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 노마드적 삶의 아이러니

 어느 시간강사

흔히들 시간강사를 ‘보따리 장사’라고 부른다. 정해진 자리가 없으니 보따리에 온갖 짐들을 싸서 여기저기를 다니는 형편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지나간 유행어로 노마드적 삶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유목민들이 어디에서나 텐트를 치고 삶을 이어가듯, 시간강사 역시 어느 곳에서도 보따리를 풀고 강의를 하는 삶을 꾸려 나간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가 삶을 꾸려나가는 방식이 바로 시간강사의 삶, 노마드적 삶의 여로이다.

정착된 삶은 고여 있는 것, 고여 있는 것은 언젠가 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간강사는 매 학기 상황이 바뀌는 노마드적 삶이라서 그럴 가능성이 적다.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삶의 조건은 바뀌고 변한 조건에 적응을 하기 위해서 시간강사는 온 신경과 신체를 집중해야 한다. 매 학기 같은 곳에서 같은 수업을 한다는 보장도 없기도 하고, 같은 수업을 맡게 되더라도 수업 평가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허투루 수업을 준비할 수 없다. 이와 같은 깨어 있는 삶으로 인한 노마드적 삶에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매번 보따리를 들고 여기저기를 짧게 있다가 사라지다보니 학교 행정과 관련된 다양한 잡무는 시간강사들과는 거리가 멀다. 요새는 대학은 교육부든 연구재단이든 어디서든 재원을 끌어들이기 위해 엄청난 양의 잡무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 일은 오롯이 교원과 교직원의 몫이 된다. 그 양이 적지 않고 돈과 관련된 문제이니 예민할 수밖에 없다. 시간강사에게도 주어지는 것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시간강사는 학교의 구성원이 아니므로 요구되는 양이 많은 것은 아니다. 조금 귀찮다고 느낄 정도랄까.

학사-석사-박사 혹은 석사-박사를 한 학교에서 보내는 학문 풍토를 생각해보면 시간강사의 노마드적 행보는 삶의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박사가 되기까지 대략 15년 정도의 세월에서 한 연구자의 삶은 고작 한두 군데에 매이게 된다. 학회 등의 일 때문에 잠시 다른 학교에 갈 기회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것은 정말 잠깐 머무는 정도여서 새로움을 경험할 만한 시간 정도는 아니다. 자신이 있는 곳에는 익숙하지만, 그 이외의 곳에는 미숙하고 때로는 관심조차 없는 것은 대개의 연구자들의 삶이다.

그러나 비록 한 학기지만 다른 학교에서의 강의는 삶의 새로운 자극을 선사한다. 마치 미팅을 나가는 새내기처럼 설렌다고나 할까. 특히 처음 강의를 나가는 곳이라면 학교에서는 학사일정쯤의 정보 이외에는 알려주는 것이 거의 없으므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때 정체되어 있던 정신과 신체는 매 학기의 시작과 함께 갱신되면서 새로운 긴장감을 갖게 된다.

만약 자신이 사는 지방과 다른 곳에서 강의를 하게 된다면 매 주 여행을 다니게 될지도 모른다. KTX를 타든 고속버스를 타든 자신의 차를 끌고 다니든 새로운 도시로의 이동은 늘 긴장감을 유발한다. 거기에는 내가 사는 지역에는 없는 음식과 풍경이 나를 환대한다. 여행을 떠나듯 지역의 유명한 맛집을 검색하고 찾아가보는 건 틀림없는 여행의 경로이다. 따로 차비를 주지는 않아도 먼 곳에서 강의를 나가니 그곳에서도 시간강사에게 적지 않은 강의를 주기 마련이니, 경제적인 도움도 꽤 될지 모른다. 물론 대개는 당일에 움직여야 하고 많은 수업을 하려면 아침부터 수업을 해야 하니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부담스러움은 있다. 하지만 아침을 분주하게 보내는 것은 여행자의 특권 가운데 하나가 아니던가.

이처럼 시간강사의 노마드적 삶의 경로는 제법 괜찮은 구석이 있다. 한 곳에 얽매이지 않으며, 6개월마다 갱신되는 새로운 삶의 긴장을 어디에서 경험할 수 있겠는가? 비록 월급이 안 나오는 방학 기간이 보릿고개처럼 여겨지지만, 대신 그 기간 동안 자유가 허락된다. 강의평가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시간강사를 더 나은 교수자로 만들어줄 것이다.

이러한 노마드적 삶을 더욱 긍정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들이 더 필요하기는 하겠다. 직장의료보험에 포함되어서 결혼을 한 시간강사들이 혼인신고를 주저하지 않아야겠다. 시급의 계산은 수업 준비와 출제, 채점, 상담 등의 시간까지도 고려됨이 마땅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마드적 삶이 최대한 짧은 경험으로 남아야겠다. 그래야만 시간강사의 시간이 한때의 무용담쯤으로 남아 긍정할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