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의 발전이 사회적 변동을 낳고 있다. 21세기 사회변화를 주도하는 두 가지 기술적 축으로 흔히 IT와 더불어 생명공학(Bio Technology)을 말할 만큼, 생명공학은 인류에게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인간게놈프로젝트와 뇌과학 연구는 이미 인간의 몸과 생명에 대한 기술과학적 개입이 상당히 증대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명의 문제는 이제 중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었고 사회학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전개된 광우병 촛불집회, 백혈병으로 인한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의 사망이 촉발한 사회운동,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을 둘러싼 환자들의 투쟁 등이 그 예다.

비판사회학회의 학술 계간지 『경제와 사회』 통권 97호에는 ‘21세기 생명정치와 통치성’이라는 주제로 특집기획이 다뤄졌다. 김환석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생명정치의 사회과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논문에서 생명정치에 관한 서구의 분석 시도 양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들로부터 유용한 개념과 이론적 통찰 및 방법론을 도출함으로써, 생명정치에 관한 한국의 사회학적 연구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하대청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의 논문인 「지구적 생명정치와 위험의 개인화 – OIE의 BSE 위험 관리를 중심으로」는 ‘지구적 생명정치’의 측면에서 BSE(광우병) 질병 위험 관리에 접근함으로써 쇠고기 안전을 생활정치 이슈로 보는 관점의 한계를 지적한다. 강양구와 채오병의 논문 「21세기 생명정치와 시민권의 변동 – 글리벡 정체성의 탄생」은 생명공학과 시민권의 상호 작용을 2000년대 초반 백혈병 환자의 새로운 주체화 과정을 통해 고찰한다. 여기서는 김환석의 논문을 소개함으로써 생명정치 담론에 대한 이해와 참여를 돕고자 한다.

통치성, 호모 사케르, 다중

김환석에 따르면 생명정치 연구에 선구적으로 기여한 것은 미셸 푸코다. 『성의 역사Ⅰ:앎의 의지』에서 푸코는 주권권력과 생명권력을 대비시켰다. 생명권력은 생명을 관리하는 권력이다. 주권권력이 재화와 서비스의 박탈로 작동한다면, 생명권력은 개인의 몸에 대한 규율과 인구의 조절적 통제로 나타난다.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볼 수 있는 푸코의 1978년과 1979년 강의에서 그는 생명정치라는 주제를 자유주의와 연결시킴으로써 보다 넓은 이론적 틀 안에 위치시키고자 했다. 통치성(goverment) 개념은 여기서 나온다. 푸코의 통치성은 첫째, 인구를 주요 목표로 설정하는 생명관리권력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절차·분석·계측·전술의 총체이다. 둘째, ‘통치’라는 권력을 다른 것보다 우세한 권력으로 유도해간 경향이다. 셋째, 중세 사법국가가 행정국가를 지나 차츰 통치화되는 절차이자 그 절차의 결과이다. 18세기까지 통치는 최근에 사용되는 것처럼 순전한 정치적 용어가 아니라 보다 넓고 다양한 의미를 지녔다. 국가에 의한 관리만이 아니라 개인의 자기통치, 가족과 아동을 위한 인도, 가계의 관리, 영혼의 지도 등에까지도 통치라는 단어가 쓰였다.

푸코는 생명정치를 단순히 위로부터 강제로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관행과 규율 속에서 자기통치의 실천으로서 채택되는 것으로 보았다. 김환석은 푸코의 통치성 개념이 거버넌스 연구의 일종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거버넌스 연구는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기능과 역할을 검토하고 이들 상호간의 관계를 적절히 변화시키는 것을 의도한다. 그러나 통치성 연구는 오히려 거버넌스의 문제해결 틀 자체를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거버넌스 논의는 국가와 사회를 존재론적 실체로 상정하지만, 통치성 개념을 통한 접근은 국가와 사회를 해체적으로 보여준다. 사회적 존재들이 유동적이고 탈중심화된 권력기술에 의해 통치의 대상으로서 구성되는 역사적 과정을 푸코는 탐구한 것이다.

