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태. 2012. 「한국의 재벌과 발전국가」. 한울 아카데미.

한국 발전국가와 재벌의 성장동맹을 통해 본 지배계급의 형성

■ 장동욱(자유기고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은 노무현 전(前) 대통령이 의도치 않게 폭로한 국가 최고수반의 자기고백이었다. 한 때, 한국 국가는 거시경제의 조정과 개입 그리고 금융부문의 장악을 통한 투자배분 권력 등에 의해 경제와 사회를 선도하며 성장을 지휘하는 발전국가의 모범적 사례로 거론되어 왔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국 국가는 재벌에 거의 지배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강력한 규율을 부여하며 시장을 선도하는 자율적인 행위자로 묘사됐다. 1982년에 찰머스 존슨이 자신의 그 유명한 논문 『통산성과 일본의 기적』에서 ‘자본주의 발전국가(Capitalist developmental state)’의 개념을 발전시킨데 이어 앨리스 앰스던, 로버트 웨이드 등의 경제학자들이 동아시아 발전국가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업적을 잇달아 산출하자 이 같은 한국 발전국가의 모범적인(?) 이미지는 더욱 굳어졌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한국 국가의 발전국가적 성격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폭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을 때와 거의 동시에 한국 국가는 자신의 발전국가적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거나 혹은 더 이상 온전한 형태로 그 것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자 밥 제솝은 국가를 ‘형태결정된 사회적 관계’로 정의했다. 밥 제솝의 이러한 국가에 대한 정의내림의 의도는 특히나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국가의 성격과 역할을 기능적인 측면에서 필연적인 것으로 정의하거나 고정시키려고 하는 시도에 대한 비판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한국 국가는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심화된 중화학 공업 위주의 수입대체화 산업전략의 부작용과 유가파동 및 인플레이션의 심화 그리고 곧 이은 정치민주화의 진행에 따른 야당 및 민중부문의 성장 마지막으로 전지구적인 케인즈주의 사회복지국가의 위기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확장으로 인해 심대한 변화를 겪었다. 이제 한국 국가는 더 이상 사회부문 특히나 기업에 대해서 절대적인 지배력과 자율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여기서 한국 국가의 국가역량(state capability)이 새로운 관심사가 되었다. 앞서 언급한 발전국가의 모형은 대개 국가를 합리성과 효율성으로 무장한 국가관료에 의해 충원되고 내부적으로 통일된 단일행위자로 가정하는 국가자율성(state autonomy)의 측면을 강조했다. 하지만 국가역량을 강조한다는 것은 곧, 마이클 만이 지적한 것처럼 사회에 침투하면서 자신의 정책을 관철시키는 국가의 ‘하부구조적 권력(infrastructural power)’을 문제시 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는 한국의 국가가 더 이상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사회와 시장에 강요할 수 없는 변화된 상황을 반영했다.

이는 한국의 기업 특히 한국의 재벌과 국가의 관계가 더 이상 과거의 수직적인 위계질서로 환원될 수 없는 새로운 관계변화에 직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한국 국가의 역량은 피터 에반스가 이야기 한 ‘배태적 자율성(embedded autonomy)’ 즉, 국가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공식적/비공식적인 사회적 연결을 통해 국가의 정책과 행위에 대한 정치적 동의를 만들어내는 능력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이제 한국의 재벌은 국가와 대등한 협상의 파트너로 승격했다. 한국의 재벌은 국가를 상대로 전략과 타협은 물론이고 경쟁과 갈등을 감내하는 대등한 주체자가 되었다. 그리고 각종 공식적/비공식적 제도와 사회적 연결을 통해 국가와 재벌 사이의 통합적 이익을 도모하고 공통의 계급적 이해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김윤태 교수의 이 책은 해방 직후부터 외환위기 이후인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발전국과와 재벌의 복잡한 관계 및 정치적 동학을 명확한 사회과학의 이론적 개념을 근거로 역사적이고 경험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한국의 국가가 ‘시장지향적인 탈발전국가’로 변화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민주적이고 참여적이며 생태지향적인 ‘민주적 발전국가’를 지향할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