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주의에도 주목하는 보수로 나아가야"

- 한국 보수는 왜 위기를 맞게 됐나
  “보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공화주의의 가치를 더해 이를 진작시키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공화주의’가 아닌 ‘민주주의’에만 관심이 집중됐다. 민주주의는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고 때로는 개인의 사사로운 손실도 감내할 수 있는 공화주의 정신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불안정하게 유지될 수밖에 없다. 한국 보수는 공화주의의 가치를 전파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채 기득권 유지를 위해 배타적이고 편협한 태도를 보여 왔기 때문에 부패한 집단이 됐다.

  보수가 현재 한국 정치에서 타격을 입은 건 사실이지만 위기에 직면한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 말기의 현상이 지금과 매우 유사하다. 주체는 바뀌었지만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이 마치 대통령 선거의 본선과도 같은 분위기였다. 이때도 많은 사람들이 진보의 위기와 좌초를 거론했지만 진보는 불과 10여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사회 내 보수 또는 진보의 가치를 중시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한 어느 양자도 위기에 직면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현재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정치세력이 보수를 자칭하는 세력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보수의 위기로 직결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해 활동을 본격화하기 전에는 특정 세력의 위기, 부상, 부활 등에 대해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

- 친박 집회 참가자는 어떤 신념을 갖고 있나
  “친박 집회에는 두 부류의 참가자가 있다. 첫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맹목적 지지자, 둘째는 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현실화될 경우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다. 후자는 안보관이 불안한 정권의 탄생을 박 전 대통령의 불성실, 법치주의와 기업 경영의 자유 훼손보다 더 중대한 사안이라고 믿는다. 그 이유로 집회에 참여한 것이다.”

- 합리적 보수주의가 왜 사라지게 됐나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는 일부는 자신의 독단적 잣대로 이상의 가치를 재단하고 상대방을 예단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새로운 시각이 등장했을 때 특정 프레임에 가둬 공격하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합리적 보수는 자신의 견해를 들어내지 않는 소위 ‘샤이 보수’가 되기 쉽다. 

  계층을 막론하고 보수와 진보 모두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보수주의자 중에도 사회의 각종 사안에 대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을 제기하는 건전한 보수주의자들이 있다. 문제는 사회적 사안에 대해 개인의 합리적 판단에 따른 다양한 시각을 주장할 수 있는 사회적 풍토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역설적으로 왜곡된 보수만 표면에 등장하는 상황이 지속된다.”

-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구분하는 게 의미가 있나
  “특정 인물이나 조직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가두고 공격하지 않는다면 보수, 중도, 진보로 정치적 성향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특히 정책을 수립할 때 중요하다. 정책은 국가의 대내외적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념에 대한 고민이 존재할 때 토대가 탄탄하고 지속가능한 정책이 생산될 수 있다. 반대로 이념과 철학 없이 만들어진 정책은 즉흥적이며 인기영합주의적인 정책에 그치기 쉽다. 

  그러나 정치적 성향의 구분은 보수와 진보 간의 극렬한 대립, 기회주의라는 중도에 대한 비난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는 그 의의가 발휘될 수 없다. 자신과 다른 정치적 시각을 이해하고 해석해 함의를 도출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글 | 장우선 기자 prior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