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올림, 삼성 반도체 노동자 문제를 둘러싼 논란들

지난 2016년 1월 12일, 삼성전자와 가족대책위원회 그리고 반올림이 ‘재해예방대책’에 대한 조정합의서에 서명했지만 여전히 삼성 직업병 사태는 매듭지어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번 호에서는 이를 둘러싼 논란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클린룸’의 진실, 사람 아닌 기계를 위한 위생과 안전

지금까지 피해 제보 370여건에 79명의 목숨을 앗아간 반도체 작업현장은 도대체 어떤 환경이었을까? 반도체 작업장을 구성하는 ‘클린룸’은 흔히 ‘clean'이 주는 어감 때문에 안전하고 쾌적할 것이라고 짐작하게 한다. 클린룸은 물론 깨끗하다. 그러나 이는 절반의 진실이다. 청결한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하얀 방진복과 마스크는 노동자가 아닌 반도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특성상 사람의 기침과 각질 등의 불순물에 취약하기 때문에 보호가 필요하다. 반면에 사람의 경우에, 방진복과 마스크는 방사선과 각종 화학물질이 몸에 스며드는 것은 막지 못했다.

안전보건공단이 2012년에 밝힌 자료에 따르면 반도체 공장에서 노출 가능한 화학물질은 131종이고 그중 21종이 발암물질, 28종이 생식독성 물질이다. 반올림이 반도체 노동자 문제를 공론화할 때까지 오랫동안 이러한 유독물질은 노동자에게 경고 없이 사용되었고 그의 안전은 생산력의 향상을 위해 무시되기도 했다. 김옥이 씨(1992년 온양공장 입사, 2005년 백혈병 진단)는 도금 공정에서 국가가 공인한 발암물질, TCE를 사용했으나 한 번도 위험하다는 말을 듣거나 보호장구를 착용하라는 지침을 받지 못했다. 외려 작업 속도가 느려질까봐 장갑을 빼고 일을 하는 것이 권장되었다. 1996년 엔지니어로 입사한 한수영 씨(1996년 기흥공장 입사, 2002년 베게너육아종증 진단)는 클린룸에서 여사원들이 거리낌 없이 플루오린화 수소HF를 사용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HF는 노출 시, 기도와 폐를 손상시키며 반복 노출 시 기억상실과 불임 등을 유발한다고 알려진 유독물질이다. 그러나 HF가 담긴 용기에는 뚜껑조차 없었고 이를 지적하는 사람도 없었다. 고 황유미·이숙영 씨 모두 이 작업장에서 세척작업을 했던 바 있다.

클린룸의 ‘클린’ 논란이 불거지자 삼성측은 2015년 1월 조정위원회를 통해 조정위원들에게 기흥공장 현장방문을 제안했다. 고 황유미·이숙영 씨가 근무했던 3라인을 비롯한 1-5라인은 이미 폐쇄되거나 바뀌었다. 삼성이 보여준 자동화된 S1라인은 언론 보도를 대비해서 철저히 통제된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BAY에서는 상시적으로 이루어져야할 PM(예방정비) 작업이 없었는데, 삼성은 오늘은 ‘운’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태원 전 삼성전자 과장에 의하면, PM을 할 때 엔지니어는 인터락을 해제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인화수소(phoshphine·독성 가스)가 나온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기흥공장 자문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2009년 2~7월 가스 누출 건의 54%(25건)가 표준작업 절차를 지킨 PM 중에 발생하기도 했다.

