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장지희 기자 doby@kukey.com

문학은 한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지금의 문학은 어떠할까. 세교연구소(이사장 최원식)는 ‘세월호 시대의 문학’을 주제로 10일 공개 심포지엄을 열었다. 문학적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한 참가자들의 발표를 정리했다.

세월호 참사가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국가를 신뢰하면서 살아간다. 여기서 국가에 대한 신뢰란 국가의 제도적 기능과 그것을 작동시키는 사람들을 의식적으로 떠올리면서 부여하는 믿음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렇게 치자”식의 믿음이다. 사람들은 도로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믿어야 길을 다닐 수 있고, 수돗물에 독성이 없다고 믿어야 음식을 먹을 수 있고, 한국은행이 발행한 지폐가 종이 쪼가리가 아니라고 믿어야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다. 숱한 사건들이 있지만 적어도 ‘나’의 일상생활에서만큼은 국가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연시’해야 생존을 이어갈 수 있다.
추상적 실재성, 맑스라면 ‘유령적 객관성’이라고 불렀을 국가기계의 영향력 아래에서, 다만 살아야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치고’ 생명을 연명하는 것. 이것이 과연 폭력이 아니라고 우리는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나는 이것을 국가의 상징적 폭력이라고 부르고 싶다.
-심보선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한강

기억의 속성은 망각이다. 기억은 능동적으로 ‘의지’하지 않으면 시간을 따라 제 갈 길을 간다. 하지만 “어떤 기억”은 너무나 참혹하여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된다. 이 경우에는 참혹한 기억이 주체를 갉아먹으며 마침내는 그의 정신세계 전체를 허물어뜨린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안다는 것은 그런 뜻이다. 기억의 망각은 주체 내부 정신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의미의 중핵에 구멍을 내고, 끔찍한 기억만 남은 주체는 모든 방향지시등이 꺼져버린 정신의 암흑과 망상의 지도 위에 유령이 되어 떠돈다. 그러므로 기억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가 문제다.
-함돈균

분명 우리는 수 백명의 승객을 태운 배가 기울어져 침몰하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느낌’이 있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구조를 아무도 하지 않고 있는 것 또한 지켜보았다. ‘도대체 왜?’라는 질문은 1년이 지난 지금도 끝없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이 파경은 모든 미디어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생중계되다시피 했다. TV, 포털사이트, 각종 SNS를 통해 전해진 이 어이없는 사건 앞에서 우리는 철저한 무기력을 맛보았다. 그것은 어, 하고 순식간에 일어나고 끝난 사건이 아니었다. 아주 서서히, 결코 짧지 않은 동안 일어났던 이 사건은 온 나라 사람들을 범행의 목격자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이렇게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 목격했고, 심지어는 희생자들의 휴대폰에 찍힌 마지막 영상까지 보았음에도 우리가 본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시각정보 앞에서 우리는 정작 본질을 잃어버리고 만 것일까? 국가의 폭력은 이때를 놓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정보 앞에서 현실이 본질을 잃을 때 국가의 폭력은 오히려 피해자를 사회의 질서와 안정을 방해하는 교란자로 왜곡하면서 탄압한다.
-함성호  

세월호 관련 대자보를 작성한 본교생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세월호 사건의 의미를 한 단어로 정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사람', '발가벗음', '상실', '두려움' 이라고 답변했다.

