대해 언론의 취재태도에 대한 자성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 실천요강의 첫 번째는 피해자와 그 가족 신상정보 공개 금지이다. 하지만 이날 기자들은 그 피해자를 찾기 위해 동아리실과 동아리원을 탐문해나갔다. 이러한 권고기준에도 아직까지 언론은 보호 대상자들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독자의 알권리도 중요하지만, 인격권 보호 또한 중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라면, 성범죄 사건 보도를 최소화해야 하며, 신중해 접근해야만 한다. 19일 학생회관에 몰려들었던 기자들의 태도는 취재과정에서 피의자나 피해자를 단순 뉴스거리로만 삼은 듯 했다. 앞다투어 보도하는 뉴스에 피해자와 관련자들은 전전긍긍 하고 있다. 이러한 보도에 의해 ‘성폭력 2차 피해’로 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염려스럽다.

지난 세월호 참사의 언론보도로 한국 언론에 어떠한 비판과 평가를 받았는지 우리는 모두 기억한다. 공익적 가치 추구, 알 권리라는 말도 피해자의 인격권 보호보다 앞설 수는 없다. 또한 이러한 사건 발생 때마다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본교의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홍보관 바로 앞 학생회관에서 2차 피해를 마주하게 돼 참으로 민망하고 씁쓸하기만 하다. 더불어 본지 또한 이런 모습은 없었는지 겸허히 반성하고자 한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9 16:4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