푸코 이후 생명권력과 생명정치라는 주제는 한동안 잊히는 듯하다가 조르조 아감벤에 의해 다시 등장했다. 1995년부터 제출된 『호모 사케르』 연작을 통해 생명권력은 다시 담론 장의 전면에 나타났다. 아감벤은 생명권력을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존재한 모든 형태의 권력에 숨겨진 의미라고 보았다. 서구의 정치적 전통을 결정한 것은 적/친구의 이분법이 아니라 벌거벗은 생명(조에)과 정치적 존재(비오스)의 분리라는 것이 아감벤의 인식이었다. ‘호모 사케르’는 고대 로마법의 용어인데, 이들은 정치적-법적 공동체로부터 배제되어 있으므로, 어떤 사람이 이들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다. 보호시설 수용자나 망명자, 그리고 뇌사자 등 법의 보호로부터 배제된 이들은 모두 호모 사케르이다. 조에/비오스의 경계는 아감벤이 볼 때 과거에는 개인 간 또는 집단 간에 설정되어 있었으나, 이제는 어느 정도 개인적 신체들에 내면화되었다. 벌거벗은 생명이 더 이상 특정 장소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생물학적 신체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감벤의 이론은 푸코가 극복하고자 했던 권력의 사법적 모델로 회귀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아감벤은 주권권력이 벌거벗은 생명을 생산하며 지배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국가중심적 모델이라는 점도 아감벤을 향한 비판 중 하나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푸코가 구조주의적 인식론에 빠져 정태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제국』과 『다중』을 통해 푸코의 생명정치 개념을 새롭게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1970년대 이후 산업자본주의는 점차 인지자본주의로 대체되었다. 생산과정은 정보화·자동화·네트워크화·지구화되었고, 생산과정의 변화는 ‘비물질 노동’을 낳았다. 이제 자본주의 착취는 감정적·지적 능력의 흡수를 통해 작동하므로, 육체 노동력을 포함한 ‘생명’의 모든 에너지와 영역이 자본축적의 법칙에 복속되었다. 오늘날 생명정치는 인구의 의식과 신체 그리고 모든 사회관계에 걸쳐 확장되는 통제의 형태다.

『다중』에서 네그리와 하트는 ‘생명정치적 생산’을 말하는데, 이것은 경제/정치의 구분 해소, 그리고 자연/문화의 새로운 관계를 드러낸다. 인지자본주의에서 ‘생명’은 그 자체가 기술적 개입의 대상이 됨으로써 자연(생명)은 자본(문화)이 된다는 것이다. 생명정치적 생산을 담당하는 전 지구의 창조적 행위자들을 네그리와 하트는 ‘다중’이라 부른다. 이들은 지구적 생명권력의 체제인 ‘제국’에 대항할 혁명적 잠재력을 지닌 주체로 상정된다. 탈근대적 생명정치의 내부에서 성장한 다중이 자신을 착취하던 제국을 전복시키리라 전망한 것이다. 네그리와 하트의 이론은 주로 추상적이라고 비판받는다. 그들의 ‘생명’ 개념이 푸코처럼 사회적 구성물이거나 역사적 지식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자적이고 초역사적인 실체인 것처럼 상정된다는 점, 다중과 제국이 선명하게 분리되고 대비된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이 복잡한 현실을 올바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감벤 그리고 네그리와 하트는 세계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지만 거대하고 추상적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김환석은 푸코가 말한 ‘생명정치’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의 거대 담론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 현재 삶 속에서 경험하는 현실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추구했던 것이라 본다. 경험적 이론들이 그 성과라 할 수 있다.