스스로 고민해보았습니다. 이 시대의 핵심적인 문제는 무엇인지 말입니다. 저는 그 답은 아마 ‘사람보다 이윤’이 우선시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항상 사람을 이야기해왔습니다. 단군 왕검도 그러하였고, (실제로는 이윤을 우선시하는) 모 기업의 광고에서도 그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가 과연 사람을 우선시하는 사회일까요? 이 질문에 자신있게 “예”라는 대답을 할 수 없다면, 또 사람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사람이 우선이다”, “우리는 사람을 향해야 한다”고 외쳐야할 것입니다.
그런 우리 앞에 바로 세월호가 놓여있습니다. 세월호의 비극은 단지 295명의 사망자와 9명의 실종자만에서 기인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사람’을 뒷전에 두는지, 또 그 결과가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세월호입니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 해결에 고대생이 나선다는 것은 고대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이야기하면서 선배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기 위함이고, 사람이 우선임을 다시 한 번 선언하는 것입니다.
- 권순민(문과대 사회13)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입니다. 미디어와 SNS에서는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문구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의 ‘기억 담론’입니다. ‘세월호를 잊지 말자’에 대한 반작용으로 ‘잊어도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고, 이 말에 대응하면서 ‘잊지 말자’는 이야기는 더욱 강화됩니다.  이때의 ‘기억’은 존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기억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다는 헤르도토스의 언명처럼, 존재와 결부된 ‘기억’은 돌아가신 분들과 유가족을 상기시켜줍니다. 이는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공감’을 형성합니다.  한편 다른 형태의 ‘기억’이 있습니다. 이는 보다 사회적인 기억으로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노란 리본을 달거나 SNS에서 추모 릴레이를 하는 등의 행동으로 말이죠.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해결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사회적 기억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는 세월호 참사 특별법과 그 시행령으로 구체화되었죠.   그런데 지금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정부는 세월호에 대한 공적인 기억을 전유해버렸습니다. 여기서 참사의 당사자분들이 배재될 위기에 놓였고요. 그 동안 연민과 공감으로 형성된 기억은 정부에 의해 전유된 기억에 맞서는 ‘대항 기억’으로 변해야 합니다.
- 이영진(문과대 한국사09)

‘세월호 비용’ 5548억원...
4월 8일자 기사의 헤드라인입니다. 세월호 뒤에는 참 많은 말이 붙어왔습니다. 세월호 참사, 세월호 사건, 세월호 사고...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드디어 마지막 말이 붙었습니다.
‘세월호-비용’.
지난 4월 8일, 해양수산부 장관이 기자들을 불러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세월호 비용이 대략 5500억원을 상회할 것”. 4월 1일, 해수부는 새벽 6시에 보도자료를 배부합니다. “총수령액은 단원고 학생 8.2억원 추정”. 국가가 지급하는 배상금 4.2억원에다 해수부와 관련 없는 보험료와 국민성금 4억원을 더한 액수였습니다.
사람 수백명이 일순간에 죽어도, 그 죽음이 사회의 온갖 부조리를 다 드러내도, 유가족이 가슴 뜯어 아픔을 이야기해도, 결국엔 다시 돈 얘기에 묻힙니다. 돈으로 사람을 고문하고, 돈으로 사람을 죽입니다.
돈 싫어하는 사람 없고, 돈 없이 살 수 있는 사람 없습니다. 하지만 잠시 그 문제를 접어두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사랑할 때 그렇고, 견딜 수 없이 외로울 때 그렇고, 거대한 상실을 겪었을 때 그렇습니다.
세월호 비용. 이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읽혀 놀랐습니다. 무섭고, 두렵습니다.
- 장민석(문과대 사학09)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가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생존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는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평범한 그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었던 ‘참사’입니다.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과 교사들이, 휴가를 떠난 가족들이 당한 이 불의의 참사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때문이라는 것을 발생의 원인과 이후의 진행과정을 통해서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사람보다 자본과 효율을 중요시하는 사회의 모습, 안전사회를 구성할 최소한의 시스템도 없는 국가의 모습, 자극적인 기사로 속도전을 벌이는 언론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따라서 1주기를 맞아 당연히 추모해야 할 일이라고, 그 추모의 방법은 세월호 참사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안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령과 인양문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문제가 남아 있는 지금, 이를 외면한 채 단순히 ‘기억’한다면 희생자와 유가족의 한은 풀릴 길이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날 참사의 마지막이기를 모두가 바랄 것입니다. 이것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은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말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혼자 슬퍼하기엔 잔인한 4월, 가혹한 대한민국입니다. 지금 우리는 마땅히 ‘함께’ 울어야 합니다.
- 박세훈(자전 정외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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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5 14:5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