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단편선

(글을 읽기에 앞서, 다음의 곡을 듣고 왔으면 한다. 김목인의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이랑의 “신의 놀이”, 윤영배의 “선언”, 이렇게 세 곡. 이 글은 이 노래들로부터 비롯되었다.)

사람들이 음악가에게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살아오며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음악에 대한 것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불행히도 음악가로서 어떻게 생계를 해결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물론 이해한다. 매스미디어에 자주 출현하는 것도 아니고, 대학축제 같은 행사에 종종 오르는 것도 아니며, 음원 챠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음악가인 탓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음악가’ 내지는 ‘뮤지션’이라 하면, 유명한 어떤 사람들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소위 ‘인디 뮤지션’이라 통칭되곤 하는, 주로 홍대앞의 라이브 클럽이나 작은 대안공간들을 토대로 자신의 활동을 이어나가는 보다 소규모인 음악가들이 수두룩 빽빽하다. 더 가난하거나 불행하진 않을까? 잘 모르겠다. ‘메이저’로 올라가본 적이 없으니, 그들의 삶이 어떤지 알 수 없는 까닭에서다.

나만 생계에 관련된 질문을 받는 건 아닌 듯하다. 집시 음악의 영향을 받은 팝 음악을 주로 연주하던 밴드 캐비넷 싱얼롱스 출신의, 포크 뮤지션 김목인은 2011년 발매한 자신의 첫 솔로 앨범 [음악가 자신의 노래]를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매년 일정 비율로 태어나는지 음악의 아이들은 계속 나타난다.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비밀스런 자기만의 윤리를 지키고 살아간다.” 경쾌한 피아노와 기타 아르페지오가 흐르는 가운데, 차분하게 얹어지는 내레이션 중 개인적으로 감정이 이입된 구절은 이 다음이었다.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누구나 좋아하지만, 누구나 집안에 들여놓고 싶어 하진 않는다.”

그저 위트 있는 구절로만 들릴 수도 있겠으나, 내겐 그보다 날카롭게 아이러니를 꼬집은 내레이션으로 다가왔다. 가정과의 대립은 나를 포함해, 수많은 음악가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정과의 대립은 단지 음악가만이 아니라, 많은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겪고 있는 문제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음악가의 그것이 다른 이들의 그것보다 대개 더 심각한 갈등으로 번지는 까닭은 ‘음악가’를 ‘직업’으로 삼는다면, 게다가 지금의 대중적인 트렌드와는 크게 상관없는 자신의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일을 자신의 일로 삼는다면 자연스레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탓에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용했듯 “음악의 아이들은 계속 나타”나며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비밀스런 자기만의 윤리를 지키”며 살아간다. 어째서일까. 나는 김목인이 ‘윤리’라는 단어를 허투루 썼을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윤리는 인간 삶을 다루는 학문의 오래된 주제이며, 오래 연구된 만큼 이에 대한 수많은 견해가 존재하기도 한다. 한국어로 된 여러 사전에서, 윤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고 지켜야할 도리’라는 식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리고 주로 ‘규범’과 짝지어 이야기되기도 한다. 그래서 윤리는 자주 보수적인 입장에서 해석되기도 한다. 윤리가 보수적으로 해석되는 예로서,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는 공교육 또는 현역병 시절 지겹도록 행했던 ‘국민의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때 국민의례에 포함되도록 지시한 ‘국기에 대한 맹세’는 다음과 같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주지하듯, 이 문구를 포함해, 공적인 행사나 경기 전에 ‘반드시’ 치러져야하는 국민의례는 현대의 사회상황에 비해 지나치게 국가주의적, 전체주의적인 까닭에 사회적인 논란이 되는 예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김목인은 “윤리를 지키며 살아간다”는 구절 앞에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이라 쓴다. 또한 ‘윤리’를 “비밀스런 자기만의”라는 구절로 수식한다. 같은 ‘윤리’라는 단어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한국의 전후세대의 윤리관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윤리란 무엇일까. 눈과 귀를 다른 곳으로 옮겨 힌트를 발견하고자 한다. 역시 포크 뮤지션인 이랑은 2016년 발표한 곡 “신의 놀이”의 후주에서, 반복해 다음과 같이 읊조린다.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곧바로 이렇게 노래를 마무리 한다. “나는 좋은 이야기를 통해 신의 놀이를 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신’ 역시 음악에서 오랫동안 다뤄진 주제다. 이 역시 시대와 이에 대해 해석하는 이들의 관점에 따라 상이하게 해석되어왔다. 음악에 관심 있는 이라면, 오래 전 음악과 종교 또는 주술이 통합된 형태로 출현해, 이후 음악은 음악대로, 종교와 주술은 또 그 나름의 길로 분화되어온 역사가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근대 이전의 서구에서는 음악이 신과 만나는 하나의 도구이자, 신성의 실현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전자의 경우에서 신은 자연에 가까울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서 신은 절대자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이랑의 신은 이 둘 모두와 다르다. 기본적으론, 놀이하는 신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놀이는 물론, ‘창조’다.) 한편으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좋은 이야기가 나오길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의 바람에 ‘응답’하고자 한다. 그래서 나는 쓰고자 한다, 좋은 이야기를.

