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칼럼] 이상한 나라의 수상한 영화들-<괴물>의 현실과 <킹스맨>의 환상을 오가며



이후경 영화평론가



외국에 나와있다보니 종종 볼 만한 한국영화 추천을 부탁 받는다. 몇 주 전에는 클라이밍을 하러 암장에 갔다가 우연히 말을 섞게 된 한 영국 신사로부터 같은 요청을 받았다. 그럴 때면 머릿속에 온갖 영화들이 오간다. 특히 그 영국 신사처럼 영화에 대한 큰 관심은 없지만 사교성 대화에 섞기 좋은 국가대표격 한국영화를 궁금해 하는 이에게 뭐라도 하나 내걸어야 할 경우에는 더욱 심난하다. 가장 먼저 떠올리는 영화는 대개 개인적으로 가장 애틋함을 느끼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이다. ‘영화’를 권한다는 데 충실하고자 한다면 당장 일번으로 건네고 싶은 영화들이지만, ‘한국’적인 영화라는 카테고리에 구겨넣어 내세우기엔 썩 내키지가 않아 머뭇거리게 되는 영화들이기도 하다. 해외 시네필들에게 비슷한 인지도, 어쩌면 더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도 선뜻 꺼내들기 힘들긴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감흥을 느끼지 못해서라기보다는 대중영화에 더 익숙할 상대에게 해외 영화제 국가대표부터 내밀었을 때의 부작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다. 그러면 생각은 자연스레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감독 세대의 영화로 옮겨가게 되는데, 그중 가장 재빨리 손을 뻗게 되는 영화가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다. 위의 영국 신사 같은 대화 상대에게 이 영화를 언급할 때마다 작품 완성도, 해외 인지도, 대중 친화도, 작가적 손길, 한국적 색깔 등을 고루 갖춘 작품으로 내거는데 큰 위험부담이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여기에도 고민은 따른다….


바로 한국적 도시의 이미지에 대한 문제다. 영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일랜드에서 온 친구 한명과 브라질에서 온 친구 한명, 셋이서 전형적인 아일랜드, 브라질, 한국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영화들에 대해 수다를 떤 적이 있다. 지역영화들의 많은 경우가 지역을 낭만적이고 미적으로만 다룬다는 데로 의견이 모아졌다. 특히 존 포드의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놀랐는데, 내게는 그저 아름답기 만해 보였던 아일랜드 배경 영화들에 대해 아일랜드 친구는 오히려 반감 비슷한 것을 갖고 있었으며 존 포드를 아일랜드 출신 영화감독으로 여기기 싫어하며 그가 얼마나 이상화된 아일랜드의 자연 이미지를 이용했는지에 대해 지적했다. 브라질 친구 역시 자국을 매혹적으로 타자화하는 영화들에 불만을 표했다. 그러다 두 친구가 한국영화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괴물>과 <올드보이>를 거론했다. 한편에서는 서울 한복판에 있는 강에서 괴물이 튀어나오고, 다른 한편에서는 서울 후미진 구석에 있는 아무도 모르는 현대 감옥에서 한 남자가 괴물로 변해가고…. 이렇게 관광 홍보 영화의 기질을 눈곱만큼도 지니고 있지 않은 영화들이 대표적인 한국영화로 여겨지니 얼마나 좋으냐고 진담 반 농담 반을 하며 웃었다. 그러고 보면 홍상수의 서울도, 김기덕,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그 누구의 서울도 마냥 아름다운 도시, 한번쯤은 꼭 가보고 싶은 먼 나라 이웃 나라의 도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서울은 싸늘할 정도로 무심하거나, 이상하게 일그러져있거나, 온갖 상처로 얼룩져있을 때가 많았다.


이런 우리에게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같은 영화는 국가적 이미지 메이킹의 반대 극단에 있는 영화로서 제법 매력적인 영화다. ‘007 시리즈’의 계보를 탐내는 이 영화는 캐릭터만 놓고 봐도 영국에 대한 환상을 구체적 이미지로 적극 활용한다. 영국 신사의 대명사나 다름없는 콜린 퍼스가 연기하는 해리는 올드보이 오대수와 정반대다. 뻥튀기 파마머리 대신 깔끔하게 손질한 헤어부터 말없이 세발낙지를 집어삼키는 배짱 대신 매너 운운하며 기네스를 마시는 품위, 무지막지한 장도리 액션 대신 매끈하게 빠진 최첨단 장우산 액션까지. 물론 캐릭터뿐만 아니라 실제 런던에 소재한 양복점이나 펍에서 촬영한 장면들 역시 특유의 색감과 디자인과 분위기를 통해 영국의 국가적 이미지를 단단히 한다. 이러한 전략이 현실 수준에서 대단히 강력한 실질적 효력을 지닌 것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네이버에 ‘킹스맨 런던’을 검색해봐도 알 수 있듯 벌써 영화 촬영지를 순례하는 관광객들이 있을 정도며, 관광 산업은 국부는 물론 환경, 외교, 인권 등 다른 모든 분야와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돼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읽으면 이런 식의 이미지 정치학이 많은 인종적, 계층적, 젠더적 불화를 은폐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영국’ 영화의 자장 안에서만 본다면 켄 로치 같은 감독들의 영화들이 <킹스맨> 같은 영화의 정반대편에서 그 억압된 진실을 끊임없이 수면위로 드러내고자 노력해왔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위에서 언급한 감독들의 영화들도 한국 현실의 모순과 갈등을 독특하고 기이하게, 심지어 어떤 때는 거의 끔직하고 지독한 방식으로 표면화해왔다. 그런 측면들을 이면이 아닌 정면으로 바라봄으로써 ‘영화와 도시’ 혹은 ‘영화와 국가’에 대해 정직히 사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30 10:1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