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고연전이 다가올 때 마다 이번엔 어떠한 명승부가 펼쳐질 것인가 하는 기대감과 함께 절대 잊을 수 없는 짜릿한 승리의 순간들을 떠올려 보곤 한다. 특히  4연패로 이어진 오랜 침체기를 극복한 02년부터 04년까지의 럭비의 3연승의 순간을 잊지 못하는 학우들이 많을 것이다.

    
    -이번 정기전을 위해 화이팅을 외치는 이광문 선수

 그 당시, 그라운드의 정중앙 NO.8 포지션, 공격과 수비의 중심에서 대활약을 펼쳐 우리 학교 럭비부를 승리로 이끈 한 인물이 있다. 학교 졸업 후 국군 체육 상무를 제대하고 일본 럭비 탑 리그 산토리(Suntory Sungoliath)에서 활약하다가 현재는 한국전력공사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나라 럭비의 주역, 02학번 체육교육과 이광문 선수를 만나 고연전의 추억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학교 선수로 고연전을 준비했을 때의 경험이 지금 선수 생활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 물론 지금도 럭비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고 있지만, 정말 순수했던 열정을 가지고 뛰었던 때는 아무래도 고연전 때인 것 같아요.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오직 연세대를 이기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힘든 합숙 훈련을 견뎌 낼 수 있었죠. 아무래도 다른 경기보다 고연전에서 골을 넣었을 때의 수만 학우들의 함성, 응원소리들이 마음속에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제가 4학년 주장을 했을 때의 패배했던 기억 역시 오래 남아있죠. 지금 생각해 보아도 너무 안타깝고 후회가 많이 되네요.

 그리고 제가 일본 탑 리그인 산토리에 가게 된 것도 학교 다닐 시절 와세다와의 교류전이라든지 일본 전지훈련 등으로 일본 감독들에게 많은 눈도장을 찍어 놓아서 가능했던 일이죠. 그 당시 감독이셨던 정대관 감독님이 물심양면으로 노력하셔서 동기인 02학번 안승혁 선수 등 많은 선수들이 일본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셨죠. 그때 럭비 선수로서는 일본 프로리그로 간 것은 거의 최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연전을 다시 한 번 추억해 보았을 때,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

▲ 05년도에 주장을 맡았을 당시, 럭비부에서 고연전 합숙 때에 늘 전통적으로 하던 이른바 "2시의 데이트"라는 특별 훈련이 있었어요. 선수들이 하루의 고된 훈련에 지쳐 잠들어 있을 새벽 2시쯤에 감독님이 예고 없이 소집을 하면 모든 운동 복장을 갖춰 입고 운동장에 집합해 훈련을 하는 일종의 정신력 테스트였죠. 어느 날은 2시에 종이 울려서 선수들 모두 허겁지겁 복장을 갖춰 입고 나갔는데, 우리를 부른 사람은 감독님이 아닌 김성남 코치였던 거죠. 코치님이 호통을 치며 송추 야구장 근처에 있는 밤나무에서 밤을 각자 한명씩 따오라고 지시했고, 우리는 그 어두컴컴한 새벽에 밤을 줍기 위해서 열심히 뛰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두 시간 정도 밤을 줍고 나서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또 종소리가 들려서 다들 어안이 벙벙해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가보니 이번엔 진짜 감독님이 호출을 하셨어요. 알고 봤더니 감독님도 코치님이 그날 소집을 한 줄 모르고 오셨던 거죠. 그래서 결국 그해의 '2시의 데이트'는 하루에 두 번이나 했던 웃지 못 할 기억이 있네요. 지금은 이 새벽 특별 훈련은 없어졌다는데, 한번쯤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졸업하고 나면 힘들었던 일보다는 이런 일이 기억에 오래 남게 되거든요.

-지금 후배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시면 예전과 차이가 있나.

▲ 예전만 해도 '럭비는 체력이다' 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무조건 운동장을 뛰는 방식으로 훈련을 했다면, 요즘은 포지션과 선수 개개인의 상태를 고려해서 체계적으로 훈련을 하죠. 그리고 운동부 하면 떠오르는 폭력적인 선후배 관계도 정말 눈에 띄게 개선됐어요. 제가 4학년 주장으로 있을 때 그런 부정적인 관습을 많이 없애려고 노력을 했고, 또 동기들이 마음이 잘 맞았기 때문에 저의 그러한 노력을 잘 따라주었어요. 지금은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그냥 '형, 형' 하고 부르면서 농담도 건네고, 예전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그런 친밀한 관계로 이어지고 있죠.

-고연전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던 연세대 선수들에 대한 감정은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편인가.

▲ 물론 고연전 경기를 뛸 당시에는 이기고 지는 것에 따라 순간적으로 분노의 감정이 많이 생기고 예민해지는 건 사실이죠. 그러나 경기가 끝나고 나면 그때 태클건 거 미안하다, 다친 데는 없느냐 하며 서로 격려하고 위로해 주죠. 학교를 졸업하고 국군 체육 상무로 뛰게 되면 학교에 상관없이 연대 선수들과 더 많이 친해지게 돼요. 저도 연대 후배들에게 연락도 하고 더 챙기게 되구요. 애들이 어릴 때부터 운동만 해서 그런지 다 순박하고 착해요. (웃음)   

-마지막으로 올해 정기전에서 뛸 후배 선수들을 위해 격려와 충고의 한 말씀이 있다면.

▲ 후배들이 물론 고연전도 중요하지만, 너무 운동에만 전념하지 말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좀 알고, 놀 때는 놀고 하면서 자신의 졸업 후 미래에 대해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고연전이 물론 고려대학교 럭비부로서 가장 중요한 경기이기는 하지만, 너무 승패에 연연하지 말고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정기전도 우리 졸업한 OB들이 모두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으니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어요.

올해 있을 전국 체전을 위해 열심히 재활 훈련 중인 이광문 선수는 일본에 있을 당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한국 럭비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는 아시아 올스타로도 뽑힐 만큼 우리나라 국가대표로서도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을 만큼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고연전 때의 경기 장면, 함성 소리 하나하나 마음에 많이 남는다고 말하는 이광문 선수가 앞으로도 고려대학교의 럭비부 출신으로서 많은 활약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올해 있을 럭비 경기에서 이광문 선수만큼의 가능성을 보여줄 만한 선수가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