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면 상단 저자와의 대화
이민경,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봄알람, 2016.

“네가 페미니즘을 알아?” 무례한 질문에 대답하는 힘을 찾다.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최근 2년은 여성 관련 이슈가 뜨거웠던 시기였다. 뜨거운 이슈인 만큼 이들 개념에 대한 전 사회적 민감도도 높아졌다.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은 인터넷이라는 물리적 기반을 통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 가운데 페미니즘을 접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다시 의미화 하는 경우도 늘어나는 한편, 안티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여성혐오 역시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이하 ｢입트페｣)은 이러한 논쟁의 한 가운데에서 등장한 책이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논쟁 속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무례하거나 답답한 질문에 어떻게 대처하고 대답하는지를 돕는 실용서｢입트페｣는, 실천적인 매뉴얼 뿐 아니라 무례한 질문으로부터 자존감을 지키는 방법과 페미니즘을 접하며 마주치는 고민들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도 한다.
｢입트페｣는 온라인 소셜 펀딩을 통해 제작 모금을 진행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목표금액의 스무 배 이상인 4천 3백여 만 원이 모였고, 그렇게 제작된 초판 5000부는 배포된 지 닷새 만에 매진되기도 할 만큼 열렬한 호응이 뒤따랐다. 이토록 열렬한 반응은 ‘언어가 필요하다’는 요청이기도 하다. 누가 어떤 언어를 필요로 하는가. 무엇을 향해 외쳐야 하는가. 이번 달에는 ｢입트페｣의 저자 이민경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Q. 여성담론이 사회 전반에 활발한 때인 만큼 최근 다양한 페미니즘 서적이 발간되고 있습니다. 특히 ｢입트페｣에 대한 열렬한 후원은 페미니즘의 언어에 대한 갈증을 대변하는 현상이었을 텐데요. ｢입트페｣처럼 실제적인 대화 매뉴얼을 제안하는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강남역 사건 이후, 많은 여성들이 이 사건에 대해 공감하고 공포스러워 했습니다. 이후 해당 사건의 ‘여성혐오 범죄’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이 촉발되어 다양한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의들도 터져 나왔습니다. 이 때 처음 페미니즘에 공감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자마자 바로 논쟁에 휩싸이는 분들이 많았어요. ｢입트페｣는 이런 논쟁과 싸움을 처음 겪어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말해야 상처받지 않고,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에 대해 방법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터져 나오는 논쟁 속에서, 이론을 이야기 하는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그저 공격을 위한 질문에 진지한 이론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러한 ‘무례하고 답답한’ 질문은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하고 설명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감각이 없는 상태에서 다수가 공격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입트페｣는 저와 제 친구들이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서로가 돌려볼 용도로 만들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저와 제 친구들이 비슷한 상황을 겪는다면, 제 주변의 여성들 또한 이런 내용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발전시켜 책이 되었습니다. 제가 딱히 많이 팔리는 책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호응을 얻은 이유는 워낙 많은 분들이 페미니즘으로 고민을 많이 하고, 비슷한 고통을 받았다는 뜻이겠지요.

