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아니었다. 평택 미군기지, 제주 강정마을, 집 근처 역 앞까지 웬만한 시위 바닥은 다 다녀본 사람으로서, 이번 촛불 시위가 너무나도 새로웠다거나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많은 이들의 그 커다라면서도 비폭력적인 분노에 경이로움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비리 척결과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2016년 10월 29일 1차 집회부터 4월 29일 23차 집회까지 누적 약 1700만 명의 사람들이 오고 가는 동안, 시위로 인한 구속자 등 처벌 대상은 0명이었다. 정말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2017년 3월 10일, 결국 대통령 박근혜 파면 인용 결정까지 끌어냈다.

놀고먹던 새내기 시절,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추운 날 광장으로 나간 그때의 스무 살과 수능이 끝난 직후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있었던 그때의 열아홉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달라진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오늘은 촛불시위 이후 1년을 대학생의 눈으로 천천히 살펴보려고 한다.





# 촛불이 변화시킨 ‘우리’



변화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었다. 당시의 촛불은 우리들의 일상을 변화시켰고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대학생들에게 ‘도대체 정치가 뭔데?’라는 물음을 던졌다. 많은 대학생이 광장에 나와 함께 촛불을 들었고 변화를 이끌어 나갔다. 이화여대와 서강대 등 몇몇 대학에서 진행되었던 시국 선언의 바람은 전국 대학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고려대학교의 ‘백남기는 죽였고 최순실은 살렸다.’, 부산교대의 ‘당신은 자격이 없습니다’ 등의 대자보와 SNS상에서의 해시태그 ‘#나와라_최순실’, '#물러나라'가 이에 해당한다. 대학생들은 사회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직접 표현하기 시작했다. 촛불시위 이전에는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던 오수석 씨(보건정책관리학부 17)는 자신이 정치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이유가 냉소주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저런 부정부패 사건들이 매일매일 보도되는 현실에 낙담하게 되었고 우리나라의 정치는 바른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없다고 느꼈어요” 아마 현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많은 학생이 공통으로 느낀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번 촛불시위를 통해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꼈다고 말한다. “대학생들이 기성세대에게 있지 않은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촛불시위에서도 누구보다 앞서서 변화를 끌어낼 수 있었고 앞으로도 국가에 정치적 위기가 올 때면 그 용기로 누구보다도 먼저 변화를 일으키려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어쩌면 자신도 그 대열에 동참해보고 싶기도 하다는 그의 말처럼 촛불시위는 우리 주변의 많은 20대와 대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을 두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또한, 힘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대학생들이 ‘사회에 무언가 목소리를 냈을 때 긍정적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라는 가능성을 보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대학생, 그 변화의 시작



촛불을 통해 많은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고 대학생들이 만들어낸 변화도 그중 하나였다. 촛불의 중심이었던 이화여대에서 ‘총장 직선제’라는, 이대 역사 최초의 변화가 있었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이대는 정유라의 특혜 입학과 학점 조작 등으로 대학 사회에서 논란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이대 학생들은 “최경희 총장 뒤에 최순실이 있었다!”며 시위를 진행했고 정유라 사건은 당시 우리 사회의 특권 질서에 대해 커다란 물음을 던졌다. 그렇게 대학에서 시작된 시위는 광화문의 촛불로 번져나갔다. 이 과정에서 이뤄낸 변화가 ‘총장 직선제’였다. 전체 투표권자 중 교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82.6%에 달하고 학생들의 비중은 5%밖에 되지 않았지만 ‘직선제’라는 결과를 끌어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었다. 이전에는 간선제로 총장을 선출했기 때문에 학생들의 의견이 학교의 의사결정에 크게 반영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존재했다. 이번 국정 농단의 시작도 총장의 이해관계가 학생들을 우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대는 올해부터 직선제를 통해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했고, 실제로 새로 선임된 김혜숙 총장은 학생들의 시위를 지원하고 격려했던 교수협의회 소속의 교수였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것을 보여줬던 선거였다. 이화여대에서 학보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유진(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16) 씨는 학생 투표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아쉽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앞으로 이화여대가 많은 부분에서 발전해 나갈 것이며 이것이 그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는 희망적인 말도 덧붙였다.




# 아무 깃발 대잔치, 대학생이 처음 꽂은 깃발



촛불시위는 무겁고 비장하지만은 않았다. 매주 새로운 ‘탄핵송’을 배우며 합창하고, 밴드 노브레인의 공연도 보고, 또 귀여운 LED 촛불 머리띠를 쓰고 소리를 지를 수도 있었다(광장에서 머리카락 타는 냄새를 줄여준 LED 촛불의 성행은 가히 이번 촛불시위의 큰 성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에 더해, 일상 속에서 사소한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단체를 만들고 깃발을 들었다. ‘민주묘총’, ‘전견련’, ‘범야옹연대’, ‘화분안죽이기실천시민연합’, ‘무도본방사수위원회’ 등 재치 있는 패러디와 말장난으로 어떤 단체든 뚝딱뚝딱 금방 만들어졌다. 여기, “사람도 고양이도 살기 힘든 세상이다!”라고 외치며 아무 깃발 대잔치를 시작한 민주묘총의 대표 집사, 대학생 이동주 씨가 있다. 그는 시험 기간에 할 일이 없어서(?)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패러디한 민주묘총 로고를 만들었다고 했다.



