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의 죽음: 클라우스 노미(Klaus Nomi), 그리고 데이빗 보위(David Bowie)

단편선 (음악가)



  낯선 도시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제주도는 큰 섬이었다. 제주도엔 일 때문에라도 종종 내려갔지만 일행 없이 홀로 돌아다닌 경우는 드물었다. 전날까지 제주에서 일을 마치고, 다음 일정인 대구 공연까지 시간이 이틀 가량 남아 간만에 온전한 휴가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어디서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다 서귀포에 사는 친구가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에 잠시 머무르기로 했다. 며칠 간 묵은 호텔에서 짐을 정리하고 나오니 갑자기 혼자가 되어, 모든 것이 내게서 멀찍하니 떨어져 지긋이 노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뿐이지만 자유로운 시간이니 내 마음 가는대로 돌아다니자 생각했지만 아침과 점심을 겸해 햄버거를 사먹곤 곧 풀이 죽었다. 그냥 어디라도 빨리 짐을 놓고 쉬는 게 낫겠다 싶어 서귀포의 게스트 하우스로 가자 마음먹었다. 겨울이라 공기는 차가웠으나 구름 한 점 없이 햇빛이 쨍한 날씨라 그다지 춥지는 않았다.
  수차례의 환승 끝에 도착한 시외버스터미널은 내가 아는 관광도시로서의 제주시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게, 허름하고 낡아보였다. 지은 지 20년은 족히 넘어보였다. 서귀포 가는 차편은 다행스럽게도 저렴했다. 티켓을 끊은 나는 그제야 한숨을 돌리며 터미널의 한쪽 편 출구로 나갔다. 출구 주변엔 담배꽁초가 드문드문 아무렇게나 버려져있었다. 아마 이 동네사람들은 이쯤에서 담배를 피는구나, 하며 나도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고 깊이 빨아들였다 연기를 후 불어내니 그제야 살짝 마음이 놓였다. 그쯤 쓰고 있던 헤드폰에서 클라우스 노미Klaus Nomi의 “The Cold Song”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클라우스 노미는 독일 출신의 가수로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4년 태어나 미국에서 지극히 짧은 전성기를 누리다 1983년에 39세로 길지 않은 생을 마감했다. 생전에 낸 정규앨범은 단 두 장, 1981년의 [Klaus Nomi]와 1982년의 [Simple Man] 뿐이지만 비평적으로건 대중적으로건 아주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이끌어낸 아티스트다. 열광하던 원인은 여럿 있겠으나 가장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카운터 테너로서의 아주 넓은 음역대, 그리고 그의 독특한 분장과 무대에서의 기이한 퍼포먼스 때문일 것이다. 특히 양쪽 머리를 들어 올려 아주 뾰족한 삼각형 모양으로 고정시키고 얼굴을 온통 새하얗게 칠한 채 노래하는 모습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내가 처음 그의 음악을 들은 것도 학생 시절, 친구의 집에서 서로 좋아하는 비디오를 돌려보다 접한 것이었다. 뉴웨이브와 독일 특유의 고딕스러운 정서가 스타일리쉬 하게 혼재된 그의 “Total Eclipse”를 들으며 나는 굉장히 기괴한 노래라 여기면서도 한편으론 이상할 정도로 빠져들었다. 이후로 전후 독일의 음악에 심취해 캔Can이나 니나 하겐Nina Hagen 같은, 여전히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내게 그의 음악은 좋은 가교도 되었던 셈이다.
