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 <여자, 노동을 말하다>, 이학사, 2013.

보이지만 보이지 않았던 노동을 말하다

노동자, 노동문제, 그리고 여성노동자. 우리는 언론을 통해 이런 이슈들을 쉽게 접한다. 그러나 ‘노동 유연화’ ‘고통분담’ ‘비정규직으로의 전환’이라는 큰 말들 속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삶은 쉽게 가려진다. 고용과 해고, 계약과 계약종료 사이에서 살아 숨 쉬는 노동자는 사라지고 숫자만이 남는다. 노동자나 노조에 대한 언론의 부정적인 시각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자신 또한 노동자이면서 스스로를 노동자로 정의하고 투쟁에 나서는 이들을 마뜩찮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들이 왜 투쟁에 나서야 하는지, 왜 노조를 꾸리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는지에 대해서 ‘그 입장이 아닌 사람들’은 눈을 감고 있다.
성공한 사람, 주목받는 사람을 멘토로 정하고 그들의 말을 받아 적고 따라가려고는 애쓰면서, 동시대를 치열하게 통과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마치 없는 것처럼 외면하는 사회. 성공하고, 부와 명예를 얻은 사람들을 통해서만 우리는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배움보다는 그들만큼 잘살고 싶은 욕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것일까. 매체는 범람하지만, 정작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한 성실한 관심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여기, 나이도, 직업도, 처한 처지도 다른 여섯 명의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있다. 각기 다른 여성 노동자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책을 묶은 박수정 작가를 찾아갔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박수정 작가의 󰡔여성, 노동을 만나다󰡕에는 여섯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일한 오경숙 씨, 파견직 텔레마케너 김희영 씨,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생 하연이,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 추송례 씨,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사무장 이정자 씨, 전국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장 박남희 씨, 삼성에스디아이 하이비트 해고자 최세진 씨, 이랜드 일반 노동조합 홈에버지부 황옥미 씨가 그들이다. 저자는 잡지 <삶이 보이는 창>과 계간지 <진보평론>에 게재한 글들을 묶어 이번 책을 냈다.  
여섯 명의 인터뷰이를 만나게 된 과정이 궁금했다. “인터뷰이분들 중 많은 분들이 제 주변에, 같은 동네에 사시던 분들이었어요. 제가 일하던 공부방 주방에서 밥을 해주시던 분, 공부방 학생, 제 아이의 친구 어머니, 여성 노동자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분. 인터뷰이 중에는 집회에서 우연히 알게 된 분도 있었어요. 하이비트 해고자인 최세진 씨 같은 경우에는 집회 때, 앞에 나서서 자신이 쓴 글을 읽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움직여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지요.”
주변에서 만난 평범한 이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이들은 그러나 노동현장의 부당한 억압 속에서 투쟁을 택한다. 하이비트 해고자 최세진 씨는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봐 일 년 동안 길거리에서 천막 투쟁을 한 사실을 숨긴다. 일 년 간의 노숙 생활 때문에 다른 일 년 반을 투병 생활한다. 스물 갓 넘어 결혼해 전업주부로 살다가, 서른넷이 되어 공장 노동을 시작한 이정자 씨는 힘든 투쟁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노동조합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이랜드 일반 노동조합 황옥미 씨는 투쟁에 나선 자신을 보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말투가 가슴을 후벼파고 아프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저자는 만약 자신이 그녀들의 상황이었어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다고 말했다.  “저도 인터뷰를 하면서 제가 과연 그 분들과 같은 상황이었어도 그렇게 투쟁할 수 있었을까 생각했어요. 자신의 생존권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부당한 것들과 싸우는 것은 대단한 용기잖아요. 저는 그런 분들이 ‘깨달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이 작업장에 이런 문제가 있으니 관두고 다른 데 가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 분들은 그렇게 떠나버리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분들이에요. 아무리 각박한 상황이어도 그것을 해결한 방법이 전혀 없지 않다는 것을 아는 거죠. 그래서 법적인 투쟁에서도 이기고, 상황을 바꿔나가는 거예요. 자신에게 닥친 불합리한 상황이 개인만의 일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거죠.”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 또, 타인들의 고통에 눈 감고 나 몰라라 하지도 않는다. 성추행 당한 동료를 위해 회사의 부당한 처사에 묵묵히 맞서면서 몇 년 간의 법정 싸움에 참여하기도 하고, 510여일간의 파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녀들이 왜, 그렇게 투쟁해야 하는지, 주류의 언론들은 귀기울이지 않았다. 저자는 언론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시위가 일어나면, ‘왜’ 시위하는지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죠. 