Q. 민주묘총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A. 평소에 트위터 등의 SNS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작년 이맘때쯤 ‘장수풍뎅이연구회’라는 깃발이 광장에 휘날렸는데 기억하시나요? 그걸 보고 한 트위터리안이 민주묘총, 전견련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을 했었어요. 그래서 제가 일러스트레이터로 민주묘총 로고를 만들어 트위터에 올렸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 언론사에서 연락이 오고 여러 매체에 노출이 된 후, “우리도 깃발을 만들어서 나가자!”라고 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집회에 나갔죠.

Q. 원래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A.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저러면 안 되지!’ 선에서 끝났었어요. 그런데 작년에 벌어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은 너무 심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썰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유시민이 “내가 저런 사람들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었구나.”라고 말했는데, 되게 와닿는 거예요. 그 이후로 뭔가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집회에 나가면서 행동으로 옮겼어요. 정치에 관한 것들뿐만 아니라, 대학생이 되고 나서 일상 속에서도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Q. 인상 깊었던 일이 있나요?

A. 공통점이라곤 깃발을 들고 나왔다는 사실밖에 없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게 정말 인상 깊었어요.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도 하고, 함께 구호를 외치며 싸운 경험이 정말 색달랐죠. 또 집회에서 아무 깃발들과 함께 행진하다가 무심코 뒤를 돌아봤는데 대학생, 아이돌 응원용 봉을 들고 있는 사람, 부모님 연배의 시민 등 많은 사람이 깃발 뒤를 따르고 있었던 적도 있었어요. 젊은 감각으로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아무 깃발들을 만들어 오신 분 중 대다수가 대학생이었어요. 그 깃발 아래 많은 시민분께서 호응해주시고, 같이 “이게 나라냐”를 외치며 싸웠던 거죠.

Q. 촛불시위 이후 우리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A. 플라톤이 한 말 중에 “정치에 무관심하면 결국 가장 저급한 인간의 지배를 받게 된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걸 지난 9년 동안 뼈저리게 느낀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게 됐다는 게 가장 와닿는 변화가 아닐까 싶어요. 요즘은 정치인들이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하려고 하면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잖아요. 이것이 많은 시민에게 하나의 구심점을 만들어준 것 같아요.

Q. 동주 씨가 바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요?

A. 불의가 생겼을 때 침묵하지 않는 세상,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그 주 주말 집회를 마지막으로 민주묘총은 활동을 멈췄지만, 불의가 생긴다면 다시 활동하지 않을까 싶어요.




# 바꾸다, 받다, 바뀌다



1년이라는 시간은 많은 것들이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우선 국민들이 대통령을 바꿨고, 노동자들이 이전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받고 일할 수 있게 됐으며(2018년 최저임금안 7530원, 2017년에는 6470원), 이전에 차가운 물 속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으며 외면당하고 영원한 기다림 속으로 간 아이들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온 국토가 긴장하는 수능 날짜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전날 밤에 미뤄졌다. 물론 예정된 날짜에 진행되지 않아 시간적, 물적 피해를 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항이라는 한 지역의 주민들은 적어도 나라가 그들을 생각하고 걱정한다는 느낌을 받아, 수능연기라는 결정이 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진 않았을까. 우리는 이전처럼 생산 지향적이고 효율성만을 추구하기보다는 개인의 풍요로운 삶을 존중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안전과 생명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새로운 나라를 볼 수 있게 됐다.

우리의 외침은 현실이 되었다. 우리는 비선 실세에 분노했고 대통령에게 분노했으며 국민들을 기만한 특권층에게 분노하였다. 대학생들은 이러한 사회 속에서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끌어냈다. 앞으로의 대학생은 이 사회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어야 하며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시위의 시발점이었던 이화여대에서 학보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유진 씨는 “기존의 상식과 사회 질서에 대항하는 힘을 갖는 것으로 생각해요. 이화의 시위는 대표 없이 어떤 집단과도 연대하지 않고 모두가 참여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어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학우 한 명 한 명이 모여 힘을 모았던 것처럼, 꼭 어떤 단체에 들지 않더라도 필요할 때 자신이 선 자리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때의 열아홉과 스물은 이제 대학교 1, 2학년이 되었다. 지금의 20대는 사회에 처음 나오자마자 사회적 변환기를 맞았고 이를 겪어나가는 중이다. 작년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관심을 던지고 있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거창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의 역할이 아닐까.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0 14:1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