  그가 부른 “The Cold Song”은 원래 17세기 영국 바로크 음악의 대가 헨리 퍼셀Henry Purcell이 작곡한 오페라 “King Arthur”의 3막에서 겨울의 신이 부르는 아리아. 원곡에서는 바리톤 주자가 낮지만 위엄 있는 목소리로 부르지만 클라우스 노미의 경우에는 넓은 음역대를 가진 카운터테너라는 장점을 십분 살려 아주 높은 고음으로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곡, 특히 이 곡의 라이브가 유명한 까닭은 클라우스 노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가진 연주회에서 이 곡을 직접 부르는 모습이 담긴 비디오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비디오에서 클라우스 노미는 마치 중세 시대의 제사장을 연상시키는 듯한 빨간 예복을 입었는데, 자세히 보면 그가 목 주변에 두터운 흰색 러프를 두른 것을 볼 수 있다. 러프를 두른 이유는, 에이즈AIDS의 합병증으로 발생한 섬유종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클라우스 노미는 에이즈로 인해 사망한 최초의 유명인사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에는 에이즈가 어떤 병인지 알려져 있지를 않아 전염병으로 생각되어 아무도 그의 주변에 다가가질 않았고, 결국 쓸쓸하게 혼자 임종을 맞은 후 화장되었다.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을까. 그가 1983년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가진 라이브에서의 “The Cold Song”은 그가 부른 다른 버전에 비해서도 차분하게 가라 앉아있으며, 왠지 고독해 보이는 듯도 하지만, 단호하다. 정면을 또렷이 응시하며, 예의 고혹적인 팔세토 창법으로 자신의 마지막 무대를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클라우스 노미를 보며, 너무 감상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아마 자신이 가진 마지막 생명력을 불어넣어 노래하는 음악가의 모습이란 이런 것일까 생각했다.
  어느덧 버스는 산간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푸르던 하늘은 온데간데없고, 해는 구름에 가려 보이질 않았다. 흐리고 어두웠다. 제주의 날씨는 유달리 변덕이 심하고, 특히 한라산 부근에선 더하다. 맑고 볕 잘 드는 날씨였다 순식간에 구름이 몰려와 소나기에 흠뻑 젖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아직 한 시간 가량을 더 가야 서귀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나무들이 점차 암갈색으로 물드는 풍경으로 보며, 클라우스 노미를 들었다. 랜덤하게 재생되는 그의 음악을 듣다, 데이빗 보위David Bowie로 넘어갔다.
  클라우스 노미는 데이빗 보위와 인연이 깊다. 클라우스 노미가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것도 데이빗 보위와 함께 TV에 출연했기 때문이었다. 1975년 처음 방송되기 시작해 2017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미국의 장수 코미디 프로그램 “Saturday Night Live”에선 전통적으로 프로그램 중반과 후반에 뮤지컬 게스트가 자신들의 음악을 연주한다. 데이빗 보위는 이 방송에 1979년 출연해 자신의 세 번째 앨범의 타이틀 싱글인 “The Man Who Sold the World”를 불렀다. 이때 클라우스 노미는 자신과 같이 카바레 가수 출신이자 드랙퀸으로도 활동하고 있던 아티스트 조이 아리아스Joey Arias와 함께 데이빗 보위의 백보컬로 출연했는데, 이는 물론 클라우스 노미의 퍼포먼스에 반한 데이빗 보위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것. 심지어 이 날 방송에서의 의상 컨셉도 클라우스 노미 특유의 고딕스러운 스타일을 응용한 것이었다. 이미 아티스트로서 또한 패셔니스타로서 입지를 확고하게 다진 시대의 아이콘 데이빗 보위를 등에 업고 클라우스 노미는 자신의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한 시대를 규정함은 물론, 후대의 아티스트들에게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 데이빗 보위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었다. 데이빗 보위는 2016년 1월 8일 자신의 69번째 생일에 맞춰 통산 스물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Blackstar]를 발매했다. 그리고 이틀 뒤, 그의 삶 후반부에 찾아온 간암을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자택에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투병 중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사망한 이후에야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데이빗 보위는 함께 앨범을 작업하는 이들에게도 자신의 상태를 알리기를 꺼려했고, 따라서 극소수의 주변인들만 그가 투병 중임을 알고 있었다 한다. 데이빗 보위와 아주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온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Tony Visconti는 데이빗 보위가 사망한 이후, [Blackstar]에 실린 음악의 가사들은 데이빗 보위가 스스로의 죽음을 예견하며 쓴 것들로 가득하다 언급하기도 했다. 토니 비스콘티가 데이빗 보위의 오랜 지인인데다 [Blackstar]의 공동 프로듀서이기도 하니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닐 테다. 그러니 [Blackstar]는 일종의 스완송Swan Song이기도 한 것이다.
