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귀’를 깨우려면

김유동 기자


  몽골 여행을 갔다. 사방에 끝없이 초원이 펼쳐져 있는 게르(몽골 유목민의 이동식 집)에서 묵었다. 밤중에 요의를 느끼고 화장실로 갔다 돌아오던 중, 돌연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길을 잃은 것이다. 몽골의 밤은 심해처럼 어둡다. 게르에는 전등 하나 없고 유일한 빛은 밤하늘의 빼곡한 별들과 저 멀리 떨어져있는 고속도로의 불빛뿐이다. 핸드폰으로 사방을 비춰보았지만 어디에도 풀만 무성할 뿐이었다. 반팔차림의 나는 몽골의 싸늘한 밤공기에 닭살이 돋는 것을 느꼈다.

  게르에서 더 멀어질까 나아가지도 가만히 있지도 못한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쎄노(몽골어로 ‘안녕하세요’)’를 외쳤다.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한국인 동행들이 듣기를 바라며 ‘여보세요!’도 외쳤다. 그런 나를 비웃듯 풀벌레 소리만 들렸다. 순간 이렇게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몇 걸음 더 가서 말 묶는 끈을 찾아 돌아올 수 있었지만 결국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은 셈이었다. 다음날, 밤중에 누군가 외치는 소리를 듣지 못했냐는 내 질문에 가이드는 ‘그게 너였냐, 나는 꿈인 줄 알았다.’고 했고 그 말에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 악몽 같던 밤을 떠올릴 때마다 세월호가 떠올랐다. 구조대는 코앞에 있었지만, 끝내 구하러 오지 않았다. 그들도 꿈을 꾸고 있던 것일까. 승객이 많은 선미가 아니라 선수로 향해 소수의 선원들만 구했다. 반면 아이들은 객실에 갇혀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발이 꽁꽁 묶인 채 불안에 떨었을 것이다. 점점 기울어가는 배 속에서, 종아리를 적시는 차가운 물을 느끼며 아이들은 죽음을 예감했을 것이다. 그때 내뱉었을 외침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하고 또 두렵다.

  아직도 세월호를 ‘사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슬프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일. 그래서 여전히 진실을 밝혀내겠다는 사람들의 외침은 ‘꿈속의 소리’처럼 무시해버린다. 명절에 나는 이런 ‘잠든 귀’를 하나 보았다. 친척 중 한 명이 ‘세월호 때문에 안전법규가 강화되어서 우리 아파트 리모델링이 지체되고 있다’고 불평했다. 오를 수 있던 집값이 ‘재수없게도’ 세월호가 가라앉는 바람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일까(세월호의 침몰에 우리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듯이). 또, 무리한 리모델링으로 아파트가 세월호처럼 폭삭 가라앉더라도 상관없다는 걸까. 그러나 나는 가만히 있었다. 나서봤자 결국은 목에 핏대만 세우며 서로 평행선을 그을 것이라 지레짐작하면서.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해서 유가족이 침묵해야한다는 주장에는 분노하면서 이렇게 나는 가정의 화목을 핑계로 침묵해버린 것은 아닌가, 부끄럽다. 잠든 귀를 깨우려면,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나오는 곳이 어디일지 몰라도 걸음을 내딛으며 계속 외쳐야 한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2 14:3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