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민’과 ‘문빠’, 상상된 대중의 두 면모에 관한 노트

: 블라디미르 레닌, 최호정 옮김, 『무엇을 할 것인가?』, 박종철출판사, 2014.

허 민 (문화연구자)

청와대 본관에는 촛불집회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걸려있다고 한다. 임옥상 작가의 ‘광장에, 서’라는 작품이다. 30호 캔버스(90.9㎝X72.7㎝) 108개를 이어, 길이가 본래 16m에 달한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킨 촛불의 염원만큼 그 규모도 남다른 것이다. 촛불집회는 흔히 촛불혁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권 퇴진을 목적으로 한 시위였다는 의미를 부각한 것이다. 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혁명이라 부르기는 쉽지 않다. 시민들은 국체나 정체를 변혁할 목적으로 광장에 모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촛불집회는 준법정신이 빛난 질서 있는 운동이었다. 정권 퇴진과 새 정부의 출범도 철저히 제도적인 절차에 입각했다. 사실 촛불집회가 혁명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논점이 아니다. 그보다는 촛불집회를 혁명에 비견하는 대중의 실력행사로 기억하려는 담론적인 의지 자체를 살필 필요가 있다. 이는 대중을, 혹은 시민사회의 역량을 바라보는 지식인의 관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문빠’라는 정치 프레임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세력(팬덤)을 지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문빠’는 특정 세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일종의 현상으로 봐야한다. 성격이 복잡하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정치의 엔터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 진보 언론-지식인에 대한 불신과 반지성주의, 386세대의 피해(자)의식, 정치적 책임의 대중적 전유 등이 얽혀있다. 여기서 이 문제를 모두 다룰 용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촛불시민’과 ‘문빠’의 관계를 사유할 필요만 제기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촛불)시민’에 대한 기대와 ‘문빠’에 대한 우려가 교차하는 지점으로부터 대중에 대한 지식인의 오랜 상상과 그 성격을 파악할 이론적 방법을 모색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레닌이 플레하노프의 경제주의와 단절하고 혁명가로서 독자적인 사상을 펼치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저작이다. 이 글이 발표되던 시기의 러시아 사회주의는 경제투쟁에 매몰되어 전국적인 정치투쟁을 준비할 조직의 결성을 경시하는 경향이 지배하고 있었다. 레닌은 경제주의자들과 자기진영의 차이를 단순히 방법에 대한 견해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좀 더 ‘심오한 근원적인 문제’, 그러니까 자생적 요소와 의식적‧계획적 요소의 상대적 중요성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에서 기인한 것으로 봤다. 레닌은 당대 운동이 갖는 강점을 대중의 각성에서, 약점을 지도자인 혁명가들의 의식성 부족에서 찾았다. 반면 경제주의자들은 현실을 다르게 파악했다. 그들은 노동자 운동의 ‘자생성’을 고평하며, 이런 운동의 성취는 “노동자들이 지도자들의 손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탈취하여 마침내 스스로 그것을 움켜쥐게 되는 까닭”(54쪽)에 확보된 것으로 보고 있었다.

결국 경제주의자들은 레닌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당의 임무는 ‘의식적 활동을 통해 객관적 발전을 단지 촉진할 뿐, 그 발전을 폐기하거나 주관적인 계획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며, 전술에 대한 교조주의적 관점 때문에, ‘발전의 객관적 또는 자생적 요소들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73~74쪽) 이에 레닌은 만약 발전의 자생적 요소가 인간이 의식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요소를 그릇되게 평가하는 것은 의식적 요소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며, 반대로 만일 그 요소가 의식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들에 관해 말할 수조차 없다고 반문했다. 레닌은 노동자들의 저절로 일어난 파업은 노동조합주의적인 것일 뿐, 아직 사회민주주의적인 것이 될 수 없는 투쟁이었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이 조합으로 단결하여 고용주들과 싸우고, 노동자에게 필요한 법률을 정부가 제정하도록 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체제 변혁을 위한 의식에는 가닿지 못한다는 진단이었다. 그리하여 사회민주주의 의식은 외부에서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즉 ‘계급적 정치의식은 고용주에 대한 노동자의 관계라는 영역 밖에서 노동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115쪽)

대중의 자생적 각성과 지식인의 의식적 개입이라는 구도는 다만 대립적인 것은 아니었다. 간혹 레닌의 엘리트주의적인 면모가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는 정치를 교육과 동일시 한 적이 결코 없었다. 오히려 레닌은 전위와 대중은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에겐 지도자와 지도받는 대중이 존재한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분리가 필요하지 않는 조건을 창출할 가능성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촛불시민에 대한 신뢰’와 ‘문빠에 대한 우려’의 (비)간극을 정확히 사유할 필요가 있다. 지식인에 의해 묘사되는 대중의 상반된 표상 속에서 외려 소외되는 대중성의 성격을 엄밀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은 이미 자신을 향한 호명 속에서 지식인의 면모를 역으로 산출하고 있다. 대중과 시민사회의 성격이 논해지는 자리에서 지식인의 위기가 다시 전개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