  [Blackstar]는 10분에 달하는 동명의 대곡 “Blackstar”로 시작한다. 몽환적인 기타 아르페지오와 불길하고 가냘픈 관악기의 연주로 구성된 짧은 인트로가 끝나고, 아랍 음악적인Arabic 어프로치가 강한 선율과 화성에 기반을 둔 곡의 모티프motif가 프로그래밍 된 드럼 머신 비트와 함께 등장한다. 음악의 첫 번째 절이 끝난 뒤 간주분에선 재지한 색소폰 솔로가 이목을 잡아끈다. 다시 두 번째 절이 시작되고, 신시사이저와 드럼 연주가 가미되면서 곡의 온도를 상승시키는 것으로 이 곡의 전반부를 마무리 짓는다. 나는 지금까지 이 곡의 3분의 1 지점까지 벌어진 사건들, 그리고 이 앨범의 10분의 1 지점까지 벌어진 사건들을 간추려 쓴 것뿐이다. 이 이후의 전개들도 모두 대담하다. 다음 곡인 “Tis a Pity She Was a Whore”에서는 2010년대의 인디록과 프리 재즈, 그리고 가스펠을 섞어 한 편의 기묘한 드림팝을 들려주고 있다. 그 다음은 데이빗 보위 특유의 스타일이 잘 살아있는 어두운 발라드 “Lazarus”, 또 그 다음은 혼탁한 리듬의 록 넘버 “Sue (Or in a Season of Crime”이 흐르고… 마지막 트랙인 “I Can't Give Everything Away”이 서서히 페이드아웃 되는 순간까지, 이 앨범은 흥분의 연속으로 가득하다.
  [Blackstar]는 놀라운 앨범이다. 여기서 놀람이란, 그가 생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스스로가 쌓아올린 음악적 세계를 혁신하기 위해 전력을 다 했기 때문에 비롯된다. 통상 우리는 일흔의, 한국식으로 이야기하자면 고희古稀를 맞은 아티스트에게 이런 종류의 음반을 기대하지 않는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하지만 데이빗 보위는 그렇게 하는 대신, 다시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높은 고점을 찍었다. 그리고 이어 그가 생전에 이루어낸 부와 영예를 뒤로 한 채, 생을 마감했다. 클라우스 노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첫 앨범 [Klaus Nomi]에서 “Total Eclipse”를 부르며 앨범 아티스트로 데뷔했다. 데이빗 보위는 첫 솔로 앨범 [David Bowie]를 1969년에 발매했고, 2년이 지난 1971년 다시 같은 제목이 붙은,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곡들로 채워진 앨범 [David Bowie]를 발매했다. 이 앨범의 포문을 여는 곡이 그 유명한, 데이빗 보위의 상징과도 같은 “Space Oddity”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데이빗 보위의 커리어는 이 곡에서 시작된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두 아티스트 모두 우주와 관련된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본격적으로 구축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흩어져 지금쯤은 그들이 그토록 사랑하던 우주에 닿았을까.
  버스는 어두운 숲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음악에 흠뻑 빠져들어 있었다. 온통 검고 축축하고 낮은 것들에게 둘러싸여 얼마쯤인지도 가늠 안 될 만큼 긴 시간이 흐른 느낌이었다. 그러다 검고 축축한 것들이 조금씩 더 붉게, 붉고 따스한 것들로 바뀌어갔다. 이내 닫힌 눈꺼풀 사이로 엷은 빛들이 새어 들어왔다. 나는 눈을 떴다. 천연덕스럽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날씨로 돌아와 있었다. 약간의 멀미감에 창문을 살짝 열었다. 새침한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멀리 바다냄새가 났다. 서귀포에 거의 도착한 것이다. 나는 내려야할 곳에 내리질 못해 그 다음 정류장에 내렸다.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고, 이내 게스트 하우스로 걷기 시작했다. 차가운 겨울 공기 때문인지 콧잔등이 시큰했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플레이 방식을 랜덤 모드로 변경했다. 곧 이어 헤드폰에선 앨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가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1 00:2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