생명사회성, 생명 자체의 정치, 생명자본

김환석이 소개한 첫 번째 경험적 이론은 ‘생명사회성’ 이론이다. 미국 인류학자 폴 래비노우가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초기인 1992년에 발표했다. 생명사회성 이론은 사회생물학이나 사회다원주의와 다르다. 그는 생명공학의 혁신들이 자연과 문화의 엄격한 이분법을 극복하고, 생물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관계가 쌍방적으로 변화할 것이라 전망했다. 유전적 질병과 위험에 대한 지식 증대는 새로운 개인적·집단적 정체성을 출현시킬 수 있다. 기술혁신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화, 정체성 정치를 위한 물질적 조건을 창출할 수 있다. 생명사회성 이론은 사회적인 것의 생물학를 연구했던 사회생물학적 접근 방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두 번째로 ‘생명 자체의 정치’ 이론과 ‘생물학적 시민권’ 개념이다. 영국 사회학자 니콜라스 로즈가 제안했다. 로즈는 푸코의 철학을 영국에 소개하고 1990년대 이른바 ‘통치성 학파’를 주도했다. 아감벤을 비롯한 대부분의 생명정치에 주목했던 학자들은 추방, 배제, 우생학, 수용소 등 ‘죽음의 정치’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비판하면서, 로즈는 생명의 제조, 형성, 최적화와 같은 ‘생명의 정치’에 주목한다. 특히 그는 의료에 집중한다. 오늘날 의료의 영역은 질병 처리에서 위험예측 및 건강관리로 확장되었고, 치료법과 생명과정에 대한 관리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한 기대가 팽배하면서 생명경제를 형성했다고 주장한다.

로즈가 또한 주목하는 것은 몸과 주체성의 관계이다. 몸은 이제 자신의 주체성을 조직화하는 특징이 되었다. 우리는 몸의 성질과 구조에 바탕하여 스스로를 판단하고 스스로를 향해 행동한다. 로즈에게 이러한 주체화는 ‘생물학적 시민권’이라는 개념과 연결된다. 국가의 시민이 될 때 인종이 논의된 것은 과거에도 생물학적 시민권의 양상이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핵발전소 사고와 같은 생물학적 피해를 입은 경우 국가로부터의 보상을 요구하는 수동적 형태의 생물학적 시민권이 선진자유주의 통치성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는 보다 능동적인 형태의 생물학적 시민권에 의해 전복된다. 자신의 생물학적, 생의료적 권리를 중심으로 결집하여 운동을 펼치고 권리 실현을 위한 법 제정도 추구한다. 로즈의 견해를 향한 비판은 지나치게 개인 중심적이고 국가의 역할을 무시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편적 모델이 아니라 선진자유주의의 맥락적 성격을 반영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생명자본’ 이론이 있다. 인도출신의 미국 인류학자이자 과학기술학 연구자인 순데르 라잔이 제안했다. 그는 2006년 『생명자본: 게놈 이후 생명의 구성』에서 생명정치와 생명경제의 결합을 본격적으로 조명했고, 특히 생명과학지식과 자본주의 체제 사이의 공동생산을 탐구했다. 생명자본주의가 전통적 착취와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사례를 순데르 라잔은 인도 뭄바이의 한 연구 병원에서 찾는다. 저임 노동력과 유전적 다양성 덕분에 인도 뭄바이는 연구자에게 매력적인 장소다. 섬유산업의 몰락으로 인해 뭄바이의 가난한 실업자들은 자유의지로 적은 보수를 받고 생의료 연구의 임상실험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연구로 나타날 새로운 치료법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순데르 라잔은 어떻게 제1세계 한 사람의 생명의 향상과 연장이 제3세계 다른 사람의 건강 악화와 신체 착취와 연결되는가를 보여준다.

김환석은 기존의 정치와 시민권이 ‘사회적인 것’의 영역에 갇혀 있었다는 점을 비판한다. 이제 환경문제의 정치적 중요성을 인식한 사람들은 ‘생태정치’와 ‘생태학적 시민권’을 주장하고, 기술과학의 정치적 중요성을 인식한 사람들은 ‘기술정치’와 ‘기술적 시민권’을 요구하며, 몸과 건강의 정치적 중요성을 인식한 사람들은 ‘생명정치’와 ‘유전적 시민권’을 강조한다. 과거와는 다른 시민권의 요구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생명정치를 ‘사회적인 것의 정치’의 연장으로 보는 환원론적 시각에서 벗어나 ‘사회물질적인 것의 정치’를 구성해야 한다고 김환석은 제안하고 있다.

박성태 기자 clsrnofu@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