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폈다. 정경대 후문에서 들어오는 길목에 핀 하얀 벚꽃은 꽃잎이 떨어졌다. 거의 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벚나무 옆에는 분홍 꽃잎이 돋아나고 있다. 민주광장 쪽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흐드러진다. 문과대 서관 앞에는 하얀 목련이 꽤 오랫동안 우아하게 서있다. 완연한 봄이다. 봄비가 내려 공기는 촉촉하고 길 위에는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고였다.

작년 이맘 때 쯤. 미처 꽃 피지 못한 아이들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애들의 이야기는 TV에 많이 나오곤 했었다. 정말 큰 사건이었다. 전공시간에는 책을 보는 대신 사건을 보도하는 데 있어 저널리즘 원칙이 어떻게 어긋났는지, 이와 같은 보도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떠한 구조가 필요한지를 배웠다. 기말고사에는 이와 관련된 문제가 나왔다. 교수님이 말씀해주신 그대로, ‘언론인의 자성이 필요하다’,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등의 방안을 제출했다. 나름 나쁘지 않은 점수를 받았다.

어제는 그 아이들의 어머니가 TV에 나왔다. 머리를 깎으면서 울고 계셨다. 배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작년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보던 6월에는,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동안 많은 것이 해결될 것으로 보였다. 온갖 유명한 사람들 -국회의원, 대통령, 언론인, 연예인-과 내로라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하루 빨리 문제가 해결돼야 하며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네트워크에서 아는 거의 모든 사람이 5월 말까지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대학생이라면, 지식인이라면 사회의 이슈에 대한 목소리는 내야할 것 같았다. 말솜씨도 좋지 못하고 생각도 그리 깊지 않다고 생각하던 차에 다른 이가 낸 논리 정연해 보이고 강해보이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1학년 2학기. 새로운 경험.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설렘. 다시 돌아온 학교는 자극적이었다. 새로이 경험하는 학교생활은 역치를 높였다. 봄과 여름은 가을의 천고마비 속에서 희미한 자국으로 남았다. 자국은 문득 문득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이내 가을의 아름다운 광경에 묻혀버렸다.
어제 페이스북에는 간간이 그 아이들의 어머니가 등장했다. 파르란 머리. 눈물. 이마에 맨 노란 리본. 그리고 표정.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표정. 처음 본 그 사진은 작년 봄과 여름 사이의 자국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마음 속에서는 바티칸에서 본 종탑의 종이 ‘뎅’하고 울렸다. 어떻게 잊을 수 있었을까. 지구가 궤도를 한 바퀴 돌 동안 목련은 다시 폈지만 꽃 같던 아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김가영(미디어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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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6 11:2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