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지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 /New Trolls, ‘Adagio’ (1971)



이경준 (대중음악평론가)



당신이 내 곁에 있기를 바라보지만
남는 것은 나의 외로움 뿐
태양이 다시 밝게 떠오르길 기다려도
이제는 너무 멀리 가 버린 태양
죽는다는 건, 잠드는 것
어쩌면 꿈꾸는 것일지도 모르지
죽는다는 건, 잠드는 것
어쩌면 꿈일지도. 꿈일지도 몰라
죽는다는 건, 잠드는 것
어쩌면 꿈일지도. 꿈일지도 몰라



이번에 연재하고 있는 코너의 제목은 ‘지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다. 봄에 근접해 날씨도 점점 화창해지고 이제 꽃도 피려 하는데, “왜 이런 시리즈를 연재해 기분을 다운시키는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화사한 노래 특집’은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 것이므로 양해를 구한다. 뭐, 돌아가는 세상이 그다지 밝지 않은 것도 그에 한몫 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우울함은 더 우울한 것으로 대항하는 걸 선호하는데, 오늘 소개하는 ‘Adagio’야말로 제일 강력한 무기가 아닐까 싶은 곡이다. 범위를 한국으로 한정했을 때, 이 곡의 위상에 필적할 아트록/프로그레시브록의 싱글이 있을까.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록 그룹 뉴 트롤스가 1971년 발표한 3집 <Concerto Grosso Per I>에 수록된 노래는 1980년대 초 국내에 처음 알려졌고, 1990년대 심야 라디오 방송을 통해 본격적으로 전파를 탄 이후 음악팬들의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입시준비를 열심히 하던 시절, 그러니까 1990년대 중반에, 야간자율학습을 끝낸 후 집으로 돌아와 멍때릴 수 있는 두 시간은 무엇과도 교환할 수 없는 축복 같았다. 한때였지만 그런 프로그램이 라디오에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잠시 추억해본다. 피에프엠이 나왔고 오잔나도 나왔으며, 레 오르메도 나왔다. 당연히 뉴 트롤스도 그 명단에 있었다. 이탈리안 아트록 특유의 서정성,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무색하게 만드는 아름다움. ‘Adagio’는 태생적으로 ‘명작’이 될 요소를 두루두루 갖추고 있었다. 학교를 마친 후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회현동 음반가게를 찾아갔고, 몇 번의 헛걸음을 거쳐 결국 앨범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하지만 압권은 노랫말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 3막에 등장하는 저 악명 높은 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로부터 차용한 “죽는다는 건, 잠드는 것. 어쩌면 꿈일지도. 꿈일지도 몰라To die, to sleep, maybe to dream”라는 바로 그 부분이다. 이 가사는 중학생의 귀에도 인간사의 허망함과 예외 없는 자연의 법칙성, 현실을 지지하고 선 일상이라는 지반의 허구성 등 광대한 테마들을 포괄하고 있었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뉴 트롤스가 적은 영단어라곤 ‘die, sleep, dream’ 뿐. 이를테면 밴드는 단순한 문구를 통해 심오한 메시지를 길어 올려냈다고 할 수 있다. Simply The Best. 그러한 경지까지 도달한 노래들은 의외로 수가 적다. 존 레논의 ‘Imagine’을 비롯한 아주 소수의 곡만이 그걸 해냈다는 걸 음악애호가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곡을 이야기하면서 함께 <햄릿>의 페이지를 열어보는 게 좋겠다. 아버지의 죽음에 어머니와 숙부가 연루되었다는 끔찍한 진실과 대면하게 된 주인공 햄릿. 어서 복수를 결행해야하지만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자꾸만 보복을 미루는 그의 모습은 우리의 연민과 동정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전술했던 유명한 저 독백은 유한성의 시간 안에서 어떠한 일을 행하든 그 의미를 부여잡을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의 딜레마를 고백한다. 혈육을 죽이고 복수를 완성하면 살인자가 되고, “살인은 죄악”이라 되뇌며 복수의 시간을 지체하는 것 역시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나쁘거나(bad) 혹은 더 나쁘게(worse)” 되는 것이다. 이를 배경에 두고 음악을 들어보자. 도입부의 바이올린은 고통과 고뇌로 가득한 한 인간의 내면을 제대로 짚어내고 있고, 당대를 풍미했던 사이키델릭록(특히 지미 헨드릭스)에 영향 받은 일렉기타 솔로는 어찌되었건 ‘홀로 결단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부조리’를 냉혹하게 드러낸다. 악기들이 뒤섞여 몸부림치는 종결부는 단연코 하이라이트다.  



그뿐만이 아니다. “죽는다는 건 잠드는 것”이라는 구절은 어느 하이쿠 시인이 임종 직전에 끄적인 달관의 글과 유사하게 읽히기도 하고, ‘죽음’(무한)을 ‘그저 잠깐 침대 위에 눕는 일’(일상)에 비유함으로써 그 공포감을 없애보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는 것으로 독해되기도 한다. 그렇게 이으면 ‘자살’이 떠오를 수도 있다. 실제로 민감한 젊은이들은 노래를 듣고(특히 이 대목) ‘자살충동’을 느껴보았다고 하니, 그것이 과도한 해석만은 아닐 것이다. 마침내 역사가 남긴 저 위대한 작품들의 뒤를 따르며, 노래는 긴 여운의 자취를 끌고 흩뿌려진다.



<Concerto Grosso Per I>의 ‘Allegro’나 ‘Cadenza-Andante Con Moto’도 발길을 붙잡기에 충분한 트랙이다. 그러나 이 노래만큼 거대한 파장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음악적으로는 <UT>나 <Atomic System>을 더 쳐주기도 하지만, 이 곡만큼은 뉴 트롤스가 빚어낸 ‘최고의 순간’으로 기록되고 있다). 음악깨나 들었다는 사람들은 이 곡을 ‘지나치게 팝적이다’는 근거를 들어 의도적으로 폄하하기도 했다. 그런데 ‘팝적인 노래’가 나쁜 건가?(게다가 이 비판은 틀린 비판이다. ‘Adagio’는 오히려 클래식에 가까우므로). 그 말을 근 2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남들이 다 좋아한다”는 사실에 대한 기계적이고 유아적인 반발심리에 그쳤던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 정말 간만에 음반을 꺼내 들었어도, 여전히 그 감동의 온도가 유지된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누구의 말처럼 영미권에서 이 곡이 튀어나왔다면, 록의 판도는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형태로 짜일 수도 있었다. 진심이다. 그런 예측과는 별개로 ‘Adagio’는 카멜의 ‘Stationary Traveller’, 킹 크림슨의 ‘Epitaph’, 바클리 제임스 하비스트의 ‘Poor Man's Moody Blues’, 프로콜 하럼의 ‘A Whiter Shade Of Pale’과 더불어 영원히 빛날 ‘프로그레시브 앤섬’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30 10:3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