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배는 춥던 날

신지현 기자

토요일의 시위를 다녀오고, 나는 몸살이 났다. 두 개의 집회에 다녀오니 남들보다 두 배는 추웠던 것 같다. 내가 참가한 토요일의 시위는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검은 시위’와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락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였다. 사실 나는 검은 시위가 마무리 되어갈 무렵, 피로와 추위에 지쳐 어서 집에 가고 싶었다. 일단 광화문에서 만나기로 한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난 아무래도 집으로 갈까 해. 내 말에 그는 아쉬워하며 대답했다. “거 봐, 두 개는 다 못 갈 거라니까. 그냥 촛불집회만 오지 그랬어.”

나는 왜 그가 그렇게 말했는지 묻지 않았다. 나도 알고 있었다. 검은 시위에 참석하는 내내, 마음 한 구석에 비겁한 걱정을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중대한 이슈에는 관심 없는, 이기적인 여자들”이라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편으로 신경 쓰고 있었다. 지기 싫은 심정이었을까, 내게 있던 비겁한 걱정을 외면하고 싶었던 걸까. 보다 더 중요한 모임에 빠지는 양 여겼던 말에 발끈한 나는 집에 가지 않고 촛불집회에 참여하기로 했고, 결국 몸살이 난 것이다.

그날 저녁 내가 들었던 말은 예전 어떤 정치인의 발언을 환기한다. 그는 진보정치조직 내부의 성폭력 진상조사를 두고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며 폄하했다. 무엇이 정말 쓸데없는 행동인가. 최순실씨의 수사를 촉구하라고, 박근혜의 하야를 외쳐야할 이 시점에, 문화계 곳곳에서 이미 벌어진 성폭력을 고발하는 것은 쓸데없는 행동인가? 당사자 여성들의 입장은 반영하지 않은 정책으로, 임신을 중단한 여성들을 모두 죄인으로 만드는 낙태죄를 폐지하라 외치는 것이 쓸데없는 행동인가?

지난 한 달이 지나는 동안, 뉴스를 틀면 하나의 극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좌지우지한 정황이 갈수록 명확하게 드러난다. 연일 쏟아지는 보도 속에서 무엇보다 ‘핫’했던 것은 ‘최순실 모녀 스토리’였다. 역술인에 대한 편견, 여성에 대한 혐오의 감각이 가득한 비난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 어디에서든 찾을 수 있었다.

국가 기반을 흔들고 국민을 기만한 이 사건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비하, 여성멸시의 용어가 그토록 자연스럽게 용인되어야 할 것인가? “이러니 여성 대통령이 다시 못 나올 것”이라며 여성정치인에 대한 여성혐오적인 평가가 당연시된다. 지금까지 ‘남성’ 대통령은 다시 못 나왔는가? 문제를 일으킨 사람의 젠더에 따른 여성혐오적인 발언들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쓸데없는 행동인가?

성찰과 애도를 향해야 하는 에너지들이 여성이라는 분노 배출구로 누수되고 있지 않은가? 몇 가지 질문들을 남긴 채 여전히 나는 감기가 낫지 않았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2 10:5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