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과 불행의 박물지(博物誌)

고지혜(자유기고가)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하며 불행은 피하고자 애쓴다. 각자가 경험하고 느끼는 행과 불행이 아무리 제각각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다른 이들의 행복과 불행에 쉽게 공감하기도 하는데, 이는 인생살이란 게 저마다의 것이긴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비슷비슷한 면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행복과 불행의 수많은 경우가 여기,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있다.

두 결혼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안나 카레니나󰡕는 안나의 가정과 레빈의 가정을 두 축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안나는 고위 공직자인 카레닌을 만나 부유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은 사랑 없이 시작하여 허위와 기만으로 지탱해 오던 것이었기에 안나가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지면서 파국을 맞는다. 이에 반해 오랫동안 사랑해 오던 키티에게 청혼했다 거절당한 레빈은 자신의 삶에서 더 이상의 행복은 없을 것이라 단정할 만큼 절망에 빠진다. 그러나 결국 레빈과 키티는 서로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확인한 후 결혼에 이르게 되고 시골에서 자신들만의 단란한 생활을 꾸려나간다. 한 사람은 생기 없는 삶을 지속하다 뒤늦게 자신을 구해낼 사랑을 발견했지만 그 사랑으로 인해 자살하게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진실한 사랑으로 가정을 꾸리고 이를 기반으로 원기왕성하게 삶을 영위해 나간다.

행복은 삶의 의미가 아니다

  물론 안나의 삶이 불행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레빈의 삶도 행복만으로 충만하다고 말할 수 없다. 지극한 사랑으로 꾸려진 가정도 곧잘 권태와 피로에 잠식된다. 행복의 환희는 너무나 순간적인 것이며 그 찰나가 지나가고 나면 수만 가지의 자질구레한 불행들로 쇠잔해지는 긴 긴 생이 남는다. 이 소설에서 행복한 가정의 대표주자인 레빈은 행복과 평안과 득의의 순간에서도 질투나 절망, 증오의 감정으로 괴로워하고 생활을 영위하는 데서 오는 갖가지 불안과 걱정으로 인해 종종 정신적 평안과 자유를 빼앗긴다. 톨스토이는 시간이 불행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마저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의 불행이 지나가고 나면 그 다음에 오는 것은 또 다른 불행이라는 것을, 이 소설의 모든 인물들은 스스로의 삶으로 증명하기 때문이다. 불행과의 끝없는 고투, 그것이 생이다. 그리고 그러한 불행을 온전히 끝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다. 이 소설의 인물들이 그러하듯, 우리는 행복해지고자 전 생애에 걸쳐 고군분투하지만 언제나 행복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숙명적 불행’을 경험하곤 한다. 결국 모두가 이렇게 불행하다면, 이토록 고통스럽고도 구차하게 견뎌내는 것이 삶이라면(결코 불행을 이겨낼 수 없다. 그것은 끝이 없는 것이니까), 우리는 어디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인가. 안나가 죽은 후, 이와 대조적으로 삶을 지속하는 레빈의 모습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레빈은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답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성으로써 그 의미를 찾을 수 없음을 절감했을 때 그는 ‘선(善)’이란 것을 찾아낸다. 물론 이 작품의 말미에 등장하는 ‘선’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레빈의 고뇌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생이 불행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살아내기 위해 스스로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계속해서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스스로를 구하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06:1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