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엘리제궁에서 취재를 위해 대통령을 기다리는 박경덕 파리특파원

 파리특파원에 대해 사람들은 대부분 잔뜩 비음 섞인 목소리로 “우와, 빠~리~!”하는 반응을 보인다. 이렇듯 모두 파리특파원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이 있다. 모두 파리특파원이 버버리 코트를 입고 취재하는 모습을 연상한다. 그러나 정작 박경덕 특파원의 파리 정착기는 이 ‘우아한 환상’을 깼다. 박경덕 기자는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편집국 국제부문에서 파리 특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경덕 기자는 1960년도에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그는 기자라는 직업을 ‘빛 좋은 개살구’라고 비유했다. 기자라는 직업은 겉모습은 멋있어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힘든 직업이라고 한다. 그가 특파원 생활을 하기 전까지 어떠한 기자 생활을 했는지 그에게 물어보았다.

 "처음에 입사를 하고 나서 사회부에 수습기자가 되었죠. 매일 경찰서, 병원을 다녀오고 사건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그 때 경찰서 유치장도 가보고 병원의 영안실도 찾아다니면서 유족들에게 피해자의 사망 원인과 같은 물어보기 힘든 질문을 했어요. 그러면서 취재하는 법도 배우고 선배들에게 혼도 많이 났죠. 그 후로 여러 다양한 분야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글쓰기 훈련을 계속 반복했고,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기사를 작성하는 노하우를 길러나갔습니다.” 

 박경덕 기자는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러나 그가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 취미를 갖고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라고 했다.

 “제가 군대를 제대하고 1988년 올림픽 이후로 언론사의 인기가 엄청 올라갔습니다. 친한 친구들이 모두 언론고시를 준비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친구들의 관심사에 저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더군요. 그러다 공부도 제대로 안하고 ‘친구 따라 강남가기’식으로 언론사 시험을 봤습니다. 저는 전공을 살려서 불어로 시험을 봤는데요. 기대하지도 않았던 1차 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런데 2차 시험에서는 역시 떨어지더군요. 그 후로 오기가 생겨서 1년 동안 정말 공부 열심히 해서 신문사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내가 기자가 적성에 맞는지 갸우뚱 할 때가 있습니다.(웃음)”

 박경덕 기자는 겸손한 태도를 보이지만 그는 현재 중앙일보 편집국 국제부문 차장인 만큼 특파원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자신이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파리 특파원으로 파견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상당한 불어실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언론사에서는 기자의 언어능력을 상당히 많이 고려해서 특파원으로 파견을 보냅니다. 아마 제 전공이 불어인 것이 파리특파원이 된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현지 언어를 하지 못하면 신문을 못보고, 취재도 못하고, 뉴스를 들을 수도 없습니다. 또한 프랑스인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합니다. 현지에서 긴급하게 시민들의 반응을 취재해야 할 때 불어를 하지 못하면 취재하는데 있어서 큰 한계를 느끼게 되겠죠.”

 이처럼 해외 특파원은 해외 현지에서 시민들의 반응을 취재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요즘같이 인터넷이 잘 발달되어 있는 시대에 외국의 신문을 접해서 해외 소식을 전달받을 수 있다. 그래서 박경덕 기자에게 해외특파원의 중요한 역할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사로 써서 우리나라에 전달하는 것이 해외특파원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그 역할은 번역가들의 역할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해외 언론사들의 기사는 모두 그들의 관점에서 작성된 것입니다. 독자들에게 우리 시각으로 글로벌시대를 맞아 지구촌 구석구석의 일들을 다양하게 해석해서 전달하는 것이 바로 특파원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죠.”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자신이 살던 일상에서 잠깐 벗어나 ‘일상의 파리’가 아닌 ‘일상에서 벗어난 파리’를 보고 프랑스에 대한 환상을 갖는다. 그러나 일상의 파리는 ‘느림과 불편함’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혈압이 치솟는 곳이다. 박경덕 기자는 자신이 한국에 있는 친구들로부터 “파리 생활이 얼마나 우아하고 멋지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시각, 프랑스의 느림의 문화 때문에 황당하고 난감했다고 했다.