삼성 曰,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

여러 가지 반증들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직업병 피해자들의 질병이 직업병이 아닌 ‘개인의 질병’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러한 입장은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반도체 노동자가 벌써 16명(확정 13명, 1심 승소 3명)에 이르는데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 산업재해 판정은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이 질병과 근로환경 간의 모종의 인과관계가 성립함을 인정한 행위이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2015년 9월부터 보상 신청을 받아 120여명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사과문을 전달하면서 ‘책임원인이 명확하지 않음에도 환자나 사망자 가족의 아픔을 덜기 위해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편 삼성은 2012년 9월, ‘삼성반도체 이야기’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반도체 백혈병 논란의 오해와 진실’을 해명하겠다고 나섰다. 이 사이트에서 삼성은 삼성 반도체가 암 발병자가 많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며 통계 자료와 분석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당시 언론에 보도된 145명의 암 발병자와 56명의 사망자 대부분이 신원을 알 수 없는 익명의 존재이며, 삼성전자가 아닌 여러 회사의 사람들을 합친 숫자다. 설령 저 수치를 인정한다하더라도 반도체 근로자의 암 사망률은 일반인 대비 0.74%의 낮은 수준이므로 반도체 산업은 안전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조사를 시행했던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이것이 보건 통계와 역학에서 가장 기초적인 개념인 ‘건강 노동자 효과’를 배제한 결과라고 밝힌 바 있다. ‘건강 노동자 효과’란 취업 단계에서는 건강한 노동자가 입사하고 취업 후에는 병약한 노동자가 먼저 퇴사할 확률이 높아 결국엔 건강한 노동자들만이 작업장에 남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이 효과는 작업장이 건강에 실제로 유해한 환경이었는지를 판단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이를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삼성은 백혈병과 병인(病因)이 동일한 비호지키님프종의 발병률이 반도체 조립공정의 여성의 경우 일반인에 비해 5.16배 높았다는 조사 결과와 같이,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언론의 삼성-편향적인 보도 실태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문제는 재벌과 정부기관의 부도덕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언론사건이기도 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원용진 교수(서강대 신문방송학과)와 방희경 연구원(같은 대학 언론문화연구소)에 의하면,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반올림의 투쟁 과정 내내 삼성에게 편파적인 태도를 보이며 사건을 축소하거나 확대·왜곡하였다. 연간 2조 8천억 원의 광고비를 지출하는 삼성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보수언론은 황유미 씨 사태가 발생한 2007년에서 3년이 지난 2010년이 되어서야 보도를 시작했으며(동아일보, 미디어펜, 뉴데일리, 헤럴드경제 등), 삼성이 기자를 초청해 작업라인을 공개했을 때에도 10분의 짧은 견학임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들을 써 삼성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라인 첫 공개, 눈썹조차 내놓고 다닐 수 없는 청정지역”(조선일보), “삼성반도체 공정 백혈병과 무관”(한국경제), “클린룸에 티끌도 못 들어가게 통제(서울경제)”.

보수언론은 또한 삼성이 조정권고안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제안한 보상안을 높이 평가하며 이에 반대하는 반올림에 공격성 보도를 쏟아내기도 했다. 2015년 8월 4일자 <헤럴드경제>는 삼성 전자가 “전향적 대안으로 피해자 가족과 ‘공감’”한다며 신속한 보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서울경제>는 2015년 9월 7일자로 반올림이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 공인 설립을 요구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냈다. 실제로 반올림은 공인 법인 설립을 권하는 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을 ‘합리적’이라고 평가했을 뿐, 법인의 구성원에 반올림 사람이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조정위에 제출한 적이 없었다.

한편, 최근 들어 대학 언론에도 반도체 사태와 관련해 삼성의 보이지 않는 외압이 작용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대 《대학신문》은 올해 3월, 창간 65년 만에 최초로 1면 백지 발행을 했다. 대학신문 학생기자단이 2016년 1월 반올림을 취재하고 기사까지 작성하였으나, 노동자의 입장에서 기사가 작성되었다는 이유로 주간교수에 의해 게재가 불허됐고 《대학신문》은 항의의 뜻으로 백지 발행을 결정한 것이다. 최예린 대학신문 편집장은 “주간 교수가 삼성 측으로부터 광고를 따온 의혹이 있다”며 “대학신문이 자치언론이 아니기 때문에 교수진, 대학원생 간사, 학생 기자단이 함께 만드는 신문이란 정신에 동의”하지만 “전 주간교수가 그런 정신을 훼손했다고 생각한다”며 편집권의 보장을 요구했다.

