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정 사상 유래 없이 벌어진 국정 농단 사태에 대통령 탄핵과 하야를 외치는 국민의 목소리가 드높고 드넓다. 대통령의 녹화된 사과방송도 이 확산을 막지는 못했다. 청와대와 검찰은 바삐 핵심참모진을 경질하는가 하면, 이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되는 이들을 불러들여 수사를 진행했다. 여론이 심상치 않자 인사 단행과 법리적 해결을 도모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대통령, 기업과 대학 등이 고구마 줄기처럼 얽혀있는 이 거대한 게이트의 주요 인물인 최순실도 귀국했다. JTBC 보도 이후 한바탕 난리가 벌어진지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관계자들의 묵묵부답 속에서 각종 의혹과 가십, 혐의점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사건을 정리하고 한계지우며 여론을 잠재우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방식이 어딘지 석연찮다. 검찰에 소환된 이들은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지만 이렇다 할 속 시원한 이야기를 못 내놓고, 귀국한 최순실은 공항에서 바로 체포되지 않은 채 서울의 한 호텔에서 투숙하며 하루를 그대로 보내버렸다. 최순실의 건강 상태를 염려한 배려였다. 이미 이전에 독일에서 체류하며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인물을 검찰은 너무도 관대한 태도로 대한 것이다.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계획할 수도 있는 시간을 보낸 뒤에야, 검찰은 최순실을 ‘긴급 체포’했다. 강수를 두는 듯 하지만, 뒤늦은 체포는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고 백남기 농민에게 계속해서 부검영장을 청구하던 검찰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더 직접적으로는, 지난 2009년 회사의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던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이 뇌종양으로 인해 보석 신청을 했지만 돈의 사용처가 확실치 않다고 그것을 반려했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중대한 사안인 최순실의 조사 과정을 검찰이 녹화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국민들은 쉬이 납득하고 넘어갈 수 없다. 미르재단 압수품이라며 빈 상자들을 들고 나왔던 검찰이 아니던가. 죽을죄를 지었다던 최순실은 예측했던 대로 결국 청와대 문건 유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과 관련된 횡령과 배임, 여타의 증거인멸과 관련된 혐의들을 모두 ‘모르쇠’, ‘아니다’로 일관했다.
  나아가 검찰은 이 사태의 더욱 핵심적인 당사자인 대통령은 수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현직 대통령을 검찰이 기소할 수는 없다는 법리적 해석을 통한 입장이었다. 최순실 게이트를 넘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사태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는데, 박 대통령이 빠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이토록 떠들썩한 이유는, 단순히 어느 민간인의 비리와 국정 농단 때문이 아니다. 사태의 본질이 대통령과 그 관계자들이 국정의 권한을 내려놓고 특정 개인에게 일임해버리는, 한 국가의 정체성을 유린하는 일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제외하고, 이 게이트의 실체는 제대로 밝혀질 수 없다. 이런 식의 수사 방향을 선택하고 있는 검찰에게 기대할 수 있는 진실은 얼마만큼의 순도를 가진 것일까. 청와대와 압수수색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다가 압수수색을 했지만 그 결과를 얼마나 믿을 수 있겠으며, 만약 대통령을 수사한다고 한들 모든 것이 명명백백하게 가려질 수 있기나 할까,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다.
  법의 프로세스로 가장(假裝)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이 사태가 축소되어 마무리될 것만 같아 불안한 나날들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매끈한 법리적 해결이 아니다. 사태의 본질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는 진상규명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2 09:3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