단지, 오늘 시위가 있어서 교통이 정체되었다는 식의 보도를 할 뿐이에요. 부정적인 시각에서 노동자들의 문제를 보도하니까 노동자 운동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에도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숫자로도, 사례로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이 책은 노동운동사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목소리, 제대로 들리지 않았고 외면되었던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 추송례 씨는 유인물을 써서 배포하다가 경찰들에게 잡혀서 모진 고문을 당한다. 유인물을 쓴 당사자가 자신인데도 경찰은 ‘방직공장 여공’이 그런 글을 쓸 수 없다고 윽박지른다. 글을 쓴 당사자가 누구인지 말할 때까지 ‘얼굴이 걸레가 되도록’ 고문을 하다 글을 써보라고 펜과 종이를 준다.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을 써내려가는 추송례 씨를 보며 경찰은 놀란다. ‘여공’이 생각을 갖고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추송례 씨는 당시 여공은 사람도 아니었고, ‘너, 네 이름 석 자라도 쓸 줄 알아?’라는 무시를 겪어야 했다고 증언한다.
저자는 당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끌려간 고문당한 이들에 관해 알려진 것은 ‘말과 글로 하소연할 수 있는 지식인들’에 관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밝혀지기도, 보상이 되기도 했지만 ‘노동자’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들을 “숫자로도 사례로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숫자로도 사례로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단지 지나간 일들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숨겨놓은, 존재하되 볼 수 없는 이들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는다. “예전에 영등포역 근처에 있는 노숙인 센터에 취재를 간 적이 있어요. 평소에도 매일 지나다니던 곳이었는데, 저는 그곳에 그 센터가 있는지 취재를 간 날에야 발견했어요. 저는 보면서도 보지 못했던 것이죠. 저는 있지만 보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요즘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서 <기록되지 않는 노동>이라는 칼럼을 다른 분들과 함께 같이 쓰고 있어요. 그 글들 중 이주여성들, 고려인들이 한국에서 얼마나 열악한 노동 조건에 처했는지에 관한 글이 있어요. 그 분들은 하루 계약을 하고, 일당을 받는 식으로 일을 합니다. 직업소개소에 모여서 봉고차를 타고 일터로 나가는 식이죠. 물론 직업소개소에 소개비를 떼이고 교통비를 떼여요. 그런데 이 직업소개소 사람들과 봉고차 운전자가 이주여성들에게 상습적으로 성희롱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여성들은 그런 성희롱을 거절하면 당장 일을 할 수 없으니까 그런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거죠. 팔십 년 대 노동현장이 이천 십 삽 년 현재에도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타인의 삶은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노동 문제를 남의 것으로 여기고 외면하는 현실에 대해서 저자의 생각을 물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자신의 문제가 되어야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확실한 것은, 그런 문제들을 외면하고 살다보면 결국은 그런 문제들이 자신의 문제가 된다는 거죠. 자신의 무관심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겁니다. 외면하지 말아야 돼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여섯명의 인터뷰이에게 긍정적인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는 것, 자신을 억압하는 질서들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미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그런 길을 갔다는 것에 용기를 얻었다. “저는 생활 속에서 노동자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투사로 살아요. 모든 운동의 목적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거니까요. 무슨 운동 했다고 자랑삼아 떠들고 어디서 무슨 직을 맡고 있다면서 명함 내미는 사람들, 생활 속에서 자기 주변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 나는 믿지 않습니다”(109쪽)라는 추송례 씨의 말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마지막으로 저자에게 고대 대학원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은 나와 전혀 상관없어 보여도 결국 나 자신의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공부는 결국 삶의 문제를 찾는 과정이죠. 책을 통해서만 공부를 할 수도 있겠지만, 삶의 현장에 가까이 다가가서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는 공부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람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사회가 숨긴 사람들, 외면한 사람들의 자리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또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세상의 이런 저러한 기준들에 휩쓸리지 않고 나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셨으면 좋겠어요.”

최은영 기자 euni153@naver.com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07: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