■ 김유동 기자 kkndyut1212@hanmail.net

<쟁점스케치>

반올림 농성 투쟁 500일 경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반올림이 노숙 농성을 벌이기 시작한 지 500일 하고도 1달여가 넘었다. 반올림은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백혈병 사태를 계기로 결성된 노동인권단체다. 그간 반올림은 유해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등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차원의 대책 마련을 줄곧 요구해왔다. 아울러 해당 기업이 노동자의 생명권 침해에 대해 합당한 책임을 지고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보일 것 역시도 강력하게 요구해 왔다. 삼성은 공장에서 다루는 화학물질과 작업환경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영업비밀’ 문제와 관련된다는 이유로 산재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 왔다. 지난 2015년 10월 삼성전자는 제3자 조정위원회에서 제출한 권고안을 따르지 않은 채 사회적 대화를 보류했다. 삼성전자 측에서 자체 보상위원회를 꾸려 일부 피해자에게만 한시적이고 개별적인 보상을 한 뒤 문제를 덮어버리려던 것이 이번 농성의 시발점이 되었다. 최근 ‘불임’과 ‘뇌종양’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이 나온 바 있으나, 근본적인 차원의 제도적 방안은 여전히 미비한 상황이다.

‘삼성 백혈병 사태’의 향방과 반올림 투쟁의 앞뒷면

지난 2월 21일 국회에서 삼성전자 직업병 관련 청문회 실시가 의결되었다. 고 황유미 씨의 죽음으로 ‘삼성 백혈병 사태’가 문제화되기 시작한 지 10여년 만에 처음이었다. 다만 2월 28일로 예정되어 있던 청문회는 23일 국회 오전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의 반대에 직면하여 일시가 잠정적으로 연기되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청문회에 출석하여 성실히 임하겠다고 언급하였으나, 조속히 청문회가 실시되는 것 자체가 관건이다.

3월 3일 오후, 반올림은 수원 삼성전자 사옥에서 수원역까지 산재사망노동자 79명을 추모하는 ‘방진복 거리행진’ 행사를 진행했다. 3월 6일 오전에는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사옥 앞에서 ‘삼성 직업병 해결 촉구 1만 서명 전달식’ 및 기념행사를 가졌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반올림은 삼성에 서명서를 전달하려 하였으나 삼성 측은 “관련자가 없다”며 철문을 열지 않았다. 이 날 저녁에는 고 황유미 씨를 추모하는 방진복 행사가 강남에서 진행됐다.

더민주 양향자 위원 발언과 그 반향

삼성전자 임원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최고위원이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문제성 발언을 하여 크게 논란이 되었다. 반올림이 “유가족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며, “전문 시위꾼”이나 “귀족노조”처럼 자신들의 자리(이권)를 차지하는 방향으로 활동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양 위원은 피해 당사자나 유가족도 아닌 사람이 농성을 벌이는 것은 “용서가 안 된다”고 발언했다. 당 내외부의 비판에 직면하자 양 위원은 민첩하게 반응했다. 지난달 6일 양 위원은 SNS에 사과문을 게시한 데 이어, 8일에는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의 뜻을 표했다. 반올림 측은 “피해가족들, 활동가들, 그리고 그 곁에서 응원하고 연대해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양향자씨는 씻을 수 없는 모욕을 줬다” 며 폄하발언에 대한 분노와 민주당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양향자 위원의 발언에는 본인의 재빠른 사과로 채 수습되지 않을 문제성이 남아 있다. 이는 산재 피해 노동자들을 둘러싼 인권운동 자체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의 문제와 결부된다. 해당 폄하발언이 ‘당사자’와 ‘당사자 아닌 사람’을 나누는 방식으로 저항의 ‘연대’를 무력화시키는 전형적인 논법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편 임자운 변호사(반올림 상임활동가)는 양향자 위원 발언에 반올림이 공익법인 설립을 요구하여 ‘한 자리 차지하려 한다’는 소문을 악용하려는 의도가 얽혀 있다며 비판의 날을 높였다.

■ 반재영 기자(qkswodud1044@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