Q. 지금도 물론 그렇습니다만, 강남역 사건 직후에는 더더욱 페미니즘과 여성혐오에 대한 오해와 편견어린 질문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요. 많은 페미니스트들과 여성들이 이러한 질문에 응대하며 큰 피로를 느꼈습니다. 이런 과정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  
A. 대답하는 사람이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과 피로를 내려놓는 것, 사실 이것이 책의 궁극적인 목표죠. ｢입트페｣에서는 친절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일단 페미니스트로서 살게 되면, 모르는 사람을 잘 설득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피로를 많이 느낍니다. 물론 페미니즘을 잘 설명하고 함께하도록 설득하는 것도 운동의 일부이기에, 많은 분들이 이러한 의무감을 느끼는 것일 텐데요. 문제는, 대화의 시작을 내가 아닌 상대방이 정한 경우입니다. 저는 페미니스트로서 친절한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하고, 친절한 태도가 좋은 순간들이 여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친절할 필요가 없다”란, 친절한 설명을 할지 그렇지 않을 지는 스스로 결정한다는 말입니다. 상대방이 대화의 의도를 결정하고 시작된 질문에서, 우리가 누구에게 얼마나 친절할지를 스스로 고를 수 없기 때문에 대답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페미니즘은 진보담론이고, 소수자의 편에 선 담론이기 때문에 권력이 약합니다. 그러다보니 논의의 장에서 자연스럽게 강자의 승인을 받아야만 할 것 같고, 설득을 얻어내야 하는 인정투쟁의 불리한 쪽에 서 있는데요. 이는 그런 판도를 뒤집어 생각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Q. 담론의 헤게모니에 휘둘리지 말라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책에서 “자신의 경험에 대한 전시를 경계하라”고 하셨고요. 동시에 SNS에서는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 페미니즘 체험의 시작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것은 어떻게 이루어져야할까요.
A. 상대방을 낮잡아보고, 수준을 깔보기 위해 질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네가 페미니즘을 안다며? 내게 얘기 좀 해봐.”하는 태도로 나오는 사람에게, “내가 여섯 살 때에는 성추행을 당했고, 집에서는 장녀로서 굉장히 힘들었고, 이런 차별을 겪었고, 애인을 사귀었는데 데이트 폭력을 당했어, 그렇기 때문에 성차별은 이렇게나 존재한다는 것을 알겠니?”라고 경험을 얘기한다면, 상대방이 과연 어떤 말을 해 줄까요? 이 경험들은 단순한 사례가 아닌 당사자의 고유 의미가 있는 사건들입니다. 이런 경험을 다 털어놓아도 상대방은 말하는 사람이 어떤 고통을 겪고 감내한 후에 이 이야기를 꺼냈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그서 별 거 아니잖아”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경험에 공감하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겪는 차별의 경험보다도, 때로는 주변 사람들의 쉬운 해석에 받는 충격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성폭력의 경우 그 자체도 커다란 고통이지만, 믿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네가 유혹한 것 아니냐”는 식의 이야기를 툭툭 던질 때 피해자의 세계가 많이 무너진다고 생각합니다. 논쟁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경험을 단순화하여 가볍게 보고 함부로 충고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차별받은 경험을 전시하지 말라는 것은, 이처럼 일방만 절박하고 위태로운 대화를 이어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때에 무례한 것은 상대방입니다. 무슨 자격으로 내가 페미니스트입네 아닙네 하는 것을 증명하러 왔으며, 내가 고통스럽게 얻은 경험을 함부로 판단하려 합니까. 그런 사람에게 우리는 너무 쉽게 귀납적인 증명을 하려 합니다. 이런 저런 사례를 모아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호소를 시도하게 되는데, 소모적인 예시로 쓰기에 우리의 경험은 소중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 경우 잘못된 대답을 듣고 상처받거나 무너질 확률이 높아요. 이것은 경험의 해석에 대한 또 다른 폭력에 노출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피해자로만 치부해 버리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차별의 경험을 쉽게 내놓지 말라는 뜻입니다.
‘당신이 페미니스트인 것 자체를 못마땅해 하는 개인’에게 입증하려고 소중한 경험을 소모하는 것이 아닌, 당신의 경험이 에너지가 되려면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야 합니다. 여성들의 성차별 경험 필리버스터를 기록한 ｢거리에 선 페미니즘｣이나 사건 당시의 추모기록을 모은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은 자신의 이야기만으로 호소력을 갖춥니다. 어느 이론가의 이론이 더 훌륭한가를 두고 강남역 살인사건을 이야기 할 수 없어요. 강남역 사건이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꽂히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이 한 줄로 짧게 썼던 포스트잇, 거리에서 함께 나눈 경험담이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이죠. 그 여성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서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때, 그것이 바로 에너지가 응집되고 폭발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Q. 페미니즘의 언어로 계속 싸워야 할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부탁드립니다.
A. 근래 가장 뜨겁게 불거지고 있지만 여성들은 예전부터 항상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말을 해 왔고, 그에 반대하는 주장도 늘 있었습니다. 페미니즘을 거부하려는 주장은 대게 비슷합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이기 때문에 같은 논리를 쓸 수밖에 없어요. 호주제 폐지 때 했던 얘기를 동성혼 문제에 또 하고. 참정권 논쟁에서 가사분담까지 이유는 늘 같습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배우거나 실천하려면 늘 새로 생각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시각을 성찰해야 하니까요. 시간이 지나고 판도가 달라지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아는 여성이 점차 늘어나 지금에 이른 것이죠. 같은 내용의 반대가 늘 막아섰지만, 여성들은 그 와중에 투표권을 얻고 호주제를 폐지하며 발전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은 이 충돌을 이겨내는 과정이기도 하기에, 세상이 안 바뀐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어요.
페미니즘을 막 접한 분들의 질문은 대개 ‘틀린 것은 아는데, 이건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가’입니다. 페미니즘을 배운다는 것도 하나의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서 많이 듣고 읽어야 말을 하고 쓸 수 있는 것처럼,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별하여 페미니즘의 언어로 말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죠. 모르는 질문이 꽉 차 있겠지만 그게 정말 당연한 과정이니까, 당장 못 한 대답에 괴로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천천히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를 지켜보면 즐거운 과정이 될 것 같습니다.


■ 인터뷰·정리: 신지현 기자 jhlily0408@korea.ac.kr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19 16:17:46: