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노동‘은 무엇입니까

지난해까지만 해도 메이데이의 깃발 아래 모이기에 대학원생들은 다소 애매한 존재들이었다. 대학원생을 ‘노동자’로 보는 입장, 대학원생들이 하는 일들을 ‘노동’으로 보는 공통된 시각과 명분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원생들이 겪는 부당한 처우나 불안정한 처지 등과 관련된 사례들이 쌓여왔고 그러한 문제에 비판을 제기하는 시각은 지속적으로 존재해왔지만, 그것을 ‘노동’이라는 의제로 묶어 생각하고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드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학원생들이 대학과 학계 내에서 학문재생산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여러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원생들은 노동을 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다. 그동안 대학원생이 하는 여러 일들을 대학구성원이나 학계의 일원으로서 한번쯤 거쳐 지나가야하고 부당하지만 당연히 감당해야하는 것으로 묵인해왔기 때문에, 대학원생들의 잉여노동과 관련된 문제들은 몸체를 키우며 점점 더 괴물과 같은 형상을 띠게 됐다. 서울대 대학원생의 팔만대장경 스캔 사건이나 인분교수 사건 등은 ‘갑‘의 위치에 있는 유별난 개인으로부터 비롯된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대학원생의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구조의 문제에서부터 예견돼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대학원생의 정체성을 노동문제에 두며 형성된 최근의 흐름은 중요하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의 발족은 대학원사회를 조직화하고 노동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문제에 개입해나가는 단위가 만들어졌다는 데 자못 큰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흐름은 ‘대학원생의 노동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던지도록 유도하고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이라는 새로운 개념화의 필요성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중차대한 인식론적 전환을 견인하고 있다. 대학원생이 스스로의 노동에 대해서 묻기 시작할 때, ‘학문의 상아탑’으로 포장된 대학과 학계의 온갖 민낯은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대학원은 자본을 증식하기 위해 혈안이 된 대학이나 그에 기생해있는 학계의 제도적 난점들이 총체적으로 얽혀 있는 곳이며, 대학원생은 그렇게 각종 제도가 얽혀 있는 대학과 학계라는 늪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교노동은 대학에서 ‘장학금 수혜율’을 높이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방식으로 이용되어왔다. 이와 더불어 교수나 선배 등의 평판이 학생의 장래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절대적인 학계의 분위기 속에서 대학원생 조교에게 부가되는 잉여노동을 그 스스로가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학계의 권위주의적 문화는 대학원생의 노동환경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같은 맥락에서 그간 비교적 덜 관심을 받아왔던 ‘학회 간사 노동’은 학계에 내재해있는 권위주의적 구조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한편으로, 양적 평가 등에 의존해있는 학회지 평가 시스템 등 학회 제도에서의 발원적 문제를 떠안고 있다. 나아가 ‘연구노동’이라는 더 포괄적인 노동 개념은, 대학과 학계의 문제를 넘어서 ‘지식생산물’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을 측정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결국 대학원생의 노동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은, 대학과 학계의 잘못된 구조, 나아가 대학(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에 균열을 내는 작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변화는 그렇게 공고하게 다져진 제도적·인식론적인 구조에 균열을 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