 "프랑스는 철저하게 예약문화가 존재합니다. 저는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기사를 쓰기 위해 인터넷을 설치하는 것이 가장 시급했습니다. 기술자가 일주일 후에 오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술자가 일주일 뒤에 와서는, 아파트 구조를 보더니 인터넷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1시간 안에 혼자서 할 수 없다며 일주일 후로 약속을 다시 잡더군요. 정말 황당했습니다. 결국  방문할 때마다 기술자들이 약속을 미루고 미뤄서 4주만에 인터넷을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에서야 말을 편하게 할 수 있었지만 그 때는 입술이 바짝바짝 타는 상황이었습니다.”

“또, 관청 취재가 너무 힘들었어요. 어렵게 전화번호를 알아서 관청에 전화하면 공무원들은 한참 이야기를 듣다가 묻고 싶은 질문들을 종이에 써서 팩스로 보내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절대 답을 안해줍니다. 물론 2주일 뒤에 가끔씩 답장이 오기도 하는데, 답변은 ‘그 사항은 현재 저희가 고민하는 부분으로서 지금 단계에서는 공식적인 입장 표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내용입니다. 회사에서는 기사를 독촉 하고 현지에서는 취재 상황이 진전되지 않을 때 정말 난감했습니다.”

 프랑스인들은 편리함에 그리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항상 빠르고 편리한 것만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사고방식과 매우 다르다. 그러나 이뿐만이 아니다. 대개 파리하면 떠오르는 근사한 모습들은 프랑스에 대한 환상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박경덕 기자는 파리에서 생활하면서 이러한 파리의 ‘우아한 환상’들이 깨졌다. 
 

 “프랑스는 선진국이고 이성의 나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불합리한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유학생을 포함해서 프랑스에서 정식으로 체류를 해야 하는 사람은 체류증을 받아야 하는데, 해당 업무에서 일하는 프랑스인들이 정말 섭섭할 정도로 그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습니다. 저도 형편없는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 정도 대접받으러 파라에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경덕 기자는 기사를 신속하게 전달해야 하는 상황에서 프랑스인의 이러한 느림의 사고방식 뿐 아니라 불합리한 프랑스의 모습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해외 특파원은 해외에 정착하기 까지 많은 고난을 감내할 수 있는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박경덕 기자에게 이 외에 해외 특파원이 가져야 할 소양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특파원은 먼저 언어능력을 지녀야 합니다. 언어능력이 모자라면 취재가 제대로 안되고 오보를 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불어 하나로는 안 됩니다. 파리에 있으면서도 여러  나라를 취재를 다녀야 했는데요, 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유럽 국가에서 거의 영어로 취재를 해야 했습니다. 취재하면서 통역해줄 사람도 없고 일일이 취재 내용에 대해 질문할 시간도 없습니다. 또 기자는 글을 잘 써야 합니다. 독자가 기사를 읽었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라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잘 써진 기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파리에서 고생을 많이 한 박경덕 기자에게도 파리 특파원 시절을 보내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한 가지 있었다. 박경덕 기자는 학생시절에 ‘라붐’ 이라는 프랑스영화를 즐겨봤는데 그 때 당시 주인공이던 프랑스 국민배우 소피마르소를 만났던 때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소피마르소를 한번 취재하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넘겼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수소문 해서 소피마르소 소속사와 연락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쪽에 중앙일보 신문, 중앙일보에서 나오는 잡지, 회사 홍보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100일 뒤에 그쪽에서 연락이 오더군요. 프랑스는 정말 잊어버릴 만 하면 연락이 오더군요.(웃음) 결국 저는 소피마르소와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큰 선글라스를 꼈었는데요. 안경을 벗으니까 눈과 코가 젊었을 때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하며 즐거워하는 그에게 앞으로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잠재력이 엄청나고 앞으로 또 그 잠재력이 발휘될 유럽연합에 대한 연구가 현재 한국에서는 활발하지 않습니다. 유럽연합 전문가들이 앞으로 많이 생겨날 텐데요. 저도 기회가 된다면 유럽연합에 대해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커다란 포부와 함께 열정적인 기자정신을 갖고있는 그. 그에게 고대학우들을 위한한마디를 부탁했다.

“대학생에게 있어서 젊음은 특권입니다. 고대생들이 그 특권을 갖고 최대한으로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걸 열심히 하라고 하고 싶은데 특히 언어공부를 열심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연애도 열심히 해서 치열하게 대학생활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생활을 대충하기에는 인생의 황금시절이 너무 아까워요.”

 독자들에게 '기사 잘 읽었다'는 메일 한 통 받을 때 정말 행복하다는 그. 박경덕 기자는 지금처럼 앞으로 우리를 위해 파리에서 생생한 현장 보고를 하기 위해 발 빠르게 취재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