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철(한국문화진흥원) 교수가 이이의 만언봉사를 설명하고 있다.
만언봉사(萬言封事)란 만 마디 말을 편지에 써 봉했다는 의미로 신하가 왕에게 쓰는 간언이다. 이정철 교수는 ‘이이의 만언봉사’를 ‘경세(經世)의 매니페스토(Manifesto)’라고 비유했다. 이는 세상을 운영하는 선언으로 조선시대에 본격적으로 국가 운영의 문제를 다룬 문서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정철 교수는 먼저 ‘이이의 만언봉사’가 쓰인 배경인 선조 집권기, 사림의 그릇된 생각 세 가지에 대해 설명했다. 첫 번째 그릇된 생각은 ‘구시대에 대한 불신’으로 사림은 사화를 겪으며 훈구파 세력을 배척하게 되면서 오랜 관료생활을 통해 얻은 지혜를 물려받지 못하게 됐다. 이 교수는 두 번째로 ‘사림의 자기 정당성에 대한 지나친 확신’을 꼽았다. 사림은 스스로를 군자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군자당(君子黨)으로 칭하며 ‘좋은 사람이 정치를 하면 좋은 정치가 되는 것’이라 믿었다. 이 교수는 “좋은 사람이 좋은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사림은 기득권을 잡을 생각만 했지 민생 문제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세 번째로 ‘사림의 향약 실시’를 언급했다. 향약은 사림의 정치적·경제적 기반으로 국가의 법보다 사림의 생각이 우선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교수는 “굶주림과 추위에 허덕이는 백성에게 억지로 향약의 예를 행하게 하는 것은 이이가 생각한 유학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이러한 그릇된 생각들로 인해 정치 현안의 실종이 초래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정철 교수는 만언봉사의 내용을 설명했다. 그는 “만언봉사는 사림의 그릇된 생각에 반대되는 것으로, 시의를 아는 것과 실공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시의(時宜)를 아는 것은 그 시대에 해야 하는 문제를 하는 것이고, 실공(實功)을 행하는 것은 실제적 성과를 내는 것으로 제도적 방식의 필요성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이정철 교수는 ‘이이의 만언봉사’의 의미에 대해 말했다. 그는 50년 넘게 지속된 조광조 이래 사림의 생각인 ‘좋은 사람이 좋은 정치를 한다’는 관념에서 민생을 위해 제도적 방식의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정치적 현안을 상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이의 개혁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이이는 그 시대의 과제를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날 강연을 들은 김진숙(여·56) 씨는 “제목만 알고 내용을 몰랐던 만언봉사에 대해 알 수 있어 기쁘다”며 “현대인에게 살아가면서 좋은 교훈을 주는 강의”라고 말했다.
박물관 문화강좌 ‘고전의 향연 7’은 6월 3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백주년기념관 원격회의실에서 열린다.
글·사진 │유가영 기자 letsgo@kukey.com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5 20:3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