이랑의 노래에선 ‘응답’에 해당하는 구절이 생략되어있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를 나오길 기다리는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를 씀으로서 신의 놀이를 하려는 건지도 모르는 자신 사이의 비약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사이에는 비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좋은 이야기를 나오길 기다리는 사람들과 자기 자신은 원칙적으론, 서로 관련 없는 존재인 까닭에서다. 거칠게 말해, 사람들과 이랑은 서로가 서로에게 타자다. 그래서 이랑에게는 강제로 무언가가 의무지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바람에 부응할지 그렇지 않을지는 전적으로 이랑의 자유다. 그리고 자신의 자유를, 그들의 바람에 응답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자유의 실천이다. 자유의 실천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단지 타자였던 관계에서 새로운 관계로 전환된다. 비약을 관계 맺기의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자유를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 혹은 용기다. 김목인의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 비밀스런 자기만의 윤리’와 이랑의 “신의 놀이”는 이 지점에서 서로 만난다.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음악가가 되는 일은 쉬운 일만은 아니다. 예술가로 분류됨에도, 근본적으론 기술자의 성격 또한 있다. 그러니까 음악가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소양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구현할 수 있을 만큼의 기술적인 숙련도다. 그러한 숙련도를 만들기 위해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때로는 적지 않은 돈도 필요하다. 그런데 유의할 것은, 우리가 이러한 비용을 들여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돈을 벌기 위함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돈을 버는 일은 필요하며, 이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선 반드시 수행되어야할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그 근본에 있는 것은 자유의 실천이라 말하고 싶다. 생계가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 직업이 직업으로서 구성되는 근본 원리가 그 곳에 있지 않은 까닭에서다. 근본주의라 해도 별 수 없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변해도, 때로는 변하지 않는 근본이 있는 까닭에서다. 그런데 나는 이 근본이 음악에만 있진 않는다 믿는 사람이다.

(장면 하나. 2013년 낸 앨범 [위험한 세계]로 제11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대상 격인 ‘올해의 음반’을 포함, 최우수 모던록 음반과 최우수 모던록 노래 부문까지 세 부문을 수상한 포크뮤지션 윤영배은 제주도의 아주 인적 드문 시골마을에서 자신의 아내와 단 둘이 산다. 몇 해 전 만난 그는 나와 나눈 사적인 대화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음악 만드는 거, 그거 그냥 산에서 나무해서 불 떼는 거나 똑같은 거지. 아무 차이가 없지. 나는 음악 만드는 거랑 나무하는 거랑 다 똑같다고 생각해.” 장면 둘. 이랑은 지난 2017년 2월 열린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신의 놀이”로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을 수상하며 받은 트로피를 즉석으로 경매해 50만 원에 판매한 퍼포먼스로 이슈가 되었다. 당시 이랑은 무대에 올라 ‘친구가 무슨 일을 할 때 돈, 명예, 재미 중 두 가지 이상이 충족되지 않으면 하지 말라고 했는데 상을 받은 건 명예롭지만 돈과 재미는 없어 지금부터 이 트로피를 경매에 부치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며 경매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질문. 이들은 과연 음악의 가치를 낮추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