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한국과 일본, 모순적 관계의 재조명

규모 9.0의 대지진이 일본을 휩쓴 후 일본의 참상이 끊임없이 보도되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유례없는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다시금 불거지면서 반일 감정 또한 재점화됐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의 피해를 ‘유별나게’ 도와주고 싶게끔 하고는 다시 반일 감정의 급속한 폭발을 야기했는가. 우리나라와 일본의 모순적인 관계에 대해 심층적으로 살펴보았다.

    지난 3월 11일 규모 9.0의 지진이 일본 동북부 지역을 강타했다. 해안가의 많은 도시들은 10m가 넘는 쓰나미에 속절없이 파괴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망했다. 일본 경시청 공식 집계에 따르면 사망자는 8000명을 넘었고 실종자는 10,000명을 훌쩍 넘겼다. 일본이 대지진과 쓰나미로 입을 경제적 피해는 최대 3000억 달러까지 될 수 있다는 추산까지 나왔다. 이런 참상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유례없는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대한적십자사 성금액은 200억 원을 넘어 자연재해 관련 모금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이 밖에도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 모두 이례적으로 일본 대지진 모금 운동 방송을 내보냈고 많은 한류스타들도 앞장서서 큰 액수의 돈을 기부했다.

    하지만 잠시 눈을 돌려볼 때 작년 1월 발생했던 아이티 대지진은 사망자만 약 35만 명을 낸 대재앙이었고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도 45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본 대지진에 모금 운동을 벌인 것처럼 열성적으로 그들을 위해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단순히 모금액만을 보아도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아이티에 대 지진에 일어났을 때에는 3개월 만에야 97억 원이 모였지만 일본 대 지진에 대한 성금 모금은 단 5일 만에 100억 원을 상회했던 것이다. 단순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의 재앙이기에 이러한 ‘전국적 모금 열풍’을 일어났다고 보기에도 무리다. 훨씬 더 큰 피해를 낳은 이웃나라 중국 쓰촨성 대 지진 때에도 분명 이런 열풍은 일어나지 않았다. 분명 일본의 대지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여타 다른 나라의 재앙을 향한 그것과는 다르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다르게 보게 했는가.

    먼저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긴밀한 관계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일본에 체류하고 있는 동포들의 수는 100만 명에 가까우며 이는 중국,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다. 특히 우리나라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동북부 지역에 일어난 재해이기에 국민들에게 그 심각성은 더욱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또한 한국의 많은 기업들은 일본에 다수의 생산시설을 두고 있으며 반도체 등 한국 주력 산업의 대 일본 수입 비중은 43% 정도 된다. 따라서 일본이 정상적으로 부품 생산 기능을 해내지 못하거나 빠른 시일 내에 한국과의 교역이 정상화되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받는다. 분명 이렇게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일본에 그렇게 큰 재앙이 닥쳤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빠른 복구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쓰촨성 대지진이 일어났던 중국도 우리나라와 그 어떤 나라보다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일본에 이러한 지원이 쏠리는 이유에는 양국의 미묘한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

    뉴스나 신문 등 많은 매스컴에서는 ‘역사와 이번 지진 돕기는 별개이므로 인류애적인 마음을 가지고 일본을 도와줘야 한다’는 함의를 가진 기사를 연일 보도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등 각종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그런 류의 글이 넘쳐났다. 일본 대지진 피해에 대해 성금을 기탁하지 않으면 양국의 아픈 역사에 함몰되어 인류애적 따뜻함이 없는 국민이 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반대로 일본의 복구를 돕는 단체에 성금을 기탁하는 국민은 그 행위 자체로써 높은 시민의식을 가진 국민이 되는 분위기였다. ‘일본의 역사적 잘못을 잊지 않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돕는 우리는 높은 시민의식을 가진 것’이라는 맥락이었다.

    일본의 참사에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한 이유는 이처럼 여러 가지였으나 이러한 감정들은 대체적으로 일본에 온정의 손길을 내미는 방향으로 수렴되어갔다. 그러나 이후 일본은 호의를 무색하게 하는 행태로 한국 국민들에게 실망감과 분노를 안겼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독도 영유권 기술을 강화한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공개한 것이다. 당시는 일본 지진사태에 대해 정부가 앞장서 국내 모금운동을 벌이던 때였다. 연이어 일본의 유력 일간지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는 "일본이 ‘침몰 위기’인 이 때 한국이 독도를 일본에 양보하면 어떨까"라는 글을 남겨 논란을 가중시켰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독도에 독도종합해양과학기지와 방파제 건설을 추진하고 있으나 일본은 역시 이에 강력히 항의하며 이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일본은 역사 교과서의 안중근 의사와 조선의 식민지화에 대한 내용 기술도 우익집단의 논리를 그대로 끌어와 왜곡했다. 일본 중학교 검정 역사교과서에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에 대응해 조선을 식민지화했다”고 나와 있는 것이다. 마치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한일 강제 병합에 기여한 것처럼 왜곡한 셈이다. 이에 대해 동북아역사재단은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는데 그해 8월 이미 일본 내각은 한일 강제 병합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반박했다.

    이러한 일본의 행동에 대해 국민들은 배신감과 분노를 표현했다. 충북 괴산군은 일본에 항의하는 의미로 지진 피해 일본인들을 돕기 위한 성금모금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또 11개 과와 괴산군의회에서 모금한 450여만 원의 성금 전액도 직원들에게 모두 환불해 주기로 했다. 어떤 이들은 ‘일본은 그럴 줄 알았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남 모(정외 10) 씨는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해오던 국가”라며 “일본을 우리가 도와줬다고 해서 정치적 면에서 일본이 예전과 다른 입장을 표현할 리는 없다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 대한 동정적 여론이 형성되던 지진 당시와는 달리 일본에 대한 감정적 대응도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의 계속되는 역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에 일본 발(發) 방사능의 공포가 더해지면서 이에 대해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격한 감정적 반응들이 나타나고 있다. 정치적 문제와 인도적 지원은 별개의 문제라는 기존의 입장 측과 지원을 행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현재 태도는 예의가 아니라는 측이 대립하는 양상도 관찰됐다.

현실적 관계와 감정의 모순

    물론 일본은 우리의 이웃 나라이며 급작스럽게 닥친 천재지변에 근접 국가로서 인도적 지원은 필요하다. 또한 향후의 동북아시아의 동반 성장 측면에서 일본과의 경제적 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인류애를 보여주자는 모금 분위기에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가 내면적 배경으로 작용했듯 일본과의 현실적 관계만을 고려하기에는 한일 간 역사가 국민 의식 속에서 크게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일본의 역사 왜곡 행태는 이러한 역사적 감정을 반일 감정으로 심화시키고 있다. 현실적 관계만을 강조하며 일본에 저자세 외교를 취한다면 일본의 역사 왜곡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에 따라 아시아의 동반자적 관계로서의 측면과 역사적 감정이 혼합된 양국 관계의 모순이 심화될 것이 짐작된다.

    서 모(정외 10) 씨는 이에 대해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현실적 관계는 무시할 수 없지만 이런 식으로는 우리가 계속해서 피해를 입을 것 같다”며 인도적 지원과는 별개로 좀 더 강경한 외교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대지진과 이후 이어진 사태에서 드러난 한일 양국의 아이러니한 관계는 이후의 외교 정책에 따라 전망을 달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가연 기자 greenrkdus@korea.ac.kr
이가영 기자 dlrkdud73@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