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기획] 한국사회의 여성혐오

여성혐오 관련 용어의 변천



우리 주변에서 여성 혐오적 용어들을 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개똥녀, 루저녀, 된장녀, 지하철반말녀, 패륜녀, 무개념녀 등 인터넷과 미디어 상에서 특정 여성이나 여성 집단을 비하하는 표현들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남성 비하적 지시 표현과 달리 여성 비하적 지시 표현은 해당 여성의 개인 정보까지 노출될 정도로 비난 강도가 지속적으로 강하게 유지되며, 한 개인의 잘못이 전체 여성들에게로 투사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에는 김치녀와 같이 한국 여성 전반에 대한 혐오를 지칭하는 표현들이 등장해 그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본지에서는 최근 몇 년간 유행하고 있는 여성 혐오적 지시 표현들의 유래와 변천을 살펴보았다.


'개똥녀', 마녀 사냥의 시작

2005년 6월 지하철 2호선에 반려견과 함께 탑승한 여성이 반려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하차한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한 네티즌이 블로그에 〈애견인의 무개념 실태〉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자 수많은 블로그와 포털 사이트로 전송되었다. 당사자 여성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 없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그녀의 신상정보도 낱낱이 공개되어 논란이 격화되었다. 해외언론 《워싱턴 포스트》지에 관련 논란이 자세히 보도되기도 했다. 이후 '○○녀'라는 마녀사냥식 공격이 이어지는 계기가 된 징후적 사건이었다.


'된장녀', 소비하는 여성에 대한 단죄

2005년 주간지 《뉴스메이커》에서 스타벅스 커피에 빠진 20~30대 여성들에 대한 특집 기사가 실린 후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개똥녀 논란에 이어 2006년에는 된장녀 담론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된장녀는 비싼 호화 상품을 즐기는 여성들 중 스스로의 능력으로 소비 활동을 하지 않고 애인이나 부모 등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여성들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논란 이후에도 된장녀의 의미는 지속적으로 확대 재상산되어 남성들이 생각하는 부정적인 여성상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김여사', 여성의 능력에 대한 비하

2006년 MBC 방송의 개그 프로그램 〈개그야〉의 '사모님' 코너에서 김기사와 사모님이 등장하며 퍼지기 시작했다. 김여사는 기본적으로 여성 운전자의 운전 능력 부족 또는 무개념 운전을 탓하는 자리에서 잘 쓰이지만 그 의미가 점차 확대되었다. 운전 능력 부족의 여성 운전자라는 의미와 함께 예의 없는 여성 운전자라는 의미를 지니며, 전체 여성 운전자를 가리키거나 일상생활에서 행동이나 생각에 문제가 있는 여성 전체로 적용되기도 했다.


'루저녀', 남성 공격의 표상

2009년 11월 KBS 2TV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한 대학생이 '키 180cm 이하의 남자는 루저, 즉 패배자'라고 말하면서 루저녀 논란이 점화되었다. 키가 작은 30대 남성이 해당 방송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루저녀 논란이 사회적 문제로 커지며 마녀 사냥식 사생활 침해가 계속되었다. 해당 프로그램이 질타를 받고 제작진이 교체되었으나 해당 학생은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오크녀', 외모 지상주의 사회의 이면

오크녀는 여성의 외모에 초점을 맞추어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시각을 왜곡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외모의 여성들을 놀림감으로 삼는 비하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오크녀'는 '오크'와 '녀'가 결합된 말로서 '오크'는 소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사악한 세력의 종족 이름이다. 오크가 키 작고 뿔 달린 괴물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오크녀는 괴물처럼 못생긴 여성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오크녀는 여성들의 외모에 대한 비하에서 나아가 가치관이나 태도에까지 연결되는 경향이 생겼다.


김치녀, 한국 여성 전반에 대한 혐오

된장녀로 대표되는 특정한 여성 집단에 대한 비난과 혐오가 한국 여성 전체에 대한 혐오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김치녀(년)가 등장했다. 여성의 성기와 벼슬아치의 합성어인 보슬아치나 보슬년 등의 용어와 함께 한국 여성 전반에 대한 혐오가 극단화되는 과정에서 확산되었다.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를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이 용어는 '한국 여성들은 모두 못생겼으며', '공중도덕관념과 책임감이 없는 주제에', '돈이 많은 남자와 명품만 밝히는 속물'이라는 식의 논의를 재생산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데이트 비용을 모두 남자에게 지불'하게 하면서도 '남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 한국 여성과 달리 '더치페이를 잘하고 온순하다'는 판타지가 투여된 일본 여성 '스시녀'가 예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국 여성에 대한 위험한 수준의 혐오를 담은 용어들이 무비판적으로 확산되고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선민서 기자 minseo@korea.ac.kr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0 06:4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