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오노 요코 <자유(Freedom)>(1970)

내 몸은 불법이 아니다


박지혜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검은 물결

지난 15일 종로 보신각에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이 임신중절금지법 폐지를 위해 모였다. 이들은 폴란드의 검은 시위에 착안하여 여성의 생식권을 애도하는 뜻으로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마스크를 썼다. 또 한 손에는 검은 철제 옷걸이를 들었다. 이 옷걸이는 적절한 시술을 받을 수 없어 부작용 심한 약물이나 옷걸이 등을 이용해 자가 임신중절을 시도하다 마침내 사망에 이르기도 했던 여성들을 환기한다.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임신중절시술을 한 의료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뒤 논란이 증폭된 이때, 최근 보건복지부는 개정안을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 밝히었으며 검은 시위 물결은 여전하다.

한편, 지난 19일 아르헨티나 전역에서도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이달 초 일어난 남성가해자들의 (성)폭행을 동반한 끔찍한 살인 사건이 기폭제가 되었다. 여성살해(femicide) 희생자를 애도하는 뜻으로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는 “한 명도 잃을 수 없다.”, “우리는 살고 싶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아일랜드 사회당 페미니스트 그룹인 로자(ROSA), 폴란드 검은 시위를 주도했던 단체 라젬(Razem)이 한국 검은 시위에 대한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폴란드의 검은 시위, 한국의 검은 시위, 아르헨티나의 검은 수요일은 모두 여성혐오와 여성폭력에 관한 적극적 대항마로서 동궤에 놓여 있다.


내 몸은 불법이 되었다.

검은 시위대의 피켓 중 “내 몸은 불법이 되었다.”와 “내 몸은 불법이 아니다.”와 같은 문구는 이들의 문제의식을 잘 표명해준다. 여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여성의 몸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고 (국가가 허락하지 않는) 임신중절시술을 한 여성에게 불법/비도덕이라는 낙인을 찍는 바는 오늘날 횡행하는 여성혐오의 한 메커니즘을 잘 반영한다. 주지하다시피, 낙태의 축자적 의미 자체가 태아를 떨어뜨린다는 것으로 임신중지에 대한 낙인적 선언을 포함하고 있다.

여성의 몸에 관한 통제는 전 세계적으로 만연하다. 예컨대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할례(여성성기절제)를 받지 않은 여성은 그의 정숙성을 의심받아 결혼할 수 없다. 이 악습은 여성이 성적 쾌감을 느끼지 못하도록(성행위에서 여성을 비주체화하려는) 조치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아프리카 카메룬에는 성범죄 피해 예방을 위해 (불에 달군 돌로 딸의 가슴을 눌러 발육을 저해하는) 이른바 ‘가슴 다림질’의 관행이 있고, 파키스탄에서는 해마다 수많은 여성이 ‘명예살인’을 당한다. 한국에서는 그룹 F(x) 출신의 배우 설리가 젖꼭지 태가 드러나는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눈총을 받았다. 급기야 “공인으로서 적절하지 않은 옷차림” 운운하는 비난 폭격이 일어나는 한편, 그의 행보가 그다지 혁명적이지 않음에도 설리는 “젖꼭지에 자유를(Free the Nipple)” 캠페인의 혁명적 아이콘으로 급부상하였다. 이들 사례에서 보이는 바는 명백하다. “불법이 아닌” 여성의 몸이 “불법이 되었다.”

설리를 둘러싼 노브라 논란은 한편 아이유의 ‘제제(Zeze)’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제제’는 아이유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주인공 제제를 바탕으로 재해석한 곡이다. 이 곡은 표지의 망사스타킹을 신고 핀업걸 자세를 취한 소년 삽화와 제제를 섹시하다고 표현한 아이유의 말 등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아이유가 원작을 오독했다는 의견은 타당하지만, 아이유를 향한 대중의 분노는 그야말로 감정 과잉이었다. ‘순진무구한 소녀’로서 대중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었던 설리와 아이유가 예상 궤도를 이탈하는 순간, 이들의 섹슈얼리티를 도착적으로 소비하던 대중의 분노는 무지막지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브라

“젖꼭지에 자유를” 이른바 노브라 운동은 과거 60년대 미국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이는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한 페미니즘적 실천이 된다. 여전히 여성들이 아름다운 몸매를 위해 혹은 사회적 강제로 브래지어 착용을 강요받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젖꼭지를 가지고 있지만, 여성은 이를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 남성의 상의 탈의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여성의 상의 탈의는 검열의 대상이 된다.
물론 개인의 미적 욕구에 의해 브래지어 착용을 선호하는 여성들도 있다. 브래지어의 효과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이들이 원하는 아름다운 가슴이란 과연 어떠한 가슴인가 의아해진다. 지난 8월 국가건강정보포털이 ‘아름다운 가슴’에 관한 세밀한 기준을 제시하여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오롯이 이 기준을 충족하는 가슴이란 과연 존재할까? 이른바 아름다운 가슴 이데올로기 속에서 여성의 가슴은 기표로서 떠돌기만 할 뿐, 현실에서 제 자리를 점거할 수 없다. 심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여성의 젖꼭지뿐만이 아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의 포스터 속 여성(김옥빈)의 다리는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유해성을 이유로 심의 반려를 받아 삭제되었다.

소제목 때문에 잠시 뱀발을 붙이건대, 프로크루스테스는 테세우스가 모험 중 마지막으로 만난 악당이다. 그는 아테네 인근에 살면서 사람을 만나면 그를 쇠침대에 눕히고서 침대보다 짧은 사람은 잡아 늘여 죽이고 침대보다 긴 사람은 톱으로 머리나 다리를 잘라 죽였다. 그의 쇠침대에는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 그 누구에게도 침대가 딱 맞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바야흐로 프로크루스테스의 ‘브라’에 여성의 가슴이 놓여있다.

노브라 운동은 가장 사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몸’을 둘러싼 통제, 여성억압의 기제를 폭로하여 여성의 몸 나아가 여성을 타자화하는 데 반발한다. 불법이 아닌데 불법이 되어버린 것에 대한 정당한 분노. 그래, “내 몸은 불법이 아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2 08:5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