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에 기쁜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반올림과 KTX 해고 승무원, 두 사업장이 전격적으로 사측과 합의해 오랜 투쟁을 끝냈다. 그러나 이들은 이번 승리가 끝이 아닌 시작이라며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를 요청했다. 이번 호 본지에서는 두 사업장의 투쟁 과정을 간략히 정리하는 한편 노동계의 미해결 과제를 살펴보려 한다.
 

반올림과 KTX 해고 승무원들의 값진 승리,

다른 장기 투쟁 사업장에도 새바람 불까

2018년 7월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시민 단체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이하 반올림)과 KTX 해고 여승무원들이 사측과 합의를 이뤘다. 각각 11년, 12년간의 장기 투쟁 끝에 얻은 결실이었다. 그러나 또 다른 대표적인 장기 투쟁 사업장 쌍용차의 노사합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번 호 본지는 두 사업장의 투쟁 과정과 노사 간의 전격적인 합의가 이뤄진 이유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또한 쌍용차 노조의 투쟁 현황을 알리고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려 한다.

반올림 합의, 반도체 넘어 삼성 계열사 전체로 확장될까

반올림이 천막농성을 진행한 지 3년 만인 2018년 7월 조정위가 제2차 조정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삼성전자 측은 조정위의 중재안에 ‘무조건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반올림 측에서도 중재안에 동의하면서 양측이 전격적으로 합의를 이뤘다. 갑작스럽게 합의가 이뤄지자 삼성전자가 올해 말에 있을 이재용 부회장의 대법원 판결 전에 여론을 전환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반도체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해 반올림과 함께 활동을 전개한 삼성 일반노조는 “반올림 삼성전자 합의서는 삼성백혈병 등 직업병 피해자들의 온전한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서가 아닌 삼성재벌 이재용 재판에 면죄부를 주는 합의서”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한편 지난달 23일 전직 삼성전기 노동자 김 씨가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삼성전자가 아닌 삼성전기에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첫 사례이자 삼성전자 이외의 계열사에서도 처음이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이번 산업재해 인정 판결은 반올림의 투쟁성과가 반영된 것일 뿐 아니라 삼성 일반노조의 요구인 “삼성은 삼성 계열사 삼성SDI, 삼성 전기 등 백혈병 피해자의 배제 없는 사죄와 배상을 할 것”이 일정 부분 수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삼성그룹 전반으로 백혈병에 의한 산업 재해 문제가 확대될 전망이다.

KTX 해고 승무원, 복직을 향한 12년의 여정

반올림이 농성을 해제하기 4일 전인 7월 21일, KTX 해고 승무원들 또한 장장 12년의 장기투쟁을 끝냈다. 한국철도공사 코레일이 해고 승무원들의 복직과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2004년 경부 고속철도 개통을 앞두고 입사한 승무원들에게 철도청(현 코레일)은 1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005년 승무원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대신 ‘KTX관광레저’(현 코레일관광개발)라는 자회사와 계약 맺을 것을 요구받았다. 고용 기간이 2년을 넘으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당시 비정규직법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승무원들이 KTX관광레저로의 이적을 거부하고, 코레일에게 정규직 전환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하자 코레일은 이적을 거부한 승무원 280명을 정리해고했다.

2008년 11월 해고 승무원들은 투쟁이 장기화되자 코레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승무원들이 입사 당시에는 코레일의 자회사 소속이었지만 실제로는 코레일과 직접근로관계를 맺었으므로(묵시적 근로관계) 코레일의 무단해고는 부당하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었다. 법원은 2010년 9월 1심과 2011년 8월 2심 모두에서 승무원들의 손을 들었다. 그러나 2015년 2월 대법원에서 코레일과 해고 승무원 간의 묵시적 근로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판결을 뒤집었다. 1심과 2심의 공통된 판결을 대법원에서 뒤집는 경우는 이례적이었기 때문에 해고 승무원들의 상심은 더욱 컸다. 게다가 승무원들은 1, 2심 승소 이후 코레일로부터 받은 임금과 소송비용 8,640만 원을 반환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대법원 판결 이후 채무를 감당하지 못해 해고 승무원 박모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마저 발생했지만 결국 해고 승무원들의 패소는 최종 확정됐다.

그러나 패소 확정 3년 후인 2018년 5월 25일 ‘양승태 사법부’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부와 재판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상황은 급격하게 전환됐다. 의혹이 제기된 문건에서 ‘KTX 승무원 사건’이라는 문구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에 해고 승무원들은 5월 30일 대법원장 비서실장과의 면담에서 재심을 요청했다. 양승태 전 대법관의 직무범죄 여부를 조사 중이므로 재심을 곧바로 진행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7월 21일 코레일이 해고 승무원 280명 중 180명에 대한 복직에 합의하면서 KTX 해고 승무원들의 투쟁에 큰 진전을 보였다. 다만 이들은 승무원이 아닌 코레일 역무직으로 복직될 예정이므로 여전히 쟁점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쌍용차 폭력진압 9년, “정부가 직접 나서야…”

노동계의 오랜 과제였던 반올림과 KTX 해고 승무원들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면서 투쟁을 종료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입장이다. 여전히 쌍용차·파인텍·세종호텔·콜트콜텍 등의 노동자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을 견디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KTX와 함께 양승태 전 대법관의 재판거래 피해자로 지목된 쌍용차 노조의 경우 지난달 2일 폭염 속에서 해고자 복직을 염원하는 오체투지 행진을 감행하는 등 강력한 투쟁을 진행했다.

6월 2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쌍용차 해고자 故 김주중 씨의 사망을 계기로 '쌍용자동차 희생자추모 및 해고자복직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도 5년 만에 다시 출범했다. 이들은 지난달 10일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정부의 노조와해 비밀문건과 박근혜 정부의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 조사를 요구한 바 있다. 또한 지난달 18일 ‘쌍용차 국가폭력 진상규명, 손배가압류 취소, 해고자 전원복직 쟁취 범국민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범대위는 2009년 쌍용차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와 폭력 진압 등 쌍용차 해고자 문제는 명백한 국가폭력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요구했다.

범대위는 “쌍용차 사태 원죄는 정리해고제를 도입한 김대중 정부에 있다”며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정리해고, 파견법, 기간제법 등 3대 노동 악법을 폐기해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만큼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반올림 및 KTX 해고 승무원들의 투쟁을 완전한 승리로 마무리 짓고, 쌍용차 노조 등 장기투쟁 사업장의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의 의지를 강하게 내비친 것과 달리 별다른 진척이 없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 전자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동 이후 핵심 산업에 180조를 투자하겠다고 밝혀 삼성과 문 대통령 간의 거래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가 이재용 부회장의 선고 형량을 낮추기 위한 중재안이라는 비판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의지를 묻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한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 농단 의혹사건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안’을 공개했다. 현행법상 재심요건을 갖추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이 특별법은 소송 당사자의 피해를 신속하게 회복시키려는 목적으로 발의됐다. 이 법안이 쌍용차 해고자 문제 해결을 위한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이은솔 기자 eunsol15@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